[반올림 성명]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에 대한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산재 불승인 판정을 규탄한다!”
○ 2011년 이후 반도체 현장 실태, 객관적 판단 근거도 없이 불승인.
○ 역학조사 생략기준(소위 ’추정의 원칙‘)의 불합리한 적용으로 조사도 없이 불승인.
○ 반도체 설비의 유지보수 업무에 대한 유해 위험성 간과.
○ 발암물질 노출수준이 ’높음‘을 증명하라는 불가능한 요구로 산재노동자 고통 외면.
○ 치료받을 권리를 위한 산재보험이 되도록 법으로 폭넓은 인정기준 마련해야.
2014년부터 1년 8개월간 삼성반도체 화성사업장에서 (건식)식각공정의 유지보수업무를 담당해 온 설비엔지니어 신00님(32세)은 올해 3월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 발병했습니다. 항암 치료 과정은 험난했습니다. 암세포가 잘 잡히지 않아 몇 번이나 무균실 입원치료를 반복했습니다. 다행히 10월에 조혈모세포 이식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지금은 서서히 회복 중에 있습니다. 병이 주는 고통에 더해 비싼 치료비는 또 다른 고통입니다. 신00님은 백혈병 발병이 삼성반도체 근무 때문이라고 생각해 올해 6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했습니다. 치료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것이라 기대헀습니다.
삼성반도체 현장에서 많은 유해요인에 노출되어 일했습니다. 유해 위험한 업무인 설비유지보수(PM)를 담당했고, 전선 다발이 지나가는 바닥에 누워서 설비를 체크하고, 발암2B군으로 알려진 고주파(RF) 장비를 다뤘습니다. 반도체 제조 현장인 ‘클린룸’은 수백종의 화학물질이 사용되고, 백혈병을 일으키는 벤젠, 포름알데히드가 발생 가능하다는 것도 오래된 연구결과로 밝혀진 사실입니다.
특히 담당업무였던 설비유지보수(PM) 업무는 위험 업무입니다. 온갖 독성물질과 반응 부산물이 가득한 설비와 배관 을 직접 분해하고 청소하는 업무이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신00 님은 방독마스크도 착용하지 못하고 일을 했습니다. 또 삼성 옴부즈만 보고서(2018년)에 따르면 기흥/화성사업장에서 사용하는 총 907종의 화학제품 중 407종(45%)은 영업비밀 물질입니다. 이렇게 영업비밀로 가려진 수많은 독성 위험까지 따지면 신00님의 백혈병이 단지 개인질병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공단 산하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지난 10월 판정회의를 통해 아래와 같은 판정결과를 내놨습니다.
“신청인이 담당한 공정에서 감광제 성분 중의 벤젠, 포름알데히드, 극저주파 자기장, 방사선 등 신청 상병을 유발하는 유해요인에 노출이 가능하고, 보호장구 착용 미흡, 인근공정의 유해물질, 영업비밀이나 측정의 한계로 드러나지 않은 위험요인 등을 상병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나, ▲ 해당 사업장에서 1년 8개월간 종사한 것으로 보아, 상병을 일으킬 정도의 유해요인에 장기간 노출되었다고 보기에는 근무기간이 비교적 짧은 점, ▲ 동일 또는 유사공정에 대한 역학조사 생략 판단기준인 2011년 이후에 입사한 것으로 확인되어 유해인자 노출수준이 2011년 이전의 작업환경과 같다고 보기 어려운 점, ▲ 신청인의 주장을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근무기간과 노출수준을 감안하면 고농도 유해인자에 장기간 노출되어 상병이 발병하였다고 보기에는 미흡한 점 등을 고려 하면, 신청 상병은 업무상 노출된 유해요인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개인적 요인에 의해 발병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므로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승인 판정 근거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부당합니다.
