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연구개발직을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이상 일할 수 있게 하는 반도체특별법이 논란이다. 특정 산업과 노동자에 근로기준법의 예외를 허용하는 법안을 놓고 우려가 크다. 현직 반도체 노동자들과 안전보건 전문가들이 반도체특별법의 문제점을 짚었다. <편집자>
최근 반도체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논의가 뜨거워지는 가운데, 노동시간과 관련된 논쟁도 다시 불붙고 있다. 이는 과거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했던 ‘주 69시간 근무제’ 논란과 맥을 같이한다. 당시에도 노동시간 증가와 ‘몰아서 일하는 방식’이 노동자의 건강을 해치고 사고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다수 제시된 바 있다.

▲이상윤(노동건강연대 공동대표,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노동시간이 길어질수록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에 부정적인 영향이 커진다는 점은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된 사실이다. 이른바 ‘양-반응 관계(dose-response relationship)’에 따라 노동시간이 늘어나면 그에 비례해 건강 악화와 사고 위험도 증가한다. 만약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면, 최대한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실제로 주 40시간 이상 근무하면 어떤 방식이든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며 사고 발생 가능성도 커진다.
노동시간을 압축적으로 배치하는 이른바 ‘몰아서 일하기’ 방식이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할 때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여러 형태의 ‘몰아서 일하기’ 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 40시간 이상 근무하면서 근무 사이 최소 11시간의 휴식 시간마저 보장되지 않는 형태의 압축적 노동 시간제는 노동자의 건강을 해치고 사고 위험을 증가시킨다.
오랜 시간 일하고 불규칙적으로 몰아서 근무하는 방식이 건강과 안전에 좋지 않다는 사실은 복잡한 학술적 논의를 거치지 않더라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문제다. 이는 일반 국민뿐만 아니라 노동시간 규제 예외를 주장하는 측에서도 부정하기 어려운 명백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기업은 노동시간을 늘릴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은 안중에 없는 것일까.
노동시간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측은 개인의 선택권을 내세운다. 일부 노동자들은 건강에 나쁜 것을 알고도 재정적 목표를 달성하거나 가정에서의 의무에서 벗어나기 위해 장시간 근무를 선호할 수도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노동시간 선택은 단순한 개인적 선호가 아니라 노동시장의 구조적 조건에 의해 좌우된다. 한 사회의 노동시장 정책, 단체교섭 제도, 노동권 보장 수준 등이 개인의 노동 선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분절화돼 있으며 이러한 구조는 노동시간 규제 완화를 더욱 쉽게 만든다. 비정규직뿐 아니라 최근에는 고소득 전문직과 관리직에서도 노동시간 규제 완화의 ‘약한 고리’가 형성되고 있다. ‘고소득 연구개발직’에 대한 노동시간 규제 완화 논의는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이다. 소위 ‘화이트칼라 이그젬션(White-Collar Exemption)’은 특정 고소득 전문직에만 노동시간 규제를 풀어주는 제도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는 노동시장의 분절화를 가속화하고, 노동시간 연장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노동시장이 근본적으로 재편되면서 기존의 고소득 전문직조차 새로운 형태의 노동 취약성을 경험하고 있다. 한때 안정적이었던 전문직들도 ‘승자독식’의 논리에 휩쓸리며 과도한 노동시간에 시달리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장시간 노동 구조는 젠더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킨다는 것도 문제다. 노동시간이 길어질수록 파트너의 가사와 육아 부담이 가중되며 여성들이 자신의 능력보다 낮은 직업을 선택하게 만든다. 고소득 전문직과 관리직에서 장시간 노동이 관행화되면 여성의 고소득 전문직 진출이 더욱 어려워지고 성별 격차는 심화한다.
정부와 기업측은 ‘이번 제도는 특정 고소득 연구개발직에만 한정된다’며 노동시간 연장이 노동시장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예외를 허용하는 순간 한국의 노동시장은 더욱 분절화되고, 젠더 불평등은 심화할 것이다.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을 위해서도 이러한 법안은 저지돼야 한다.
