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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및 논평 법원, 서울반도체 작업환경측정보고서 ‘정보공개하라’ 판결 (확정)

반올림
2024-12-23
조회수 405

[반올림 성명/보도자료(2024-12-23)]

유해한 작업 환경에 대하여 '알 권리' 를 보장한  법원의 판결을 환영한다. 


수원지방법원, 서울반도체 작업환경측정보고서 ‘정보공개하라’ 판결 (확정)

‘작업환경측정보고서’는 영업비밀 아니고, 생명과 건강을 위해 공개해야 하는 정보. 

 

수원지방법원(재판장 김은구)은 '서울반도체 주식회사'의 과거 작업환경측정 결과 보고서(2015-2019년)의 내용 중, '화학물질 상품명'과 '월 취급량'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공개하라고 지난 11월 28일 판결했다. 반올림의 정보공개 청구에 따른 고용노동부의 공개 결정에 대해 서울반도체 측이 취소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한 판결이다. 해당 판결은 고용노동부의 항소제기가 없어 2024. 12. 20. 최종 확정되었다.

 

'작업환경 측정 결과 보고서'(이하 '작측보고서')는 산업안전보건법(제125조 이하)에 따라 작성되는 문서로서, 사업장 내 유해인자 노출 수준과 그 관리 실태를 알 수 있는 문서다. 산업안전보건법 제125조에서는 ‘사업주는 유해인자로부터 근로자의 건강을 보호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하기 위하여 인체에 해로운 작업을 하는 작업장으로서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작업장에 대하여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자격을 가진 자로 하여금 작업환경측정을 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유해인자 노출에 따른 직업병 산재 사건에서는 작업환경의 유해성을 파악할 수 있는 핵심 자료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삼성전자와 같은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직업병 사건에서 조차 이 보고서의 비공개를 주장해 왔고, 이에 반올림은 2016년부터 '삼성 반도체 온양 공장' 관련 소송을 시작으로 '작측보고서' 공개를 위한 법정 싸움을 벌여 왔다.

 

2018년 2월 대전고법이 삼성반도체 온양 공장 보고서의 공개를 명하고 고용노동부가 '안전보건자료 정보공개지침'을 마련하면서, 이 문제는 올바르게 해결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2018년 3월 부터 삼성전자가 산업통상자원부를 끌어들여 이 보고서에 대한 '국가핵심기술 판정'을 받아내고, 2019년 7월 국회가 '국가핵심기술 관련 정보 비공개' 조항이 추가된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작측보고서 공개 논란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관련 소송에서 반도체 기업들의 주장은 대동소이했다. 보고서에 기재된 '측정대상 유해인자',' 공정명' 등을 통해 기업의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공정 레이아웃', '물질 배합정보' 등을 추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서울반도체' 측도 같은 주장을 했다. 하지만 그러한 추론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잘 설명하지 못했다. 작측보고서의 작성 취지나 성격, 그 안에 실제 기재되는 내용들을 보았을 때, 그러한 추론이 가능할리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도 작측보고서의 내용을 통해 기업의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공정 레이아웃, 물질 배합 정보등을 추론할 수는 없다고 했다. 회사 측이 추론할 수 있다고 주장할 뿐 구체적인 추론 방법은 설명하지 못하였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한 이유에서 작측보고서의 주요 내용들이 정보공개법상 비공개 대상인 "법인의 경영상ㆍ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법인등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제9조 제1항 제7호)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나아가 작측보고서의 주요 내용이 정보공개법상 절대적 공개 대상인 "‘사업활동에 의하여 발생하는 위해(危害)로 부터 사람의 생명․신체 또는 건강을 보호하기 위하여 공개할 필요가 있는 정보"(제9조 제1항 제7호 가목)에 해당된다는 판단도 하였다. 따라서 측정 대상 부서 또는 공정명, 화학물질명, 단위작업장소, 유해인자, 측정방법, 측정건수, 측정치 등에 대해 공개하여야 한다.

 

다만 이 보고서에 기재된 '화학물질명(상품명) 항목 중 상품명이 기재된 부분', '월취급량'은 기업의 영업비밀에 해당될 수 있어, 이를 일반 대중에게 공개해야 할 이익이 그 공개로 침해될 수 있는 기업의 이익보다 더 크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비공개 대상으로 보았다.

 

결론에 있어 아쉬움이 없지 않다. 하지만 법원이 사측 영업비밀 주장의 타당성과 입증 여부를 구체적으로 살펴, 그 당ㆍ부당을 주체적으로 판단하였다는 점에서 반가운 판결이다.

