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알림 [2016.01.19]2016.1.19. 105일차 이어말하기 손님- 세월호 희생자 동혁 아버님, 어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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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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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9. 이어말하기

 

손님 : 세월호 동혁이 아버님, 어머님

 

이 곳에 사람이 있다. 삼성직업병 문제가 105일째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 농성장이 있다. 이 곳에서 우리는 안전보건 활동 얘기, 노동현장에서 죽어간 이들의 얘기, 희생된 이들 얘기를 해왔다. 세월호는 가장 큰 아픔 중의 하나였다. 하고 있는 안전에 관한 일인데,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싶어 마음이 무서운 사건이었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의 세상은 달라져야 한다.

 

소개해달라.

단원고 2-4반 김동혁 아버지 김영래이다. 이 추위에 이렇게 이 곳에 있다는 것에 놀랐고, 삼성이 잘못하는 것에 화가 난다. 악이 선을 이길 수 없다고 믿는다. 힘든 싸움이지만, 희망을 갖고 끝내 살아서 승리하는 우리였으면 좋겠다.

 

동혁이 엄마 김성실이다. 여기 찾아 오니까. 8번 출구 앞에 있다 해서 설마 비닐 뭉치일까 했는데, 기가 기더라. 충격적이었다. 그 와중에 감사하단 생각이 들더라. 우린 피해자가 많아서 세간의 관심을 가져주고 서로가 위로가 되었는데, 여기 오니까 많이 외롭겠다. 여기 많이 힘들겠다싶다. 삼성 주식을 갖고 있는데, 예전에는 삼성이 국가의 중심이라 생각했는데, 눈을 뜨고 나니 힘들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 하나라도 설득하기 위해 나서서 말하고 다닐거다. 세월호나 삼성직업병으로 힘든 분들이 힘냈으면 좋겠다.

 

나름 5성급 호텔이라 자랑했는데, 서울의 많은 천막 농성장 중에서 비닐 하우스 비닐이라도 덮으니 그 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고공농성 중 비닐도, 음식 공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보다는 낫다. 비닐 2장이 다행이라 여기며 아프고 힘든 현실을 견디고 있다. 이런 아픔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싸우는 분들이 계셔서 세상은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오늘 해수부에 다녀온 이유?

이의 신청을 해서 기각 될 것을 알면서도 소송으로 가려고 준비한다.

 

이기리라 생각하지 않지만 시작했다. 결단 내린 이유?

동혁이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살아있을 때 아빠가 어떨 때라도 지켜줄게라는 약속을 못 시켜서 미안한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돈이 행복의 잣대가 아니다. 22년째 직장생활 하는데, 월급 받으면 동혁, 예원이에게 아이가 먹고 싶은 거 사줄 때 행복했다. 다른 부모도 마음을 같은 거다. 아이를 위해 내가 천만 번 죽을 수 있다면 다 그 선택을 할 것이다. 내가 천만번 죽는다 해도 동혁이는 살아돌아오지 못하기에 나중에 동혁이를 만나서 해 줄 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빠가 이런 일을 해왔다.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소송 중이다. 계란으로 바위를 계속 치면 균열이 생기리라 생각한다.

 

삼성직업병 문제를 제기할 때 계란으로 바위치기일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바위에 계란의 흔적이 남긴다. 이 문제가 세상에 있음을 남겨야 한다. 그 마음으로 싸웠고, 그 흔적이 쌓여 균열이 조금씩 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월호 문제도 그렇고, 삼성백혈병 문제도 그렇고, 세상 사람들이 더 이상 기억하지 않고 잊혀졌으면 하는 일들이 우뚝 설 수 있도록 든든히 옆에 서있어야 한다 생각한다.

 

합창단으로 활동하신다는데 어떤가?

