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알림 [2015.01.12]고 김주현님 4주기를 추모하며

반올림
2022-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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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은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여기저기 노동자들의 신음소리가 들립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은 이 엄동설한에 굴뚝 농성을 벌이고, 정리해고 철폐를 위한 오체투지 행진단은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희망을 일구어내기 위해 온몸을 차갑고 더러운 바닥에 던집니다. 가장 평화로운 방식의 오체투지 마저도 경찰은 폭력적으로 가로 막습니다. 쌍용차 정리해고가 적법하다고 하는 기막힌 대법원 판결만 아니었어도, 쌍용차의 신차 ‘티볼리’ 생산을 위해 회사가 해고자들을 복직시키겠다는 약속만 하여도 좋겠는데, 이러한 소박한 바램은 냉정하고 잔인한 현실앞에 처절해 지고 맙니다.

 

오늘(12일) 낮 한시반경 끔찍한 중대재해가 또 벌어졌습니다. 파주의 엘지디스플레이 공장에서 설비를 보수하러 현장에 들어갔던 세 명의 협력업체 노동자가 질소가스에 질식하여 2명이 죽고 1명은 중태라고 합니다. 정확한 사고경위와 피해경위는 더 파악해 봐야 하겠지만, 이 끔찍한 사고는 단 오늘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우리는 이러한 재앙과 마주합니다. 불과 한 달 전에 똑같은 방식의 사고가 신고리 원전 건설현장에서 나타났습니다. 그 때도 질소가스에 누출되어 협력업체 직원 세명이 숨졌습니다. 같은 엘지디스플레이 공장에서 일하다 폐암으로 숨진 강00님, 뇌종양으로 숨진 심규석님도 떠오릅니다. 구미의 엘지디스플레이 공장의 백혈병 피해노동자 소00님도 떠오릅니다.

 

세월호 문제를 겪으면서도 우리사회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아니 이미 노동자들이 일하는 현장은 매일같이 세월호 참사를 겪고 있습니다. 일터에서의 죽음의 위험은 원청노동자에서 하청노동자로, 한국노동자에게서 이주노동자로, 선진국노동자에서 후진국 노동자로 이주해 가기만 합니다. 돈보다 생명을 외치고, 이윤보다 소중한 인간존엄을 외치지만 산업현장에서 생명과 존엄은 너무 우스워집니다. 그러면서 내일은 또 어떤 노동자들이 사라질까 무섭기만 합니다.

 

어쩌면 이러한 세상에서는 꿈을 꾸는게 아니라 “죽지만 않게 해달라”고 바라는 게 더 현실적인 바램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노동자들이 충분한 임금과 충분한 휴식, 안전한 일터에서 고용불안 없이 일하는 게 어느 것보다 어려운 세상에서는 꿈을 꾼다는 게 공염불 같습니다.

 

어제(11일)는 4년 전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한 고 김주현 님의 추모기일이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주현씨 가족들은 마석 모란공원의 주현씨 묘소를 찾아 꽃을 새로 단장하고 추모의식을 진행했습니다. 저희는 죄송하게도 주현씨 묘소에 함께 다녀오지 못했네요. 대신 주현씨 아버님이 사진 한 장 찍어 보내주셨습니다. 사진속 주현씨의 얼굴은 그대로고 주현씨의 묘소도 예년과 비슷합니다. 최근 눈이 온 적이 없는데도 모란공원 묘지 위에 쌓인 눈은 쉬이 녹지 않고 그대롭니다.

4년 전 자살로 생을 마감한 고 김주현 님의 경우도 삼성전자에 입사할 당시엔 누구보다 꿈에 부풀어 있었던 젊은 엔지니어였습니다. 심한 과로와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이 그를 괴롭히기 전까지는 말이죠.

 

2011년 1월 11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자식이, 삼성전자에 입사한지 1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주현씨는 기숙사 13층에서 투신하여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주현씨 부모님은 장례를 미뤘습니다. 평생 평범한 노동자로 살아온 주현씨 부모님은 아들이 왜 죽었는지 알아내기 위해 경찰서와 노동부를 오가고, 삼성본관앞에서 폭력경비랑 대치하면서 삼성에게 사과한마디 받기 위해 끈질기게 싸웠습니다. 그 결과 비공개적인 방식이나마 사과를 받아내고 97일만에 장례를 치룰수 있었지요.

 

그 뒤 4년이 흘렀습니다.

 

4년이 흘렀지만 주현씨의 묘소엔 주현씨의 유골이 아직 묻히지 않았습니다. 주현씨의 가족들은 조금 더 가까이에서 주현씨를 보고싶다는 생각에 유골함을 아직 곁에 두고 계십니다. 처음엔 그게 괴로울 거라는 우리 생각에 어서 빨리 주현씨를 보내드리는게 낫지 않겠냐고 재촉을 거듭했으나 어쩌면 그건 우리 욕심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주현씨의 가족이 주현씨를 잘 떠내보낼 준비가 될 때까지, 아니면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더라도 더는 크게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고 김주현님의 명복을 빕니다.

더불어 오늘 운명하신 파주 엘지디스플레이 두 명의 노동자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