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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집 및 발언[12.03.30.] 故박지연씨 추모2주기 기자회견 자료

반올림
2022-09-23
조회수 2228

삼성반도체 온양공장

백혈병 산재사망 노동자

 

 

(1987~2010)

 

 

故 박지연


 

 

어떤 눈보라가 쳤던 건지

어떤 비바람이 불어왔던 건지

살아생전 대답도 듣지 못한 채 너는 가버렸고

속절없이 꽃이 핀들

눈길은 너를 더듬어 하늘로만 향하는데

드디어 봄이야,

고운 네 목소리로 들려주지 않는 한

봄이 어찌 봄이겠는가

꽃이 어찌 꽃이겠는가


 

- 박일환 시, “매화는 봄을 불러오지 않는다”          

고 박지연씨 추모시 中            





 

[기자회견 순서]


1. 고 박지연님 약력 및 추모사 ... 반올림 상임활동가 이종란


2. 추모와 삼성규탄 발언 1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공유정옥 산업의학전문의


3. 추모와 삼성규탄 발언 2 ... 기독교 사회선교 연대회의 목사님


4. 기자회견문 낭독


5. 추모 퍼포먼스




 

 

(자료집 첨부)

1. 약력, 재해발생 및 산재신청 경위

2. 박지연님이 09. 5. 15. 근로복지공단 자문의사협의회에서 낭독한 자필 진술서

3. 기자회견문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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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처 : 장안석 (010-9002-8563), 이종란 (010-8799-1302)




 

 

[故박지연님의 약력]


- 1987년생


- 강경상고 3학년 재학 중이던 2004년 12월 삼성반도체 온양공장 입사


- QE 검사과에서 X-선 및 화학물질을 이용한 반도체 칩 검사업무


- 2007년 9월,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


- 4차 항암치료 후, 2008년 4월 28일 골수이식


골수이식한 날, 반올림을 통해 집단 산재신청. 투병 중에도 반올림 활동 참여


- 2009년 5월 15일 근로복지공단 천안지사 자문의사협의회에 출석하여 산재인정을 호소


- 2009년 9월 백혈병 재발


- 2010년 3월 26일 급격히 악화되어 서울성모병원 중환자실 입원


- 2010년 3월 31일 오전 10시 55분 운명(23세)


- 2010년 4월 2일 속초 홍련암 앞 바다에 뿌려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꼭 다시 건강해질께요..“ 라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2010년 3월 31일 고 박지연님은 스물셋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가 떠난 지 벌써 2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삼성반도체 백혈병을 비롯한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의 산재인정의 길은 여전히 멀고,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의 고통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1) 고 박지연씨의 재해경위


 

박지연씨는 반올림이 만들어지고 나서 처음으로 제보가 들어왔던 피해자였습니다. 그녀는 고3이던 2004. 12월,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 취업을 나가, QE 검사과에서 방사선이 발생하는 엑스레이 장비 및 여러 화학물질을 이용해 반도체 칩을 검사하는 업무를 주야 교대로 맡아 일해 왔습니다. 힘들지만 가난한 집안형편에 가족들의 생계와 그리고 그녀의 먼 미래의 꿈을 위해 현장과 기숙사를 오고가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일을 한지 2년 9개월쯤 되던, 2007년 9월에 박지연씨는 갑자기 하혈을 하고 구토와 어지럼증을 느끼더니 급기야 백혈병 진단을 받고 힘겨운 투병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맞는 골수를 찾아 2008년 4월 28일 골수이식도 했습니다. 골수이식을 한 날은 그녀가 반올림을 통해 다른 백혈병 피해노동자들과 함께 집단 산재신청을 한 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몹쓸 백혈병은 1년뒤에 다시 재발하였고 2010년 3월 31일 스물 세 살의 나이로 끝내 사망하였습니다.