1. 근무기간이 짧아 상병을 일으킬 정도로 유해요인에 장기간 노출되었다고 보기에 어렵다는 판단에 대하여
발암물질은 역치(암 발병의 문턱값)가 없다는 점을 고려했어야 합니다. 근무기간이 짧아 발암물질 누적 노출수준이 높지 않더라도, 매우 적은 양의 노출로도 직업성 암이 발병할 수 있습니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망노동자 고 황유미 씨(2007년 사망)의 경우도 전체 근무기간은 1년 8개월이었으나 산재로 인정된 바 있습니다.
2. 유해인자 노출수준이, 동일 또는 유사 공정에 대한 역학조사 생략 판단기준인 2011년 이전의 작업환경과 같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에 대하여
첨단산업의 직업병 판단기준을 제시한 대법원 판결(2017. 8. 29.선고. 2015두3867 판결) 영향으로 2018년 고용노동부는 역학조사 생략기준(내부지침)을 만들어 반도체, 디스플레이 산업의 동일 혹은 유사 공정에서 업무관련성이 인정된 8개 상병(백혈병, 비호지킨 림프종, 재생불량성빈혈, 뇌종양, 폐암, 유방암, 난소암, 다발성경화증)에 대해서는 역학조사를 생략하고 판정(추정의 원칙 적용)하여 산재처리절차를 간소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이 기준에 ‘2011년 이전 입사자’라는 시점의 기준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2011년 이전과 이후가 어떻게 다른지, 얼마나 환경이 개선되었는지에 대한 객관적 근거를 제시하지도 않고, 재해조사도 없이 2011년 이후 근무자라는 조건을 직업병 불승인 근거로 삼았습니다. 특히 유지보수 업무가 2011년 이후에 삼성반도체 사업장에서 안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어떠한 객관적인 근거도 제시되지 않은 채 노출수준이 높지 않다고 판단한 것은 부당합니다.
3. 근무기간과 노출수준을 감안하면 ‘고농도 유해인자에 장기간’ 노출되어 상병이 발병하였다고 보기에는 미흡하다는 판단에 대하여
반도체 산업의 경우 작업환경측정결과 노출수준이 높게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으나 노동자들이 암을 비롯해 다양한 질병에 걸리고 있습니다. 2019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발표한 ‘반도체 제조공정 근로자에 대한 건강실태 역학조사’에서도 반도체 노동자들이 백혈병, 림프종 및 일부 암의 발생과 사망 위험이 높다는 것이 확인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판정처럼 ‘고농도의 유해인자에 장기간 노출되었다는 것을 증명해야’ 산재로 인정된다면, 앞으로도 거의 대부분의 직업병 피해 노동자들은 산재보험 적용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이는 산재보험 인정기준을 완화해 아픈 노동자의 치료받을 권리를 확대해야 한다는 오랜 사회적 논의에 찬물을 끼얹는 부당한 판단입니다. 낮은 수준의 노출이라도 유해물질 노출가능성이 있다면 산재로 인정하는 기준이 세워져야 합니다.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노출수준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만큼의 현장 통제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첨단산업에서의 공정 및 화학물질 등 정보는 영업비밀로 취급되는 등 의학적, 과학적으로 다 밝혀지지도 않은 미지의 위험이 복합적으로 상존합니다. 이미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2017년 대법원 판결은 ‘첨단산업에서의 불확실성에 대한 위험을 고려하고, 사회보장제도로서 사회적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대한 보호를 강화해야 함'을 강조하며 산재인정기준을 대폭 완화시키는 판단을 내린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판정결과는 10여 년 전, 근로복지공단에서 황유미를 비롯해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피해자들에 대해 불승인 판단을 내릴 때처럼 ’고농도 유해인자에 장기간 노출되었다‘는 증명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전히 공단의 질병판정위원이 누가 되는지에 따라 판정의 결과가 달라지는 현실은 바로잡아야 합니다. 산재보상보험법을 최소한 대법원 판단기준에 부합하도록 개정해야 합니다. 협소한 판단의 잣대로 직업병 피해자들을 두 번 울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2021. 12. 7.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반올림 성명]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에 대한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산재 불승인 판정을 규탄한다!”
