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중소 노동자들도 ‘반도체특별법’ 공포
“매년 과로사 들려···‘산업비밀’ 명목 통제”
일부 생산직 이름만 ‘연구보조’로 바꾸기도

‘재벌 특혜 반도체 특별법 저지 및 노동시간 연장 반대 공동행동’이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한 후 과로로 쓰러지는 반도체노동자를 표현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반도체 후공정 중견기업에서 생산직(오퍼레이터)으로 일하는 A씨는 매년 직장 동료의 과로사·과로자살 소식을 듣는다.
과로의 위협은 생산직과 연구개발직(R&D) 엔지니어를 가리지 않았다. 한 엔지니어의 유족은 A씨에게 “남편이 한 번도 업무용 노트북을 놓아본 적이 없고, 10년 넘는 동안 가족여행을 딱 한 번 했는데 그때도 노트북을 가져갔다”고 했다.
반도체 R&D 직군을 ‘주 52시간’ 규제에서 제외시키는 ‘반도체특별법’이 논의되는 상황이 A씨는 두렵다. 그는 11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과로사의 주 원인인) 뇌심혈관계 질병 사망은 지금도 빈번하다”며 “생산에 문제가 생기면 현장은 엔지니어에게 연락해야 하고, 엔지니어는 고객사에게 연락해야 한다”며 “후공정 특성상 전세계 고객사와 연락해야 하는데, 그들이 한국 시간에 맞춰서 일하는 게 아니니 엔지니어들은 퇴근해도 노트북을 손에서 놓을 수 없다”고 했다.
반도체 산업은 ‘산업기밀’이라는 이유로 과로를 증명할 근무기록 등 자료를 확보하기도 어렵다고 A씨는 말했다. R&D 노동자가 과로로 숨져도 업무용 노트북을 회사가 가져간다고 했다.
A씨는 “동료가 회사 컴퓨터에서 근무기록 등 자료를 확보해주려 해도, 컴퓨터 접속을 누가 하는지까지 기록돼 유출자를 쉽게 특정할 수 있다”며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큰 기업들은 근로복지공단에 사례가 많겠지만, 중견·중소기업 노동자들은 산재를 증명하기 어려워 산재신청도 거의 없다”고 했다.

‘재벌 특혜 반도체 특별법 저지 및 노동시간 연장 반대 공동행동’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A씨는 ‘주 52시간’ 예외가 R&D 직군을 넘어 생산직 등 다른 직군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본다. 그의 직장도 일부 생산직 오퍼레이터를 이름만 ‘엔지니어 보조’ ‘연구보조직’ 등으로 바꿨다. 그는 “25년 넘게 일하는 동안 제 주변에 암 사망만 15명이 넘는다”며 “이미 불법적으로 법정노동시간을 넘기면서 포괄임금제 명목으로 제대로 된 보상도 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주 52시간 규제 예외까지 적용되는 상황이 가장 걱정된다”고 했다.
반도체특별법 입법을 추진해 온 정부와 국민의힘은 물론,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까지 ‘주 52시간’ 적용 제외 가능성을 열어둔 것도 우려스럽다. 그는 “윤석열 정부가 ‘주 120시간’ ‘주 69시간’을 이야기할 때 민주당은 반대했는데 지금 탄핵 국면에서 갑자기 입장을 바꿨다”며 “이재명 대표는 ‘잠깐 몰아서 일하는 게 왜 안 되느냐’고 하던데 몰아서 일한 뒤 몰아서 쉰다고 해서 몸이 회복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A씨는 노동시간 규제 완화가 반도체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주 52시간제가 무너지는 건 둘째치고, 지금도 현장의 과로를 본 신입들이 1년도 안 돼 나가는 바람에 기간제와 아르바이트까지 투입하는 상황”이라며 “지금도 엔지니어들은 2~3년을 채워 경력을 쌓고 다른 회사나 외국 회사로 나가버린다”고 했다. 그는 “과로와 직업병 산재를 막아야 반도체 경쟁력이 올라갈 것”이라며 “오히려 지금도 일어나는 부당한 불법 과로를 막아야 한다”고 했다.
▼ 더 알아보려면
반도체 R&D 직군을 ‘주 52시간’ 노동시간 규제에서 예외시키는 내용을 담은 ‘반도체특별법’이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습니다. 업계는 지금 한국 반도체 산업이 위기라며, 장시간 집중 노동으로 R&D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당사자인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이 R&D 성과를 오히려 저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반도체 위기가 ‘삼성전자의 경영 실패로 인한 삼성전자의 위기’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반도체특별법 통과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52시간 예외 적용’에 반대 입장이었지만, 최근 이재명 대표가 ‘검토해볼 수 있다’고 밝힌 뒤로 명확한 찬·반을 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관련 기사들을 공유합니다.
