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4(토) 삼성직업병해결촉구 이어말하기 26일차, 노숙농성 18일차
초대손님; 정정훈 님 (수유너머N, 일곡 유인호 학술상 수상자, <인권과 인권들> 저자)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수유너머N에서 활동하는 정정훈입니다. 저는 요즈음 416인권선언 제정위원회에서 선언문 초안을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 큰 도움은 안되더라도, 와서 보고 주변에도 많이 알리고 해서 이 싸움 잘 해결할 수 있도록 하고 싶어 이 자리에 왔습니다. 우리 사회가 겉보기엔 많이 좋아진 것 같지만 세월호 사건은 ‘우리가 과연 예전보다 무엇이 나아졌는가’라는 물음을 던졌습니다. 삼성도 마찬가지예요.
많은 인권현장들 다녀보셨을텐데, 처음 이 자리에 오셨을 때 인상이 어떠셨나요?
삼성이 사실 청와대보다 더 쎈 실질적인 한국의 지배자인데, 이런 데 떡하니 농성장(일명 오성급 호텔)을 차리니, 아 이 분들 정말 대단하시다 싶었습니다. 한 싸움을 진득하게 하는게 참 중요하다고 느껴요.
우리나라 국민들은 기업에 대해 우호적입니다. 기업이 잘 되어야 나라가 된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사실은 노동자들의 삶과 권리를 근본적으로 파괴하면서 1등 기업이 되어 온 거잖아요. 이런 반인권 문제를 제기하긴 참 어렵고 힘들지만, 좀 더 나은 사회로 가기 위한 중요한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선생님이 쓰신 ‘인권과 인권들’이라는 책은 어떤 책인가요?
사실 현장에서 싸우는 분들 앞에서 인권이 뭐라고 얘기하기는 좀 민망해요. 여러분들이 더 잘 알고 계시잖아요.
‘인권’이라는 말은 별로 위험하지 않아보여요. 그런데 대체 왜 인권활동가들이 이렇게 열심히 싸워야 하는 걸까요?
인류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혁명은 프랑스 대혁명이라고 생각해요. 이 혁명 때문에 신분제가 폐지되거든요. 신분제란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서로 다른 권리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건데요. 극소수의 사람들이 많은 권리를 가지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거의 권리를 갖지 못하죠. 이런 신분제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시작했으니, 6천년 이상 이어온 셈입니다.
그런 신분제가 프랑스 혁명을 통해 폐지되었죠. 당신이 잘생겼건 못생겼건, 아버지가 누구건, 종교가 뭐건, 성적 지향이 뭐건, 다들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겁니다. 당시 귀족들은 자기는 날 때부터 고귀하고 자기 종은 날 때부터 저급해서, 발로 막 차도 아무렇지 않은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그 종이었던 세바스찬이 어느 날 말하는 겁니다. ‘당신이나 나나 같은 인간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가졌다’고요. 이 귀족은 위험하다고 느낍니다. 자신의 특권을 빼앗길 수도 있겠다는 걱정을 하게 되죠. 그 혁명에서 썼던 구호가 바로 인권입니다.
삼성 노동자들도, 지금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재용이 병들면 안되는 것처럼 나도 병들면 안된다고요.
그런데 이런 걸 그냥 말만 해서 되는 건 아닙니다. 힘을 만들어 싸워서 바꾼 거죠. 정치가 필요한 겁니다. 이런 얘기가 제 책에 쓰고 싶었던 핵심이예요.
외국에 나갔을 때 삼성 광고들이 쭉 서있는 걸 보니 마음 한편에 ‘국민기업’이라는 느낌이 든다고 하는데, 정정훈님은 어떠세요?
실제로 그런 게 있죠. 그런 면에서 삼성이 더 책임감 있게 해야 하는데 지금 삼성은 그러지 못하고 있어요. 삼성이 잘나서 큰 게 아니라 예전 정권에서 사업을 몰아주고, 노동자들이 과로해가면서 키워주고, 국민들이 세금내서 지원해주고, 질이 낮아도 국산품 쓰자면서 키워줬죠. 그런데 거기서 번 돈을 자기들이 낼름 챙기고, 주식의 1프로도 갖지 않고 있는 이건희가 지배한다는 건 문제입니다.