○ 2011년 이후 반도체 현장 실태, 객관적 판단 근거도 없이 불승인.
○ 역학조사 생략기준(소위 ’추정의 원칙‘)의 불합리한 적용으로 조사도 없이 불승인.
○ 반도체 설비의 유지보수 업무에 대한 유해 위험성 간과.
○ 발암물질 노출수준이 ’높음‘을 증명하라는 불가능한 요구로 산재노동자 고통 외면.
○ 치료받을 권리를 위한 산재보험이 되도록 법으로 폭넓은 인정기준 마련해야.
2014년부터 1년 8개월간 삼성반도체 화성사업장에서 (건식)식각공정의 유지보수업무를 담당해 온 설비엔지니어 신00님(32세)은 올해 3월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 발병했습니다. 항암 치료 과정은 험난했습니다. 암세포가 잘 잡히지 않아 몇 번이나 무균실 입원치료를 반복했습니다. 다행히 10월에 조혈모세포 이식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지금은 서서히 회복 중에 있습니다. 병이 주는 고통에 더해 비싼 치료비는 또 다른 고통입니다. 신00님은 백혈병 발병이 삼성반도체 근무 때문이라고 생각해 올해 6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했습니다. 치료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것이라 기대헀습니다.
삼성반도체 현장에서 많은 유해요인에 노출되어 일했습니다. 유해 위험한 업무인 설비유지보수(PM)를 담당했고, 전선 다발이 지나가는 바닥에 누워서 설비를 체크하고, 발암2B군으로 알려진 고주파(RF) 장비를 다뤘습니다. 반도체 제조 현장인 ‘클린룸’은 수백종의 화학물질이 사용되고, 백혈병을 일으키는 벤젠, 포름알데히드가 발생 가능하다는 것도 오래된 연구결과로 밝혀진 사실입니다.
특히 담당업무였던 설비유지보수(PM) 업무는 위험 업무입니다. 온갖 독성물질과 반응 부산물이 가득한 설비와 배관 을 직접 분해하고 청소하는 업무이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신00 님은 방독마스크도 착용하지 못하고 일을 했습니다. 또 삼성 옴부즈만 보고서(2018년)에 따르면 기흥/화성사업장에서 사용하는 총 907종의 화학제품 중 407종(45%)은 영업비밀 물질입니다. 이렇게 영업비밀로 가려진 수많은 독성 위험까지 따지면 신00님의 백혈병이 단지 개인질병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공단 산하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지난 10월 판정회의를 통해 아래와 같은 판정결과를 내놨습니다.
“신청인이 담당한 공정에서 감광제 성분 중의 벤젠, 포름알데히드, 극저주파 자기장, 방사선 등 신청 상병을 유발하는 유해요인에 노출이 가능하고, 보호장구 착용 미흡, 인근공정의 유해물질, 영업비밀이나 측정의 한계로 드러나지 않은 위험요인 등을 상병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나, ▲ 해당 사업장에서 1년 8개월간 종사한 것으로 보아, 상병을 일으킬 정도의 유해요인에 장기간 노출되었다고 보기에는 근무기간이 비교적 짧은 점, ▲ 동일 또는 유사공정에 대한 역학조사 생략 판단기준인 2011년 이후에 입사한 것으로 확인되어 유해인자 노출수준이 2011년 이전의 작업환경과 같다고 보기 어려운 점, ▲ 신청인의 주장을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근무기간과 노출수준을 감안하면 고농도 유해인자에 장기간 노출되어 상병이 발병하였다고 보기에는 미흡한 점 등을 고려 하면, 신청 상병은 업무상 노출된 유해요인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개인적 요인에 의해 발병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므로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승인 판정 근거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부당합니다.