 

그녀는 투병 중에도 산재신청은 물론이고 산재가 인정되게 해달라고 근로복지공단 천안지사 자문의사협의회(최종 판정기구)에 출석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더 이상 저와 같은 병에 걸리는 사람이 나오지 않길 바라며 앞으로 제가 병원비, 생활비 걱정만은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근로복지공단은 치료비 보상과 생존권 보장을 마땅히 책임져야 할 것입니다.” (근로복지공단 최후 진술문 中)


 

그러나 그녀의 이러한 간절한 산재인정의 바램은 좌절되었습니다. 그녀의 어머님은 감당할 수 없는 막대한 치료비 때문에, 삼성이 산재포기를 종용하며 쥐어준 치료비를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천안지사의 산재 불승인 처분 이후 다시 근로복지공단(본부)에 심사청구를 했으나 결과는 또 불승인이었습니다. 그 사이 백혈병이 재발하였고, 2010년 1월 11일,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행정소송을 신청했으나 그녀는 두 달여 뒤인 2010년 3월 31일, 돌아가셨습니다.


 

(2) 박지연씨 사망이후 삼성의 대응


 

박지연씨가 사망한 소식이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자, 삼성은 반도체 공장을 부르는 호칭을 “캠퍼스”로 변경하고, 반도체 공장 외벽을 칼라페인트로 칠하며 이미지 쇄신에 신경 썼습니다. 뿐만 아니라 반도체 공장이 얼마나 “깨끗한” 지 보여주려고 80여명에 달하는 기자들을 불러 공장 투어까지 시켰습니다. 또 “삼성 건강연구소”를 설립하고 청부과학자로 소문난 해외 안전보건 컨설팅사인 인바이런사를 통해 작업환경 재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는 “백혈병이 업무와 무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삼성의 거짓말에 속지 않습니다. 안전장치도 없이 방사선 장비와 화학물질을 다루다 백혈병이 발병하여 사망한 박지연씨의 백혈병이 업무상 재해라는 산재판결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지난 2011년 6월 23일 고 황유미, 고 이숙영 두 분이 산업재해 인정 판결을 받았습니다. 또한 2012년 2월 6일 고용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2009년~2011년 정밀 역학조사 결과 반도체 가공라인과 조립라인 모두에서 백혈병을 유발하는 벤젠, 포름알데히드, 전리방사선 등 발암물질이 공정 부산물로 생성된다고 발표했습니다.


 

오로지 삼성만이 아무런 근거도 밝히지 않은 채 “백혈병이 업무와 무관하다”는 것을 믿으라고 강변할 뿐입니다.


 

최근에 삼성은 멕시코 칸쿤에서 개최된 세계산업안전보건대회(ICOH)에서 인바이런사의 연구결과를 발표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단지 발표만 했을 뿐임에도, 한국의 언론사들에게 보도자료를 뿌려, “산업보건분야에서 가장 권위있는 국제학술대회를 통해 삼성반도체 생산라인 근무환경이 이상이 없다는 인바이런사의 재조사 내용을 검증받은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헤프닝까지 벌인 바 있습니다.


 

박지연씨는 자신의 꿈을 채 펼쳐보지도 못한채 짧은 삶을 마감했지만 그녀를 비롯한 산재노동자들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고 싸우는 일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기자회견문]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는 삼성의 파렴치한 작태,

그들이 만든 상처는 아물 새 없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6일 광화문에서 진행하는 ‘반도체 전자산업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 기자회견’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황급히 움직인 반올림에 한통의 전화가 울렸습니다. 2년 전 3월, 사랑하는 딸 고 박지연 씨를 백혈병으로 잃고만 그녀의 어머님이었습니다.


 

“잘 지내고 있죠?”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두서없이 나눈 건조한 안부 전화. 통화는 길지 않았습니다. 언제 한번 뵙고 싶다는 기약 없는 얘기를 끝으로 전화통화는 끝이 났습니다. 딸을 잃은 황망함에 신경안정제를 달고 산다고 했던 지연씨 어머님이,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지 제대로 안부도 건네지 못한 채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런 얘기가 채 아물지 않은 상처를 들추는 것이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많은 생명들이 봄기운 맞아 조금씩 움트는 3월. 지연씨도 봄기운 맞아 움트는 새싹처럼 툴툴 털고 무균실 병동 밖으로 건강하게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작은 희망 놓지 않았던 2년 전 3월. 생전에 꽃처럼 예뻤던 얼굴 찾아볼 수 없이, 퉁퉁 부어버린 몸뚱이로 먼저 가는 처량한 모습 더 이상 떠올리지 말라는 것인지 그렇게 딸이 떠나간 3월. 가슴에 묻은 딸, 꽃처럼 다시 피어나 팔딱팔딱 뛰는 심장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아려오는 가슴으로 울음 삼키는 3월.