삼성은 자기네가 복리후생이 잘 되어 있어서 노조가 필요없다고 했고, 사실 시민사회에서도 삼성의 감시나 통제 문제를 지적하긴 했지만 정작 노동조건은 괜찮을 거라 생각했었죠. 그런데 직업병 문제가 알려지면서 그렇지 않다는 게 밝혀졌고, 이제 두 곳에 노조가 생겼어요.
삼성에 복리후생이나 임금이 괜찮다는 얘기가 어느 정도는 사실일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가 밥만 먹고 사는 존재입니까? 그저 따뜻한 집만 있고 배부르고 맛좋은 음식만 있으면 되는, 그것만 추구하는 존재입니까? 동물이긴 하지만 우리는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그게 문화지요.
가령 밥먹을 때 어르신이 밥을 드시기 전에는 숟갈을 들지 않죠. 당신을 존중한다, 이런 의미를 부여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누가 나를 대신해주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결정하고 주변과 힘을 모아 자기 노동조건을 결정하는데 개입하고 같이 만들어내야 스스로 인간으로 느낄 수 있어요. 그걸 삼성처럼, 박근혜처럼 ‘주는 음식 먹고 할 일이나 하고 아무 생각 하지 말고 살라’고 하면, 사람을 가축 취급하는 것 같아서 매우 불쾌해요.
얘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삼성이 하는 이 행태를 문화 연구자로서 표현하자면 뭐라고 할까요?
예전에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라는 삼성 광고가 있었죠. 세상에 2등을 기억하지 않는 ‘또 하나의 가족’이 말이 되나요? 삼성 반도체를 생각하면 상당히 찌질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천억원을 내놓는다느니 굉장히 양식있는 기업인 것처럼 굴었잖아요. 사람들이 좀 기대도 하게 만들었구요. ‘뭔가 해결되나보다, 오래 싸우셨는데 참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요즘 보여주는 모습 너무 비겁하고 찌질해요. 밖에서는 되게 세련해보이는데 뒤로는 완전 양아치 짓을 하고 있어요. 삼성의 밑바닥에는 그냥 쌩양아치가 있다는 거죠.
‘쌩양아치’ 말고 또 어떻게 보시나요?
삼성은 우리의 생각마저 장악하고 있습니다. 삼성이 쌓아온 엘리트 이미지가 그리 깨끗하지 않다는 걸 사람들이 다 알면서도, 여전히 삼성이 일류라고 생각을 해요. 삼성처럼 해야 일류가 되고 성공을 한다는고 생각하는 거죠. ‘어떻게 하든 돈이 최고다, 돈이 있어야 뭐라도 한다, 어떤 식으로든 돈을 벌어서 저렇게 겉을 삐까뻔쩍하게 해야 한다,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수단과 방법 가리지 말고’ 이런 식으로 우리의 생각마저 삼성이 독점하고 있는 것 같아서 씁쓸합니다.
그래서 이 싸움이 중요합니다. 이 싸움을 이긴다고 삼성이 바로 국민기업이 되는 건 아니죠. 하지만 한번 이렇게 이겨보는 건, 그래서 사과를 받는다면, 어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네, 이런 가능성을 보여주게 되는 거죠.
(청중 질문) 반올림이 투명성, 알 권리를 요구하고 있는데, 삼성은 경영권 침해라고 맞서더군요. 이 부분에 대해 인권의 차원에서 삼성을 교육좀 시켜주세요.
경영권, 재산권, 이렇게 권자가 붙으면 우리는 다 권리라고 생각하는데요. 인권에서의 권리랑 이권에서의 권리는 구분을 해야 해요.
첫째, 저 뒤에도 노동자의 존엄성을 존중하라, 영어로 Respect dignity of workers라고 써있는데요. 예전에 저 존엄성, 디그니티는 땅을 갖고 있는 사람들만 갖는 거로 생각했대요. 신사의 품격이라는 프로가 있었죠. 거기서 품격은 뭐냐면 땅도 좀 있고 재산도 좀 있는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였다는 거죠.