처음에는 같이 웃을 수 있을까. 망설였는데. 평화의 나무 분들을 보면서 존경스러웠다. 10년 전부터 노래를 부르면서 힘든 분들 찾아다니면서 노래로 치유를 하고 기쁨을 주는데, 나는 뭐했나. 동혁이를 잃지 않았으면 나는 뭘 했을까. 싶어 죄송하더라. 그럴 때 평화의 나무 분들이 보듬어 주시더라. 나가면 어느새 웃고 있고, 끌어안고 울고 있더라. 응원해주고 헤아려주시는 분들이 계시기에 버티고 있다. 그분들이 우리의 약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아플 때 일으켜 세우는 가족같은 분들이다. 1주만 안 보면 보고 싶고, 같이 노래 하고 싶다. 앞으로 같이 하고 싶을 때까지 같이 하고 싶다. 세월호 진상규명이 언젠가 되면 평화의 나무 오디션 봐서 아픈 분들 찾아다니면서 노래 하고 싶다.

 

피해자에게 피해자의 전형을 강요하는 한국은 문제다. 정치 얘기, 권리 얘기 못하게 하고 분노도 못하고 웃지 못하고, 울고 힘 없는 피해자로 억압한다. 이 곳 피해자분들은 즐겁게 있다. 밝다. 다른 분에게 위로를 주고, 그 과정에서 치유될 수 있다. 생, 피해자의 전형에 맞선 싸움도 해 나갔으면 좋겠다.

 

뉴스에 나왔던데, 동혁이의 군대 영장이 나왔더라.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진 건지 말해달라.

퇴근해서 우편함을 열어보니 입영통지서를 보고 화가 나면서, 아이 생각이 많이 나더라. 눈물이 많이 나더라. 집사람은 반갑게 맞아줬는데, 저는 울었다. 한국은it 강국이라고 하는데, 담당자가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면서 힘든 가족에게 또 한 번의 상처를 주었다. 아이들을 구조하지 못한 국가에서 국방의 의무는 꼬박 물어 어처구니 없더라. 이 나라에 묻고 싶다.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가? 담당자분들이 유가족을 두 번 세 번 가슴 찢어지게 하진 말았으면 좋겠다.

 

세월호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면서, 박탈된 권리에 대해 4.16 존엄과 안전에 대한 인권선언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어떤 분이 말하더라. “권리를 말하는 것을 탄압하고, 의무는 지구 끝까지 지키라 하는 나라다” 라고. 동혁군 병역 통지서가 딱 그런 모양새다. 의무만 강의하고 존엄한 주체를 존중하지 않는 나라이다. 이 곳에는 다양한 이어말하기를 하신다. 쌍차 정리해고자 고동민이 하신 말씀이 있다. “사과, 보상, 재발방지대책 요구 다 들어줘도 이재용, 이건희 무릎꿇고 사과해도 삼성은 손해볼 게 하나도 없다. 그렇다고 해도 유미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혜경씨의 몸이 낫는 것도 아니다 세월호 가족들이 원하는 것 다 해줘도 박근혜 정부가 잃은 건 하나도 없다. 아픔을 치유할 시발점이 필요하다.

 

이종란)황상기 아버님을 처음 뵈었을 때 유미씨 세상을 떠난 뒤 4개월 뒤 만났을 때 아버님은 눈을 똑바로 뜨고 알리고 싶은 진실을 2시간 동안 말하더라. 그 때 웃지도 못하고 우리에게 호소하더라. 지금은 대책위가 만들어지고, 또 다른 유미 씨가 많이 나타나고, 산재인정도 어느 정도 받았다. 그 땐 아버님의 성격을 몰랐다. 지금 보니 늘 웃으시는 모습이더라. 세월호 가족분들은 웃으시긴 아직 마음이 불편하신가. 주변에서 웃는 것도 아직 불편하신가. 어떠신가. 궁금하다.

