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23 반올림 성명]
법원에서 또, 반도체 노동자의 파킨슨병을 산업재해로 판결.
근로복지공단은 산재인정 판결을 받아들이고, 부당한 판정 관행 시정하라
1. 지난 6월 7일 서울행정법원(판사 김주완)은 신00님(47세, 남성)의 파킨슨병에 대해 산재인정 판결을 내렸습니다.
2. 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비록 의학적으로 현재까지 파킨슨병의 명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법적 · 규범적 관점에서 볼 때 원고가 근무할 당시 다수의 유기용제 등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된 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 내지 촉진되었다고 봄이 합리적이고, 특히 ‘보호구도 없이 유기용제를 취급하는 등 열악한 중소기업의 작업환경과 하루 12시간, 주7일 동안 휴무도 없이 일해 온 사정을 고려해, 유해물질의 노출 정도가 해당 상병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고 판시하였습니다. (2023. 6. 7. 판결선고, 2020구단51146 요양불승인처분취소)
3. 반올림은 아픈 당사자에게 매우 오랜 기다림 끝에 내려진 이번 판결을 환영합니다. 그리고 근로복지공단의 부당한 판정 관행을 시정할 것을 촉구합니다.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와 질병간의 상당인과관계를 판단하는데 있어, 의학적 관점으로 협소하게 판정할 것이 아니라, 법적 · 규범적 관점에서 여러 제반 사정을 고려하는 <대법원 판례> 기준대로 판정해야 합니다. 현재의 위법 부당한 공단의 불승인 판정 관행은 반드시 시정되어야 합니다.
4. 이번 판결로서 그동안 근로복지공단(경인질판위)의 불승인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3명의 파킨슨병 피해자 모두 산재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파킨슨병 피해자 (공단 경인질판위에서 불승인한 반도체노동자의 4번째 파킨슨병)도 지난 5월 15일 행정소송을 제기했는데, 신속한 산재인정 판결을 기대해봅니다.
5. 부디 공단은 반복되는 파킨슨 산재인정 판결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불필요한 항소를 제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공단이 지금 당장 할 일은 위법 부당한 판정 관행을 바로잡는 일입니다.
<재해 당사자(신00님)의 짧은 소감>
포기하지 마세요. 힘든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들이 계시니 용기를 가지십시오.
<원고 대리인 : 문은영 변호사(민변 노동위 소속)가 전하는 판결의 의미>
- 이번 판결은 앞선 2건 포함하여 전자산업에서 일하다 젊은 나이에 발생한 파킨슨병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한 판결임. 파킨슨병이 희귀질환이나 전자산업에서 사용되거나 발생하는 유기용제 노출과의 연관성이 인정된 만큼 근로복지공단은 이러한 법원의 판결 이유를 반영하여 파킨슨병의 인정기준을 정비할 필요가 있음
- 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재해자의 유해물질 노출수준을 판단하는데 있어 특히 2가지 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을 함.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안전보건관리가 취약한 중소기업의 열악한 업무환경을 충분히 고려한 점, △재해자가 2년 9개월간 하루 12시간, 1년간 거의 휴일 없이 일한 것에 대하여 통상적인 근무보다 약 2.1배 상당의 업무를 수행하여 근속기간을 5.8년으로 환산하여 노출수준을 추정하였는바, 재해자가 유해물질에 노출된 실질적인 기간 산정의 방법을 제시한 점이 특히 의미가 있음.
<첨부> 판결에 이르기까지 과정과 판결 주요내용
1. 파킨슨병의 진단과 공단 불승인 판정까지
이번 산재 인정 판결을 받은 당사자는 경기도 남양주에 살고 있는 신00 님(47세, 남성)으로, 2009년 만33세의 젊은 나이에 파킨슨병을 진단받은 후 14년째 서서히 굳어가는 몸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분이다.