그런데 혁명을 통해서 말하고 싸워서 만들어 낸 게 바로 그런 디그니티가 모든 사람들에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이렇게 바뀌기 전, 소수에게만 보장되었던 디그니티는 인권이 아니예요. 그러니까 “모든 사람을 위한 권리”가 되어야 그게 인권이예요. 경영권이나 재산권은 그런 기준에 해당되지 않아요.
두번째, 권리는 그걸 획득하고 실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노동3권의 경우 그 권리 실현의 주체는 노동자입니다. 그럼 물어볼께요. 기업의 경영권 주체는 누구죠? 법인이죠. 그런데 법인이 인격을 가지나요? 법인의 권리를 제한할 때가 있어요. 법인이 본래의 목적을 위배할 때 제한하지요. 그런데 인간은, 설령 법을 어기더라도, 구타를 하거나 체형을 가하면 그건 인권을 위배하는 겁니다. 인간은 법을 초월하는 존재니까요. 법인은 법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고, 법 다음에 있는 거예요.
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법인을 마치 인간처럼 다루고 있어요. 법을 만든 인간보다 법에 의해 만들어진 법인을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겨요. 본말이 전도되었다, 주객이 전도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그렇기 땜에 법인은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고, 기업은 특히 사익을 추구하는 집단인데, 그런 법인이 이익을 위해서 인간을, 인권을 짓밟는 건 인류가 성취해온 것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거예요. 법인의 권리는, 인간의 권리를 절대로 절대로 앞설 수 없어요.
마지막으로, 삼성에게 따끔한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인권이 가장 큰 적으로 삼은 인권침해의 주체는 국가였습니다. 국가를 지배하는 권력자들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을 짓밟았으니까요. 그런데 요새 인권 관련한 모든 사람들이 얘기하는 게, 20세기 이후에는 국가보다 더 무서운게 기업이고 자본이라 합니다. 인권의 실현에서 기업으로부터 보호하는 게 굉장히 중요해졌어요.
기업이라는 법인이 알고 있는 건 딱 하나예요. 이윤이죠. 조직 설립부터 그걸 위해 만든 거거든요. 기계가 입력된 명령어 하나만 알고 그것만 하듯이. 터미네이터가 존 코너를 죽여라는 명령어만 따라서 가듯이. 그래서 엄청나게 많은 권리들이 이윤추구라는 기업의 목적 하나를 위해 엄청 짓밟히고 있어요. 이윤이라는 기업의 권리를 위해서, 인간의 무수한 권리들이 짓밟히고 있죠.
그런데도 어쨌든 전진하고 있는 게 있습니다. 가령 삼성에 노조가 생겼어요. 그리고 이렇게 삼성 앞에 농성을 하는 것도 쉬운 게 아니죠. 오천년 육천년 이어왔던 그 논리,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는 그 논리가 마침내 깨졌죠. 삼사백년만 하더라도 남녀가 이렇게 모여서 공적인 일을 논의할 수 없었어요. 그게 어쨌든 변하고 있죠. 삼성이 정말 똑똑한 사람들을 데리고 있다면, 이런 변화를 읽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그동안 얻어온 것들을 많이 잃을 수도 있어요.
이 싸움의 경우, 경제적 문제는 아닌 거 같아요. 삼성에 보상금을 많이 줄 능력이 없는 게 아니죠. 그냥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족벌체제로 경영권 쥐고 가겠다는 생각 같은데요. 저는 이 말 하나를 하고 싶어요. 삼성 창업주 이병철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노조는 안된다’라고 했죠. 눈에 흙이 들어갔어요. 이건희도 생사가 불투명하죠. 사람은 죽어요. 죽음은 모두에게 필연이예요. 그와 마찬가지로, 노동자 생명과 건강을 짓밟는 기업은 망한다는 것도 필연이예요. 무너질 수밖에 없어요.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다음에 다시 한번 와 주세요. 안녕!