 

처음 사고를 접하고 자식을 먼저 보내는 과정에서 똑같더라. 황상기 아버님 심정이나 똑같더라. 웃는 자체가 아이에게 미안했다. 저는 항상 웃고 밝은 성격이었는데, 웃으면 아이에게 미안했다.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 있냐고 하면 아이에게 미안하다. 그 말밖에 없다. 그러면 집사람도 힘들어지고. 싸우기도 하도. 아버님이 꼴보기 싫어지는 어머님도 계시기도 한다. 아버님도 오죽하면 저럴까. 라고 위로하기도 한다. 아버님은 대놓고 많이 울지 못하는 분도 계신다. 저는 감성적이라 많이 운다. 동혁이는 나의 분신과 같다. 집사람 만나기 전에 동혁이, 동생이 함께 놀아라. 하며 둘을 챙기던 나다. 강하게 키우기 위해서 동혁이에게 매도 많이 들었다. 합창을 하고, 좋은 분들을 만나면서 그게 행복이고, 즐거움이더라. 4.16 이후에 행복이라는 말을 처음 해봤다. 많이 웃으려고 노력한다. 어느날 곰곰이 생각했다.잘 해주지 못한 자격지심에 웃어도 되나 싶지만.. 동혁이는 내가 슬퍼하며 술먹고.. 그런 걸 원치 않고 웃고 행복한 아버지이길 원할 것이다.

 

얼마 전에 수현이 아버님이 잠수사와 사진을 찍어 웃었는데, 조선일보에 나오더라. 웃었다고. 피해자는 마음대로 웃지도 못하는 현실이고, 언론 매체가 잔인하다.

 

동혁 아버님과 어머님이 웃음을 찾으면 좋겠다. 동혁이도 재미지게 싸우다가 하늘에 오길 바랄거다. 황상기 아버님이 썰렁한 개그를 그렇게 잘 하는 분인지 처음엔 몰랐는데, 유미가 아프고 나서, 유미씨 어머님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할머니는 홧병으로 돌아가시고, 이제 더 이상 잃을 게 없고, 이젠 이길 일만 남았다. 삼성을 골려주어야 겠다. 싶더니 그 때부터 웃음이 나왔다 하더라. 감정을 속이지 않고 드러냈으면 좋겠다.

 

삼성 백혈병 9년의 싸움이 압축적으로 세월호에 나타나는 것을 봤다. 이 나라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빨리 보상 받고 빨리 떠나고 싶다 하시는 피해자 분들이 계신다. 떠나겠다는 마음을 접고 왜 이 곳에 있어야겠다고 마음을 바꾸셨나?

실제 이민간 이도 있다. 집사람에게 갈까? 했다. 그래도 이 나라에서 버티고 살아야 된다고 하더라. 동혁이만 생각하다보니 이 나라를 떠날 수가 없더라. 동혁이가 원하는 건 계란으로 바위를 치든, 매일 물대포를 맞든, 이 곳에서 동혁이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같이 뛰어놀고, 공부했던 친구들이 이 곳에 있는데, 산속으로 가버리면 친구들을 만나지 못할 것 아닌가. 그래서 곁에서 질기게 싸우면서 진실을 밝히는 거라 생각했다. 나쁜 이들은 벌을 받고, 동혁이 동생도 이 땅의 아이들이 안전한 나라에게 살길 바라는 마음에서 접었다.

 

미안해야 할 놈들은 발 벗고 잘 자는 것 같다. 거꾸로 서 있는 이 세상이 바로 서는 그 날까지 그 날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도 서로를 보듬어 나갔으면 좋겠다. 221명의 방진복 선언의 날, 어둠을 빛을 가릴 수 없다. 노래를 부르며 행진했었다. 선두에서 분노하고 행동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우리가 따라 할 수 있는 것 같다. 유독 추운 날 모셔서 죄송하다.

 

삼성에 따끔한 한 마디. 부탁드린다.

삼성에 바란다. 삼성으로 인하여 마음 아프고 다친 분들 진심으로 위로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봐주길 바란다. 인권 생각하라. 영원하고 싶으면 사람을 생각하길 바란다.

 

누구보다 삼성을 사랑했던 나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당신이 하는 짓을 봐라. 피해자들이 길에 나와 싸우고 있는 이유를 생각해보기 바란다. 진심어린 사과, 상처 받은 것에 대한 보상이다. 그것을 헤아리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