 

반도체 노동자들의 직업병 인정 투쟁에서 삼성과 같은 기업들이 노골적으로 작업환경 문제를 은폐할 수 있었던 건, 그들의 무분별한 영업비밀 주장에 대해 누구도 규범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관련 자료를 보유하고 있는 공공기관들이 그러한 판단을 회피한 채 기업들이 원하는 '비공개' 결정을 해주었다. 법원도 일부 판결에서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 '영업비밀'이라는 말 한마디에 잔뜩 움추려 들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반도체 기업들은 손쉽게 작업환경 문제를 은폐할 수 있었다.

 

이번 수원지방법원의 판결은 그 작업환경 자료의 공개 문제가 기업의 일방적인 '영업비밀' 주장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보공개법과 관련 판례들이 마련해 온 규범적 평가 기준들에 의해 판단되어야 함을 명확하게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그러한 판단이 여러 공공기관에서 주체적으로 나올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아픈 노동자들이 작업환경 문제를 은폐하는 기업보다 그 은폐에 적극 조력하는 정부, 법원에 의해 더 크게 상처받는 일이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 아울러, '작업환경 측정 결과 보고서'는 노동건강권 실현을 위한 알권리의 대상 정보로서 가장 기본이 되는 자료다. 이러한 문서 조차 온전히 공개되지 못하는 현실이 하루 빨리 개선되기를 바란다.

 

2024. 12. 23.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첨부>

 

판결문 (아래 링크) 2020구합64195 정보공개결정취소

https://drive.google.com/file/d/1IB1QvxS0P1dP9-LIForsRnncZhx0I86L/view?usp=sharing


2. 보조참가인으로 참여한 이상수 반올림 상임활동가의 소감

 

고 이가영님(26세)은 LED를 만드는 서울반도체에서 일하다 혈액암인 악성 림프종에 걸렸습니다. 서울반도체는 이가영님의 악성림프종에 대한 산재가 공단에서 인정된 후 이를 취소시키려 무리하게 소송을 제기하였고, 치료에 집중해야 할 이가영 님과 가족에게 큰 고통을 주었습니다. 결국 서울반도체는 이가영 님이 돌아가신 후에야 소송을 취소하여 사회적 비난을 받았습니다.

 

2019년에는 서울반도체에서 대학생 현장실습생으로 일하던 2명의 노동자를 포함해 협력업체 노동자 7명이 방사선에 노출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방사선 검사기계의 인터락(안전장치)을 해제한 상태에서 작업을 하다 방사선에 피폭되는 사고를 당한 것으로 당시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원자력안전법령 위반으로 과태료 총 1050만원 및 과징금 3500만원을 부과했습니다. 또한 이 사고 후 노동부가 작성한 안전보건진단보고서를 통해 서울반도체의 심각한 안전보건 실태를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발암성 물질이 발생 및 사용됨에도 관리가 부족’, ‘화학물질에 대한 관리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작업환경측정, 특수건강검진 등에서 누락이 발생’, ‘밀폐공간 보건작업 프로그램이 미흡’, ‘관리감독자의 위험성평가에 대한 지식 및 인지가 부족한 상태로 위험성에 비하여 위험성 추정을 소극적으로 실시’, ‘위험성을 간과하여 개선 활동으로 연계되지 않아’, ‘근골격계 질환 예방, 직무스트레스 평가, 위험성 평가, 개인보호구 지급관리, 유해화학물질 관리 미흡’ 등 서울반도체는 안전보건관리가 너무나 부실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서울반도체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방사선 피폭’ 판정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내용으로 위험성을 축소·왜곡해서 사내방송을 제작한 뒤 노동자들에게 전파한 바 있습니다.

 

반도체 사업장은 다양한 화학물질 뿐만 아니라, 방사선, 야간교대 근무 등 여러 복합적인 건강 유행요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울반도체의 경우 여러 반도체 회사 중에서도 위험성이 높은 회사임이 사고와 직업병 발병으로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안전보건관리도 부실한 기업이었지만 안전보건문제를 대하는 사업주의 잘못된 인식이 가장 큰 위험요인이라고 할 수 있는 기업이었습니다.

 

이에 반올림은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 등 노동부가 보유한 회사자료를 바탕으로, 서울반도체 공장의 위험을 더욱 면밀히 감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여 정보공개를 요청했습니다. 서울반도체가 고용노동부의 공개 결정을 막기 위해 제기한 이 몰염치한 소송에서 다행히 대부분의 정보를 공개하도록 한 판결이 나왔습니다. 아쉬움이 없진 않지만, 기업들의 작업환경 은폐 시도에 대하여 제동을 거는 의미 있는 판결이라 생각합니다.

 

반올림은 앞으로도 반도체 전자산업에 대한 감시의 노력을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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