이상윤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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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과로특별법을 막아라 ③] 고소득·전문직에 한정? 노동시장 분절 가속
이상윤(노동건강연대 공동대표,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반도체 연구개발직을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이상 일할 수 있게 하는 반도체특별법이 논란이다. 특정 산업과 노동자에 근로기준법의 예외를 허용하는 법안을 놓고 우려가 크다. 현직 반도체 노동자들과 안전보건 전문가들이 반도체특별법의 문제점을 짚었다. <편집자>
최근 반도체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논의가 뜨거워지는 가운데, 노동시간과 관련된 논쟁도 다시 불붙고 있다. 이는 과거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했던 ‘주 69시간 근무제’ 논란과 맥을 같이한다. 당시에도 노동시간 증가와 ‘몰아서 일하는 방식’이 노동자의 건강을 해치고 사고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다수 제시된 바 있다.
노동시간이 길어질수록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에 부정적인 영향이 커진다는 점은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된 사실이다. 이른바 ‘양-반응 관계(dose-response relationship)’에 따라 노동시간이 늘어나면 그에 비례해 건강 악화와 사고 위험도 증가한다. 만약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면, 최대한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실제로 주 40시간 이상 근무하면 어떤 방식이든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며 사고 발생 가능성도 커진다.
노동시간을 압축적으로 배치하는 이른바 ‘몰아서 일하기’ 방식이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할 때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여러 형태의 ‘몰아서 일하기’ 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 40시간 이상 근무하면서 근무 사이 최소 11시간의 휴식 시간마저 보장되지 않는 형태의 압축적 노동 시간제는 노동자의 건강을 해치고 사고 위험을 증가시킨다.
오랜 시간 일하고 불규칙적으로 몰아서 근무하는 방식이 건강과 안전에 좋지 않다는 사실은 복잡한 학술적 논의를 거치지 않더라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문제다. 이는 일반 국민뿐만 아니라 노동시간 규제 예외를 주장하는 측에서도 부정하기 어려운 명백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기업은 노동시간을 늘릴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은 안중에 없는 것일까.
노동시간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측은 개인의 선택권을 내세운다. 일부 노동자들은 건강에 나쁜 것을 알고도 재정적 목표를 달성하거나 가정에서의 의무에서 벗어나기 위해 장시간 근무를 선호할 수도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노동시간 선택은 단순한 개인적 선호가 아니라 노동시장의 구조적 조건에 의해 좌우된다. 한 사회의 노동시장 정책, 단체교섭 제도, 노동권 보장 수준 등이 개인의 노동 선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분절화돼 있으며 이러한 구조는 노동시간 규제 완화를 더욱 쉽게 만든다. 비정규직뿐 아니라 최근에는 고소득 전문직과 관리직에서도 노동시간 규제 완화의 ‘약한 고리’가 형성되고 있다. ‘고소득 연구개발직’에 대한 노동시간 규제 완화 논의는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이다. 소위 ‘화이트칼라 이그젬션(White-Collar Exemption)’은 특정 고소득 전문직에만 노동시간 규제를 풀어주는 제도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는 노동시장의 분절화를 가속화하고, 노동시간 연장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노동시장이 근본적으로 재편되면서 기존의 고소득 전문직조차 새로운 형태의 노동 취약성을 경험하고 있다. 한때 안정적이었던 전문직들도 ‘승자독식’의 논리에 휩쓸리며 과도한 노동시간에 시달리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장시간 노동 구조는 젠더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킨다는 것도 문제다. 노동시간이 길어질수록 파트너의 가사와 육아 부담이 가중되며 여성들이 자신의 능력보다 낮은 직업을 선택하게 만든다. 고소득 전문직과 관리직에서 장시간 노동이 관행화되면 여성의 고소득 전문직 진출이 더욱 어려워지고 성별 격차는 심화한다.
정부와 기업측은 ‘이번 제도는 특정 고소득 연구개발직에만 한정된다’며 노동시간 연장이 노동시장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예외를 허용하는 순간 한국의 노동시장은 더욱 분절화되고, 젠더 불평등은 심화할 것이다.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을 위해서도 이러한 법안은 저지돼야 한다.
이상윤 webmaster@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