신00님 은 2000년대 초중반 약 3년간 두 군데의 중소기업에서 TCE를 비롯해 여러 유해화학물질들을 보호장비도 없이 취급하여 레이저 다이오드, LED 등 반도체 제품을 개발, 생산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하루 12시간, 주 7일간 쉬지 않고(일 년에 겨우 5일을 쉼) 일하다 퇴사하였는데 2007. 6. 경부터 감각이상, 손 떨림 증상이 나타나더니 2009. 5. 파킨슨병을 진단 받았다.
이후 8년이 지난 2017. 7.에서야 반올림을 통해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신청을 접수하였다. 뒤늦게 신청을 하였지만 또 긴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2년 동안 역학조사를 거친 뒤 2019. 10. 근로복지공단 경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사유로 불승인 판정을 내렸다.
“이 사건 상병은 뇌신경계의 파괴로 인하여 몸의 움직임에 장애가 발생하는 상병으로 현대의학상 발병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유전적 요인 또는 유해인자로 인하여 특발적으로 발병할 수 있다는 소견이다. 원고는 LED 제조공정 중에 패키지, 개발, 팹, 몰딩공정 등의 작업을 한 것이 확인되나, TCE(트리클로로에틸렌)를 사용했는지 여부는 명확하지 않고, 설령 TCE를 사용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사용량이 적고 해당 작업에 약 6개월간 투입되어 노출수준이 높지 않으며, 2002~2003년경 이뤄진 작업환경측정결과에서 유기용제 및 산류의 노출수준이 허용 수치 이상으로 검출되지 않았다. 원고가 근무하였던 개발실은 별도의 국소환기시설 등이 설치되지 않아 실제 환경은 측정 환경보다 열악할 가능성은 있지만 해당 작업에 종사한 기간이 약 6개월로 짧고, 상병의 유해요인에 대하여 학술 보고가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상병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없다’라는 이유로 불승인 처분을 하였다.
2. 판결문에 적시된 관련 ‘법리’
1)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 제1호가 정하는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질병으로 인정하려면 업무와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그 증명책임은 원칙적으로 근로자 측에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법적·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면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산업재해 발생에 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더라도 그 근로자의 취업 당시의 건강상태, 질병 원인, 작업장에 발병 원인이 될 만한 물질이 있었는지 여부, 발병원인물질이 있는 작업장에서 근무한 기간 등의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경험칙과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인 추론을 통하여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 이 때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사회 평균인이 아니라 질병이 생긴 근로자의 건강 및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8. 5. 15. 선고 2008두3821 판결 등 참조).
2) 첨단산업분야에서 유해화학물질로 인한 질병에 대해 산업재해보상보험으로 근로자를 보호할 현실적· 규범적 이유가 있는 점,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과 기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근로자에게 발병한 질병이 이른바 ‘희귀질환’ 또는 첨단산업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유형의 질환에 해당하고 그에 관한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 특히 희귀질환의 평균 유병률이나 연령별 평균 유병률에 비해 특정 산업 종사자 군이나 특정 사업장에서 그 질환의 발병률 또는 일정 연령대의 발병률이 높거나, 사업주의 협조 거부 또는 관련 행정청의 조사 거부나 지연 등으로 그 질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업 환경상 유해요소들의 노출 정도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인정된다면, 이는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단계에서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할 수 있다. 나아가 작업환경에 여러 유해물질이나 유해요소가 존재하는 경우 개발 유해요인들이 특정 질환의 발병이나 악화에 복합적· 누적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대법원 2017. 8. 29. 선고 2015두3867 판결 등 참조)
3. 이 사건 주요 판결 내용
1) 원고는 각 사업장에서 그 사용 사실이 확인된 황산, 과산화수소, 이소프로필알코올, 아세톤, 메틸알코올, 에틸렌글리콜, 염산, 질산, 인산, 프로플렌글리콜 등 뿐 만 아니라, 관련 문헌과 연구자료 등을 통해 LED 제조· 연구개발 등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되고 있는 벤젠, 포름알데히드, 페놀, 메틸 이소부틸 케톤 등에도 직간접적으로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있고, 열악한 근무환경 및 과다한 근로시간, 유기화합물과 유기용제의 유해성에 관한 사업장 및 근로자들의 인식 수준이 낮았던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실제로 원고가 이 사건 각 사업장에서 노출된 유기화합물과 유기용제의 종류는 더 다양하고 그 노출 정도는 훨씬 중하다고 추론함이 합리적이다.