 

딸의 기억이 다시 피어하는 3월, 생전의 지연 씨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잊지 말아 달라고 지연 씨의 어머님은 그렇게 안부 전화를 하셨을지 모릅니다. 딸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에, 살아생전 투병으로 이리 저리 끌어다 쓴 어마어마한 돈 때문에 아픈 몸으로 산재신청에 나선 고인의 뜻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에, 어머니는 그렇게 오늘도 죄인처럼 울음을 삼키고 계실지 모르는 3월입니다.


 

고 황유미에서 시작해, 고 박지연, 고 김도은까지…….아픈 기억을 담고 있는 3월. 그러나 2012년 3월은 어느 때보다 더욱 잔인합니다. 아픔을 보듬기 보다는 다시 생채기를 내고 있는 삼성 때문입니다.


 

지난 3월 22일 삼성은, 하루 전날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국제산업보건위원회(ICOH)에서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 라인 근무환경이 이상이 없다는 인바이론社의 재조사 내용을 "검증"받았다며 대대적인 보도자료를 뿌렸습니다. 숱한 언론들이 앵무새처럼 이 자료를 그대로 받아쓴 것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다릅니다. 이 학회에서는 수십 개의 세션이 열렸고, 인바이런의 발표는 그 가운데 십여 명이 참석한 작은 세션에서 발표되었을 뿐입니다. 세션의 사회도 인바이런이 맡았으며, 발표 이후 질의응답 시간조차 충분히 주지 않아 단 한 명만이 질문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검증은 커녕 토론, 아니 질문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발표였던 것입니다. 심지어 일부 언론에 소개된 사진은 인바이런의 발표 내용과 전혀 무관한 전체 세션 사진이었습니다.


 

이들이 발표한 것은 2년 전 고 박지연 씨의 사망을 계기로 여론이 들끓자 “안전성을 검증하겠다”며 인바이런사를 고용해 실시한 조사결과입니다. 이미 네덜란드 투자사 APG를 비롯하여 국내외 전문가들 및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이 독립적이지도 투명하지도 않은 이 연구의 문제점을 지적해왔습니다. 특히 작년 7월 고 황유미, 고 이숙영 씨의 백혈병을 산업재해로 인정한 행정법원의 1심 판결을 뒤집기 위해 삼성과 근로복지공단이 공모하면서, 삼성이 이를 지원하기 위해 미처 검증되지 않은 연구 결과를 서둘러 발표했다는 의혹도 제기된 바 있습니다.


 

국내에서와 마찬가지로 “삼성 반도체 안전하다”라는 주장만 반복된 국제적인 발표는 또 다시 피해자들의 가슴에 응어리와 분노만을 남기고 있을 뿐입니다.


 

얼마 전 우리는 삼성 앞에 무기력하고 초라한 권력을 보았습니다. 핸드폰 가격 부풀리기 담합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방해하는 작태를 저지르면서도 태연한 삼성, 이에 대해 고작 4억 원의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정부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최근 이 사안을 통해 닮아 있는 또 하나의 현상을 확인했습니다.

 

수많은 피해자와 사망자 앞에 뻔뻔하게 “안전성에 문제없다”고 주장하는 삼성, 여전히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삼성의 눈치를 살피기에 급급한 정부의 모습. 닮고 닮은 현실에 우리는 무기력을 느낍니다.


 

그러나 우리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2년 전 고 박지연님을 떠나보내며 다짐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이런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산자의 몫을 다하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입니다.

 

고 박지연님 부디 영면하소서.

 



2012년 3월 30일

 


고 박지연님 2주기 추모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