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물[2019.11.14][안전 칼럼] 산업기술은 안전한지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

반올림
2023-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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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규 (노무사,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우리 모두 반도체 산업이라고 하면 청정 산업인 줄만 알던 시기가 있었다. 필자도 어릴 때에는 반도체와 같은 첨단 산업은 전통적인 산업들이 갖고 있는 위험성이 전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반도체 공장 내부를 클린룸이라고 부르는데, 얼마나 깨끗하고 안전하면 이름도 그렇게 지었을까 싶었다.

그러나 2019년 지금은 위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간 수많은 피해자들의 증언을 통해서 많은 시민들과 노동자들에게 반도체 공장의 실상이 알려졌다. 최근에는 정부기관에서도 10년 동안의 역학조사 결과 반도체 공장의 위험성을 확인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같은 기업들 또한 마지못한 것일지라도 위험성에 대해 사과하기도 했고 피해보상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반도체 공장 직업병 문제를 통해 우리는 배웠다. 아무리 촉망받고 아름답게 보이는 기술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이를 신중하고 비판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경제발전의 돌파구로 주목받는 기술이라 하더라도, 사람의 생명과 안전에는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 대가는 너무나도 크다. 언젠가 우리는 기술 뒤에 숨겨진 문제를 확인할 수 있겠지만, 그때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은 이후일 것이다.

  그런데 올해 산업기술보호법이 개정되면서, 내년부터는 산업기술이 안전한지 ‘묻지도 따지지도’ 못하게 될 것 같다. 개정법은 일부 산업기술에 대해서는 안전에 필요한 정보라도 공개하지 않을 것이니, 그냥 ‘묻지’ 말라고 한다. 또한 개정법은 산업기술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스파이가 아니라도 처벌할 것이니, 그냥 ‘따지지도’ 말라고 한다. 세월호 참사 때의 ‘가만히 있으라’라는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산업기술이 안전한지 비판적으로 확인해보려면 ‘묻고 따지는’ 것은 정말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일반인들도, 공장에서 근무하는 사람들도 기술에 대해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렇기에 산업기술이 무엇인지, 어떤 물질을 쓰는지, 안전한지 등에 대해서 물어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받아본 정보를 뜯어본 결과 그 기술이 위험하다면, 이를 공개적으로 따질 수 있어야 한다. 이 기본적인 것도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반도체 직업병 문제와 같은 비극이 여전히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이 개정법은 그 내용만큼이나 개정 과정 또한 매우 악의적이었다. 반올림은 작년부터 삼성 반도체 공장의 유해물질을 확인하기 위해 삼성과 한창 소송을 진행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는 법이 들어왔다. 심지어 우연의 일치로 타이밍이 맞아서 들어온 것도 아니다. 산업기술보호법은 개정 이유에 “국가핵심기술 관련 정보가 공공기관에 대한 정보공개청구제도에 의해 공개되는 것은 산업경쟁력 보호 차원에서 문제가 있고”라고 하여 반올림의 소송을 겨냥하고 있음을 공공연하게 선포하고 있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소송 하나를 겨냥해서 결과에 직결되도록 법이 바뀌다니? 우리는 안전할 권리를 위한 법 개정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작년 고 김용균 님의 사고 이후에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은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다. 그런데 삼성을 상대로 한 소송이 하나 제기되었다고 산업기술보호법은 이렇게 쉽게 바뀔 수 있다니... 한국에서 삼성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노동자와 시민의 생명은 얼마나 가볍게 여겨지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이번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은 반올림만의 문제가 아니다. 반도체뿐 아니라 산업기술에 대해서 문제제기하는 다른 단체들도 이 법의 제약을 받을 것이다. 그렇게 산업기술이 안전한지 묻지도 따지지도 못한다면, 산업재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없게 된다. 막을 수 있었던 사고로, 막을 수 있었던 병으로 사람이 죽는다면, 이것은 사회적 살인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리고 이번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은 사람의 생명 안전을 경시하는 지금의 사회적 분위기와 깊게 연결되어 있다. 이 말도 안 되는 개정법에 대해 놀랍게도 국회에서도, 청와대에서도 그 어느 누구도 우려나 반대를 표하지 않았다. 왜냐면 일본과의 무역분쟁 상황 속에서 모두들 기업 편들기에만 바빴고 국민의 안전은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산업기술보호법 개정과 같이 국민의 생명 안전권을 후퇴시키는 법/정책은 얼마든지 더 나올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사태에서 우리는 이윤보다 생명이 우선이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