2) 파킨슨병은 60세 전후에 가장 많이 발병하고 대부분은 발병 원인을 알 수 없는 ‘특발성 파킨슨병’에 해당하는데, 파킨슨병 환자 중 약 5~10%만 유전적 문제로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원고는 만33세에 상병을 진단받았고, 유전적 소인이 확인되지는 않았다.
3) 전문가들의 의학적 견해(아래참조) 등을 종합해 보면, 비록 의학적 관점에서 현재까지 이 사건 상병의 명확한 원인, 유기용제·유기화합물에 대한 노출의 영향력이 명확하게 입증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 하더라도, 여러 유기용제 및 유기화합물에 대한 노출이 이 사건 상병의 발병 내지 촉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 관하여 의학적, 통계적 근거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판결문에 인용된 전문가들의 의학적 견해)
- 인하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임00: 원고가 파킨슨병에 관련된 유전자가 확인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보면 각 사업장에서 노출된 유기용제에 의해 발생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 산보연의 역학조사: 유기용제 노출로 인한 파킨슨병 발병위험은 많은 논쟁이 있다
-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김00 교수: 휘발성 유기화합물 노출이 파킨슨병 발병율을 높일 수 있는데 △ 세척작업의 경우 적절한 보호장구의 착용 없이 수행하는 과정에서 액상의 유기화합물이 피부를 통해 흡수될 수 있고 혼합 유기용제의 경우 단일 유기용제에 비해 피부 흡수 속도가 125.6배까지 증가한다는 연구가 있음. 원고가 세척작업 과정에서 경피 흡수를 통해 매우 높은 수준의 화학물질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상당함 △ 유기화합물은 몸에서 빠져나가는데 일정 시간이 필요한데, 원고와 같이 휴무일이 거의 없이 근무하는 경우 화학물질이 몸에서 빠져 나가지 못한 상태에서 노출이 재개되어 높은 농도의 유해인자가 축적될 수 있다. 원고는 33개월간 하루 12시간, 주7일을 근무하였으므로 이를 하루 8시간, 주5일 근무 기준으로 환산할 경우 약 2.1배 상당의 업무를 수행한 것이므로, 약 5.8년 동안 업무를 수행하였다고 볼 수 있다. △ 원고가 근무하였던 2002년경에 작업환경상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인식이 전무하여 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 중소기업의 작업환경이 열악하였을 것에 대한 고려도 필요함.
- 법원 진료기록 감정의(서울대병원 신경과 전문의 김00): TCE에 대한 노출, 유기화합물 및 부산물, 극저주파 자기장에 대한 노출이 이 사건 상병의 발병 원인이라고 볼 만한 의학적 근거는 없음.
4) 앞서 본 여러 사정들을 종합하면, 비록 의학적으로 현재까지 이 사건 상병의 명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법적· 규범적 관점에서 이 사건 상병은 원고의 유전적 요인 또는 업무와 무관한 환경적 요인으로 발생하였다기보다는, 원고가 이 사건 각 사업장에서 근무할 당시에 다수의 유기용제 및 유기화합물에 직간접적· 복합적으로 노출된 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 내지 촉진되었다고 봄이 합리적이고, 따라서 이 사건 상병과 원고의 업무 간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 이를 지적하는 원고의 주장은 이유 있고, 이와 다른 전제에서 이루어진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
<끝>
(문의)
*반올림 이종란(상임활동가/노무사) 010-8799-1302,
*문은영 변호사(법률사무소 문율/민변노동위원회) 010-7747-9772
[2023-06-23 반올림 성명]
법원에서 또, 반도체 노동자의 파킨슨병을 산업재해로 판결.