10.24(토) 삼성직업병해결촉구 이어말하기 26일차, 노숙농성 18일차
초대손님; 정정훈 님 (수유너머N, 일곡 유인호 학술상 수상자, <인권과 인권들> 저자)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수유너머N에서 활동하는 정정훈입니다. 저는 요즈음 416인권선언 제정위원회에서 선언문 초안을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 큰 도움은 안되더라도, 와서 보고 주변에도 많이 알리고 해서 이 싸움 잘 해결할 수 있도록 하고 싶어 이 자리에 왔습니다. 우리 사회가 겉보기엔 많이 좋아진 것 같지만 세월호 사건은 ‘우리가 과연 예전보다 무엇이 나아졌는가’라는 물음을 던졌습니다. 삼성도 마찬가지예요.
많은 인권현장들 다녀보셨을텐데, 처음 이 자리에 오셨을 때 인상이 어떠셨나요?
삼성이 사실 청와대보다 더 쎈 실질적인 한국의 지배자인데, 이런 데 떡하니 농성장(일명 오성급 호텔)을 차리니, 아 이 분들 정말 대단하시다 싶었습니다. 한 싸움을 진득하게 하는게 참 중요하다고 느껴요.
우리나라 국민들은 기업에 대해 우호적입니다. 기업이 잘 되어야 나라가 된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사실은 노동자들의 삶과 권리를 근본적으로 파괴하면서 1등 기업이 되어 온 거잖아요. 이런 반인권 문제를 제기하긴 참 어렵고 힘들지만, 좀 더 나은 사회로 가기 위한 중요한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선생님이 쓰신 ‘인권과 인권들’이라는 책은 어떤 책인가요?
사실 현장에서 싸우는 분들 앞에서 인권이 뭐라고 얘기하기는 좀 민망해요. 여러분들이 더 잘 알고 계시잖아요.
‘인권’이라는 말은 별로 위험하지 않아보여요. 그런데 대체 왜 인권활동가들이 이렇게 열심히 싸워야 하는 걸까요?
인류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혁명은 프랑스 대혁명이라고 생각해요. 이 혁명 때문에 신분제가 폐지되거든요. 신분제란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서로 다른 권리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건데요. 극소수의 사람들이 많은 권리를 가지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거의 권리를 갖지 못하죠. 이런 신분제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시작했으니, 6천년 이상 이어온 셈입니다.
그런 신분제가 프랑스 혁명을 통해 폐지되었죠. 당신이 잘생겼건 못생겼건, 아버지가 누구건, 종교가 뭐건, 성적 지향이 뭐건, 다들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겁니다. 당시 귀족들은 자기는 날 때부터 고귀하고 자기 종은 날 때부터 저급해서, 발로 막 차도 아무렇지 않은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그 종이었던 세바스찬이 어느 날 말하는 겁니다. ‘당신이나 나나 같은 인간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가졌다’고요. 이 귀족은 위험하다고 느낍니다. 자신의 특권을 빼앗길 수도 있겠다는 걱정을 하게 되죠. 그 혁명에서 썼던 구호가 바로 인권입니다.
삼성 노동자들도, 지금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재용이 병들면 안되는 것처럼 나도 병들면 안된다고요.
그런데 이런 걸 그냥 말만 해서 되는 건 아닙니다. 힘을 만들어 싸워서 바꾼 거죠. 정치가 필요한 겁니다. 이런 얘기가 제 책에 쓰고 싶었던 핵심이예요.
외국에 나갔을 때 삼성 광고들이 쭉 서있는 걸 보니 마음 한편에 ‘국민기업’이라는 느낌이 든다고 하는데, 정정훈님은 어떠세요?
실제로 그런 게 있죠. 그런 면에서 삼성이 더 책임감 있게 해야 하는데 지금 삼성은 그러지 못하고 있어요. 삼성이 잘나서 큰 게 아니라 예전 정권에서 사업을 몰아주고, 노동자들이 과로해가면서 키워주고, 국민들이 세금내서 지원해주고, 질이 낮아도 국산품 쓰자면서 키워줬죠. 그런데 거기서 번 돈을 자기들이 낼름 챙기고, 주식의 1프로도 갖지 않고 있는 이건희가 지배한다는 건 문제입니다.