1. 근무기간이 짧아 상병을 일으킬 정도로 유해요인에 장기간 노출되었다고 보기에 어렵다는 판단에 대하여
발암물질은 역치(암 발병의 문턱값)가 없다는 점을 고려했어야 합니다. 근무기간이 짧아 발암물질 누적 노출수준이 높지 않더라도, 매우 적은 양의 노출로도 직업성 암이 발병할 수 있습니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망노동자 고 황유미 씨(2007년 사망)의 경우도 전체 근무기간은 1년 8개월이었으나 산재로 인정된 바 있습니다.
2. 유해인자 노출수준이, 동일 또는 유사 공정에 대한 역학조사 생략 판단기준인 2011년 이전의 작업환경과 같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에 대하여
첨단산업의 직업병 판단기준을 제시한 대법원 판결(2017. 8. 29.선고. 2015두3867 판결) 영향으로 2018년 고용노동부는 역학조사 생략기준(내부지침)을 만들어 반도체, 디스플레이 산업의 동일 혹은 유사 공정에서 업무관련성이 인정된 8개 상병(백혈병, 비호지킨 림프종, 재생불량성빈혈, 뇌종양, 폐암, 유방암, 난소암, 다발성경화증)에 대해서는 역학조사를 생략하고 판정(추정의 원칙 적용)하여 산재처리절차를 간소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이 기준에 ‘2011년 이전 입사자’라는 시점의 기준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2011년 이전과 이후가 어떻게 다른지, 얼마나 환경이 개선되었는지에 대한 객관적 근거를 제시하지도 않고, 재해조사도 없이 2011년 이후 근무자라는 조건을 직업병 불승인 근거로 삼았습니다. 특히 유지보수 업무가 2011년 이후에 삼성반도체 사업장에서 안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어떠한 객관적인 근거도 제시되지 않은 채 노출수준이 높지 않다고 판단한 것은 부당합니다.
3. 근무기간과 노출수준을 감안하면 ‘고농도 유해인자에 장기간’ 노출되어 상병이 발병하였다고 보기에는 미흡하다는 판단에 대하여
반도체 산업의 경우 작업환경측정결과 노출수준이 높게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으나 노동자들이 암을 비롯해 다양한 질병에 걸리고 있습니다. 2019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발표한 ‘반도체 제조공정 근로자에 대한 건강실태 역학조사’에서도 반도체 노동자들이 백혈병, 림프종 및 일부 암의 발생과 사망 위험이 높다는 것이 확인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판정처럼 ‘고농도의 유해인자에 장기간 노출되었다는 것을 증명해야’ 산재로 인정된다면, 앞으로도 거의 대부분의 직업병 피해 노동자들은 산재보험 적용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이는 산재보험 인정기준을 완화해 아픈 노동자의 치료받을 권리를 확대해야 한다는 오랜 사회적 논의에 찬물을 끼얹는 부당한 판단입니다. 낮은 수준의 노출이라도 유해물질 노출가능성이 있다면 산재로 인정하는 기준이 세워져야 합니다.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노출수준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만큼의 현장 통제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첨단산업에서의 공정 및 화학물질 등 정보는 영업비밀로 취급되는 등 의학적, 과학적으로 다 밝혀지지도 않은 미지의 위험이 복합적으로 상존합니다. 이미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2017년 대법원 판결은 ‘첨단산업에서의 불확실성에 대한 위험을 고려하고, 사회보장제도로서 사회적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대한 보호를 강화해야 함'을 강조하며 산재인정기준을 대폭 완화시키는 판단을 내린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판정결과는 10여 년 전, 근로복지공단에서 황유미를 비롯해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피해자들에 대해 불승인 판단을 내릴 때처럼 ’고농도 유해인자에 장기간 노출되었다‘는 증명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전히 공단의 질병판정위원이 누가 되는지에 따라 판정의 결과가 달라지는 현실은 바로잡아야 합니다. 산재보상보험법을 최소한 대법원 판단기준에 부합하도록 개정해야 합니다. 협소한 판단의 잣대로 직업병 피해자들을 두 번 울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2021. 12. 7.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