“매년 동료 과로사 들어···반도체 R&D 52시간 풀면 생산직도 위험”
중견·중소 노동자들도 ‘반도체특별법’ 공포
“매년 과로사 들려···‘산업비밀’ 명목 통제”
일부 생산직 이름만 ‘연구보조’로 바꾸기도
‘재벌 특혜 반도체 특별법 저지 및 노동시간 연장 반대 공동행동’이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한 후 과로로 쓰러지는 반도체노동자를 표현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반도체 후공정 중견기업에서 생산직(오퍼레이터)으로 일하는 A씨는 매년 직장 동료의 과로사·과로자살 소식을 듣는다.
과로의 위협은 생산직과 연구개발직(R&D) 엔지니어를 가리지 않았다. 한 엔지니어의 유족은 A씨에게 “남편이 한 번도 업무용 노트북을 놓아본 적이 없고, 10년 넘는 동안 가족여행을 딱 한 번 했는데 그때도 노트북을 가져갔다”고 했다.
반도체 R&D 직군을 ‘주 52시간’ 규제에서 제외시키는 ‘반도체특별법’이 논의되는 상황이 A씨는 두렵다. 그는 11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과로사의 주 원인인) 뇌심혈관계 질병 사망은 지금도 빈번하다”며 “생산에 문제가 생기면 현장은 엔지니어에게 연락해야 하고, 엔지니어는 고객사에게 연락해야 한다”며 “후공정 특성상 전세계 고객사와 연락해야 하는데, 그들이 한국 시간에 맞춰서 일하는 게 아니니 엔지니어들은 퇴근해도 노트북을 손에서 놓을 수 없다”고 했다.
반도체 산업은 ‘산업기밀’이라는 이유로 과로를 증명할 근무기록 등 자료를 확보하기도 어렵다고 A씨는 말했다. R&D 노동자가 과로로 숨져도 업무용 노트북을 회사가 가져간다고 했다.
A씨는 “동료가 회사 컴퓨터에서 근무기록 등 자료를 확보해주려 해도, 컴퓨터 접속을 누가 하는지까지 기록돼 유출자를 쉽게 특정할 수 있다”며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큰 기업들은 근로복지공단에 사례가 많겠지만, 중견·중소기업 노동자들은 산재를 증명하기 어려워 산재신청도 거의 없다”고 했다.
‘재벌 특혜 반도체 특별법 저지 및 노동시간 연장 반대 공동행동’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A씨는 ‘주 52시간’ 예외가 R&D 직군을 넘어 생산직 등 다른 직군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본다. 그의 직장도 일부 생산직 오퍼레이터를 이름만 ‘엔지니어 보조’ ‘연구보조직’ 등으로 바꿨다. 그는 “25년 넘게 일하는 동안 제 주변에 암 사망만 15명이 넘는다”며 “이미 불법적으로 법정노동시간을 넘기면서 포괄임금제 명목으로 제대로 된 보상도 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주 52시간 규제 예외까지 적용되는 상황이 가장 걱정된다”고 했다.
반도체특별법 입법을 추진해 온 정부와 국민의힘은 물론,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까지 ‘주 52시간’ 적용 제외 가능성을 열어둔 것도 우려스럽다. 그는 “윤석열 정부가 ‘주 120시간’ ‘주 69시간’을 이야기할 때 민주당은 반대했는데 지금 탄핵 국면에서 갑자기 입장을 바꿨다”며 “이재명 대표는 ‘잠깐 몰아서 일하는 게 왜 안 되느냐’고 하던데 몰아서 일한 뒤 몰아서 쉰다고 해서 몸이 회복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A씨는 노동시간 규제 완화가 반도체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주 52시간제가 무너지는 건 둘째치고, 지금도 현장의 과로를 본 신입들이 1년도 안 돼 나가는 바람에 기간제와 아르바이트까지 투입하는 상황”이라며 “지금도 엔지니어들은 2~3년을 채워 경력을 쌓고 다른 회사나 외국 회사로 나가버린다”고 했다. 그는 “과로와 직업병 산재를 막아야 반도체 경쟁력이 올라갈 것”이라며 “오히려 지금도 일어나는 부당한 불법 과로를 막아야 한다”고 했다.
▼ 더 알아보려면
반도체 R&D 직군을 ‘주 52시간’ 노동시간 규제에서 예외시키는 내용을 담은 ‘반도체특별법’이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습니다. 업계는 지금 한국 반도체 산업이 위기라며, 장시간 집중 노동으로 R&D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당사자인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이 R&D 성과를 오히려 저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반도체 위기가 ‘삼성전자의 경영 실패로 인한 삼성전자의 위기’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반도체특별법 통과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52시간 예외 적용’에 반대 입장이었지만, 최근 이재명 대표가 ‘검토해볼 수 있다’고 밝힌 뒤로 명확한 찬·반을 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관련 기사들을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