근로복지공단은 산재인정 판결을 받아들이고, 부당한 판정 관행 시정하라
1. 지난 6월 7일 서울행정법원(판사 김주완)은 신00님(47세, 남성)의 파킨슨병에 대해 산재인정 판결을 내렸습니다.
2. 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비록 의학적으로 현재까지 파킨슨병의 명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법적 · 규범적 관점에서 볼 때 원고가 근무할 당시 다수의 유기용제 등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된 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 내지 촉진되었다고 봄이 합리적이고, 특히 ‘보호구도 없이 유기용제를 취급하는 등 열악한 중소기업의 작업환경과 하루 12시간, 주7일 동안 휴무도 없이 일해 온 사정을 고려해, 유해물질의 노출 정도가 해당 상병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고 판시하였습니다. (2023. 6. 7. 판결선고, 2020구단51146 요양불승인처분취소)
3. 반올림은 아픈 당사자에게 매우 오랜 기다림 끝에 내려진 이번 판결을 환영합니다. 그리고 근로복지공단의 부당한 판정 관행을 시정할 것을 촉구합니다.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와 질병간의 상당인과관계를 판단하는데 있어, 의학적 관점으로 협소하게 판정할 것이 아니라, 법적 · 규범적 관점에서 여러 제반 사정을 고려하는 <대법원 판례> 기준대로 판정해야 합니다. 현재의 위법 부당한 공단의 불승인 판정 관행은 반드시 시정되어야 합니다.
4. 이번 판결로서 그동안 근로복지공단(경인질판위)의 불승인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3명의 파킨슨병 피해자 모두 산재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파킨슨병 피해자 (공단 경인질판위에서 불승인한 반도체노동자의 4번째 파킨슨병)도 지난 5월 15일 행정소송을 제기했는데, 신속한 산재인정 판결을 기대해봅니다.
5. 부디 공단은 반복되는 파킨슨 산재인정 판결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불필요한 항소를 제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공단이 지금 당장 할 일은 위법 부당한 판정 관행을 바로잡는 일입니다.
<재해 당사자(신00님)의 짧은 소감>
포기하지 마세요. 힘든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들이 계시니 용기를 가지십시오.
<원고 대리인 : 문은영 변호사(민변 노동위 소속)가 전하는 판결의 의미>
- 이번 판결은 앞선 2건 포함하여 전자산업에서 일하다 젊은 나이에 발생한 파킨슨병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한 판결임. 파킨슨병이 희귀질환이나 전자산업에서 사용되거나 발생하는 유기용제 노출과의 연관성이 인정된 만큼 근로복지공단은 이러한 법원의 판결 이유를 반영하여 파킨슨병의 인정기준을 정비할 필요가 있음
- 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재해자의 유해물질 노출수준을 판단하는데 있어 특히 2가지 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을 함.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안전보건관리가 취약한 중소기업의 열악한 업무환경을 충분히 고려한 점, △재해자가 2년 9개월간 하루 12시간, 1년간 거의 휴일 없이 일한 것에 대하여 통상적인 근무보다 약 2.1배 상당의 업무를 수행하여 근속기간을 5.8년으로 환산하여 노출수준을 추정하였는바, 재해자가 유해물질에 노출된 실질적인 기간 산정의 방법을 제시한 점이 특히 의미가 있음.
<첨부> 판결에 이르기까지 과정과 판결 주요내용
1. 파킨슨병의 진단과 공단 불승인 판정까지
이번 산재 인정 판결을 받은 당사자는 경기도 남양주에 살고 있는 신00 님(47세, 남성)으로, 2009년 만33세의 젊은 나이에 파킨슨병을 진단받은 후 14년째 서서히 굳어가는 몸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분이다.