삼성은 자기네가 복리후생이 잘 되어 있어서 노조가 필요없다고 했고, 사실 시민사회에서도 삼성의 감시나 통제 문제를 지적하긴 했지만 정작 노동조건은 괜찮을 거라 생각했었죠. 그런데 직업병 문제가 알려지면서 그렇지 않다는 게 밝혀졌고, 이제 두 곳에 노조가 생겼어요.
삼성에 복리후생이나 임금이 괜찮다는 얘기가 어느 정도는 사실일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가 밥만 먹고 사는 존재입니까? 그저 따뜻한 집만 있고 배부르고 맛좋은 음식만 있으면 되는, 그것만 추구하는 존재입니까? 동물이긴 하지만 우리는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그게 문화지요.
가령 밥먹을 때 어르신이 밥을 드시기 전에는 숟갈을 들지 않죠. 당신을 존중한다, 이런 의미를 부여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누가 나를 대신해주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결정하고 주변과 힘을 모아 자기 노동조건을 결정하는데 개입하고 같이 만들어내야 스스로 인간으로 느낄 수 있어요. 그걸 삼성처럼, 박근혜처럼 ‘주는 음식 먹고 할 일이나 하고 아무 생각 하지 말고 살라’고 하면, 사람을 가축 취급하는 것 같아서 매우 불쾌해요.
얘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삼성이 하는 이 행태를 문화 연구자로서 표현하자면 뭐라고 할까요?
예전에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라는 삼성 광고가 있었죠. 세상에 2등을 기억하지 않는 ‘또 하나의 가족’이 말이 되나요? 삼성 반도체를 생각하면 상당히 찌질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천억원을 내놓는다느니 굉장히 양식있는 기업인 것처럼 굴었잖아요. 사람들이 좀 기대도 하게 만들었구요. ‘뭔가 해결되나보다, 오래 싸우셨는데 참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요즘 보여주는 모습 너무 비겁하고 찌질해요. 밖에서는 되게 세련해보이는데 뒤로는 완전 양아치 짓을 하고 있어요. 삼성의 밑바닥에는 그냥 쌩양아치가 있다는 거죠.
‘쌩양아치’ 말고 또 어떻게 보시나요?
삼성은 우리의 생각마저 장악하고 있습니다. 삼성이 쌓아온 엘리트 이미지가 그리 깨끗하지 않다는 걸 사람들이 다 알면서도, 여전히 삼성이 일류라고 생각을 해요. 삼성처럼 해야 일류가 되고 성공을 한다는고 생각하는 거죠. ‘어떻게 하든 돈이 최고다, 돈이 있어야 뭐라도 한다, 어떤 식으로든 돈을 벌어서 저렇게 겉을 삐까뻔쩍하게 해야 한다,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수단과 방법 가리지 말고’ 이런 식으로 우리의 생각마저 삼성이 독점하고 있는 것 같아서 씁쓸합니다.
그래서 이 싸움이 중요합니다. 이 싸움을 이긴다고 삼성이 바로 국민기업이 되는 건 아니죠. 하지만 한번 이렇게 이겨보는 건, 그래서 사과를 받는다면, 어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네, 이런 가능성을 보여주게 되는 거죠.
(청중 질문) 반올림이 투명성, 알 권리를 요구하고 있는데, 삼성은 경영권 침해라고 맞서더군요. 이 부분에 대해 인권의 차원에서 삼성을 교육좀 시켜주세요.
경영권, 재산권, 이렇게 권자가 붙으면 우리는 다 권리라고 생각하는데요. 인권에서의 권리랑 이권에서의 권리는 구분을 해야 해요.
첫째, 저 뒤에도 노동자의 존엄성을 존중하라, 영어로 Respect dignity of workers라고 써있는데요. 예전에 저 존엄성, 디그니티는 땅을 갖고 있는 사람들만 갖는 거로 생각했대요. 신사의 품격이라는 프로가 있었죠. 거기서 품격은 뭐냐면 땅도 좀 있고 재산도 좀 있는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였다는 거죠.