신00님 은 2000년대 초중반 약 3년간 두 군데의 중소기업에서 TCE를 비롯해 여러 유해화학물질들을 보호장비도 없이 취급하여 레이저 다이오드, LED 등 반도체 제품을 개발, 생산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하루 12시간, 주 7일간 쉬지 않고(일 년에 겨우 5일을 쉼) 일하다 퇴사하였는데 2007. 6. 경부터 감각이상, 손 떨림 증상이 나타나더니 2009. 5. 파킨슨병을 진단 받았다.
이후 8년이 지난 2017. 7.에서야 반올림을 통해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신청을 접수하였다. 뒤늦게 신청을 하였지만 또 긴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2년 동안 역학조사를 거친 뒤 2019. 10. 근로복지공단 경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사유로 불승인 판정을 내렸다.
“이 사건 상병은 뇌신경계의 파괴로 인하여 몸의 움직임에 장애가 발생하는 상병으로 현대의학상 발병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유전적 요인 또는 유해인자로 인하여 특발적으로 발병할 수 있다는 소견이다. 원고는 LED 제조공정 중에 패키지, 개발, 팹, 몰딩공정 등의 작업을 한 것이 확인되나, TCE(트리클로로에틸렌)를 사용했는지 여부는 명확하지 않고, 설령 TCE를 사용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사용량이 적고 해당 작업에 약 6개월간 투입되어 노출수준이 높지 않으며, 2002~2003년경 이뤄진 작업환경측정결과에서 유기용제 및 산류의 노출수준이 허용 수치 이상으로 검출되지 않았다. 원고가 근무하였던 개발실은 별도의 국소환기시설 등이 설치되지 않아 실제 환경은 측정 환경보다 열악할 가능성은 있지만 해당 작업에 종사한 기간이 약 6개월로 짧고, 상병의 유해요인에 대하여 학술 보고가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상병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없다’라는 이유로 불승인 처분을 하였다.
2. 판결문에 적시된 관련 ‘법리’
1)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 제1호가 정하는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질병으로 인정하려면 업무와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그 증명책임은 원칙적으로 근로자 측에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법적·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면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산업재해 발생에 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더라도 그 근로자의 취업 당시의 건강상태, 질병 원인, 작업장에 발병 원인이 될 만한 물질이 있었는지 여부, 발병원인물질이 있는 작업장에서 근무한 기간 등의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경험칙과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인 추론을 통하여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 이 때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사회 평균인이 아니라 질병이 생긴 근로자의 건강 및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8. 5. 15. 선고 2008두3821 판결 등 참조).
2) 첨단산업분야에서 유해화학물질로 인한 질병에 대해 산업재해보상보험으로 근로자를 보호할 현실적· 규범적 이유가 있는 점,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과 기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근로자에게 발병한 질병이 이른바 ‘희귀질환’ 또는 첨단산업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유형의 질환에 해당하고 그에 관한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 특히 희귀질환의 평균 유병률이나 연령별 평균 유병률에 비해 특정 산업 종사자 군이나 특정 사업장에서 그 질환의 발병률 또는 일정 연령대의 발병률이 높거나, 사업주의 협조 거부 또는 관련 행정청의 조사 거부나 지연 등으로 그 질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업 환경상 유해요소들의 노출 정도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인정된다면, 이는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단계에서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할 수 있다. 나아가 작업환경에 여러 유해물질이나 유해요소가 존재하는 경우 개발 유해요인들이 특정 질환의 발병이나 악화에 복합적· 누적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대법원 2017. 8. 29. 선고 2015두3867 판결 등 참조)
3. 이 사건 주요 판결 내용
1) 원고는 각 사업장에서 그 사용 사실이 확인된 황산, 과산화수소, 이소프로필알코올, 아세톤, 메틸알코올, 에틸렌글리콜, 염산, 질산, 인산, 프로플렌글리콜 등 뿐 만 아니라, 관련 문헌과 연구자료 등을 통해 LED 제조· 연구개발 등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되고 있는 벤젠, 포름알데히드, 페놀, 메틸 이소부틸 케톤 등에도 직간접적으로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있고, 열악한 근무환경 및 과다한 근로시간, 유기화합물과 유기용제의 유해성에 관한 사업장 및 근로자들의 인식 수준이 낮았던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실제로 원고가 이 사건 각 사업장에서 노출된 유기화합물과 유기용제의 종류는 더 다양하고 그 노출 정도는 훨씬 중하다고 추론함이 합리적이다.