그런데 혁명을 통해서 말하고 싸워서 만들어 낸 게 바로 그런 디그니티가 모든 사람들에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이렇게 바뀌기 전, 소수에게만 보장되었던 디그니티는 인권이 아니예요. 그러니까 “모든 사람을 위한 권리”가 되어야 그게 인권이예요. 경영권이나 재산권은 그런 기준에 해당되지 않아요.
두번째, 권리는 그걸 획득하고 실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노동3권의 경우 그 권리 실현의 주체는 노동자입니다. 그럼 물어볼께요. 기업의 경영권 주체는 누구죠? 법인이죠. 그런데 법인이 인격을 가지나요? 법인의 권리를 제한할 때가 있어요. 법인이 본래의 목적을 위배할 때 제한하지요. 그런데 인간은, 설령 법을 어기더라도, 구타를 하거나 체형을 가하면 그건 인권을 위배하는 겁니다. 인간은 법을 초월하는 존재니까요. 법인은 법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고, 법 다음에 있는 거예요.
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법인을 마치 인간처럼 다루고 있어요. 법을 만든 인간보다 법에 의해 만들어진 법인을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겨요. 본말이 전도되었다, 주객이 전도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그렇기 땜에 법인은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고, 기업은 특히 사익을 추구하는 집단인데, 그런 법인이 이익을 위해서 인간을, 인권을 짓밟는 건 인류가 성취해온 것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거예요. 법인의 권리는, 인간의 권리를 절대로 절대로 앞설 수 없어요.
마지막으로, 삼성에게 따끔한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인권이 가장 큰 적으로 삼은 인권침해의 주체는 국가였습니다. 국가를 지배하는 권력자들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을 짓밟았으니까요. 그런데 요새 인권 관련한 모든 사람들이 얘기하는 게, 20세기 이후에는 국가보다 더 무서운게 기업이고 자본이라 합니다. 인권의 실현에서 기업으로부터 보호하는 게 굉장히 중요해졌어요.
기업이라는 법인이 알고 있는 건 딱 하나예요. 이윤이죠. 조직 설립부터 그걸 위해 만든 거거든요. 기계가 입력된 명령어 하나만 알고 그것만 하듯이. 터미네이터가 존 코너를 죽여라는 명령어만 따라서 가듯이. 그래서 엄청나게 많은 권리들이 이윤추구라는 기업의 목적 하나를 위해 엄청 짓밟히고 있어요. 이윤이라는 기업의 권리를 위해서, 인간의 무수한 권리들이 짓밟히고 있죠.
그런데도 어쨌든 전진하고 있는 게 있습니다. 가령 삼성에 노조가 생겼어요. 그리고 이렇게 삼성 앞에 농성을 하는 것도 쉬운 게 아니죠. 오천년 육천년 이어왔던 그 논리,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는 그 논리가 마침내 깨졌죠. 삼사백년만 하더라도 남녀가 이렇게 모여서 공적인 일을 논의할 수 없었어요. 그게 어쨌든 변하고 있죠. 삼성이 정말 똑똑한 사람들을 데리고 있다면, 이런 변화를 읽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그동안 얻어온 것들을 많이 잃을 수도 있어요.
이 싸움의 경우, 경제적 문제는 아닌 거 같아요. 삼성에 보상금을 많이 줄 능력이 없는 게 아니죠. 그냥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족벌체제로 경영권 쥐고 가겠다는 생각 같은데요. 저는 이 말 하나를 하고 싶어요. 삼성 창업주 이병철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노조는 안된다’라고 했죠. 눈에 흙이 들어갔어요. 이건희도 생사가 불투명하죠. 사람은 죽어요. 죽음은 모두에게 필연이예요. 그와 마찬가지로, 노동자 생명과 건강을 짓밟는 기업은 망한다는 것도 필연이예요. 무너질 수밖에 없어요.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다음에 다시 한번 와 주세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