2) 파킨슨병은 60세 전후에 가장 많이 발병하고 대부분은 발병 원인을 알 수 없는 ‘특발성 파킨슨병’에 해당하는데, 파킨슨병 환자 중 약 5~10%만 유전적 문제로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원고는 만33세에 상병을 진단받았고, 유전적 소인이 확인되지는 않았다.
3) 전문가들의 의학적 견해(아래참조) 등을 종합해 보면, 비록 의학적 관점에서 현재까지 이 사건 상병의 명확한 원인, 유기용제·유기화합물에 대한 노출의 영향력이 명확하게 입증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 하더라도, 여러 유기용제 및 유기화합물에 대한 노출이 이 사건 상병의 발병 내지 촉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 관하여 의학적, 통계적 근거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판결문에 인용된 전문가들의 의학적 견해)
- 인하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임00: 원고가 파킨슨병에 관련된 유전자가 확인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보면 각 사업장에서 노출된 유기용제에 의해 발생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 산보연의 역학조사: 유기용제 노출로 인한 파킨슨병 발병위험은 많은 논쟁이 있다
-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김00 교수: 휘발성 유기화합물 노출이 파킨슨병 발병율을 높일 수 있는데 △ 세척작업의 경우 적절한 보호장구의 착용 없이 수행하는 과정에서 액상의 유기화합물이 피부를 통해 흡수될 수 있고 혼합 유기용제의 경우 단일 유기용제에 비해 피부 흡수 속도가 125.6배까지 증가한다는 연구가 있음. 원고가 세척작업 과정에서 경피 흡수를 통해 매우 높은 수준의 화학물질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상당함 △ 유기화합물은 몸에서 빠져나가는데 일정 시간이 필요한데, 원고와 같이 휴무일이 거의 없이 근무하는 경우 화학물질이 몸에서 빠져 나가지 못한 상태에서 노출이 재개되어 높은 농도의 유해인자가 축적될 수 있다. 원고는 33개월간 하루 12시간, 주7일을 근무하였으므로 이를 하루 8시간, 주5일 근무 기준으로 환산할 경우 약 2.1배 상당의 업무를 수행한 것이므로, 약 5.8년 동안 업무를 수행하였다고 볼 수 있다. △ 원고가 근무하였던 2002년경에 작업환경상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인식이 전무하여 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 중소기업의 작업환경이 열악하였을 것에 대한 고려도 필요함.
- 법원 진료기록 감정의(서울대병원 신경과 전문의 김00): TCE에 대한 노출, 유기화합물 및 부산물, 극저주파 자기장에 대한 노출이 이 사건 상병의 발병 원인이라고 볼 만한 의학적 근거는 없음.
4) 앞서 본 여러 사정들을 종합하면, 비록 의학적으로 현재까지 이 사건 상병의 명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법적· 규범적 관점에서 이 사건 상병은 원고의 유전적 요인 또는 업무와 무관한 환경적 요인으로 발생하였다기보다는, 원고가 이 사건 각 사업장에서 근무할 당시에 다수의 유기용제 및 유기화합물에 직간접적· 복합적으로 노출된 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 내지 촉진되었다고 봄이 합리적이고, 따라서 이 사건 상병과 원고의 업무 간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 이를 지적하는 원고의 주장은 이유 있고, 이와 다른 전제에서 이루어진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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