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알림 [2016.01.27]농성 112일차, 이어말하기 - 기륭전자 유흥희 분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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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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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6일, 반올림 농성 112일차 이어말하기 - 기륭전자 유흥희 분회장 님

# 삼성에서 문제 다 해결되었다는 듯 언론플레이를 하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 반올림은 이곳에서 112일째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날이 좀 풀려서 밖에 나와 보았습니다. 반올림 농성 112일차. 이어말하기 손님으로 기륭전자 유흥희 분회장 님이 오셨습니다.

“저희도 싸우고 있지만 반올림 동지들은 이곳 강남에서 힘차게 노동인권 지키기 위한 싸움을 하고 계셔서 연대하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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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륭분회 싸움 얘기좀 부탁드릴게요


“2005. 7월 노동조합을 만들었어요. 하루가 멀다 하고 해고가 되어서 노조를 만들었어요. 일하다 옆 동료가 안보이면 아파서 못 왔나 보다 생각할 수도 있는데, 우리는 누가 안보이면 해고된 줄 알 정도였어요. 그래서 좀 행복하게 사람답게 살아보자는 마음에 노조를 만들었죠.

문자로 해고하고, 잡담을 이유로 해고하고, 건의를 하면 그게 건방지다는 이유로 해고가 되었죠.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고 봐야죠.
잔업, 특근을 빼먹으면 해고 0순위라고 팀장급 되는 사람이 얘기를 해요.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고 하면 그게 바로 해고인, 그런 상황이었죠.

그래서 인지, 노조를 만들자고 총대를 맨 사람이 있긴 했지만, 그렇게 운이 띄워지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놀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가입을 했어요. 200여명 넘게 가입을 했어요.”

# 그만큼 필요성이 강했겠네요.

“일회용품처럼 여겨졌으니까요. 우리는 전자회사에 라인 타는 작업이어서 부속이 하나라도 떨어지면 라인이 정지될 수 밖에 없고, 그런 상황은 분명 회사 잘못인건데, 그런 물량 수급 문제가지고도 우리한테 문제삼고 그런 이유로 해고를 밥 먹듯이 했어요.

정규직 중 한명이 모임을 만들려고 하다가 출산휴가를 갔는데, 회사는 그 동지를 내쫓고 싶어도 출산휴가 동안에는 해고를 못해고 참다가, 결국 이 동지가 복귀하니까 생산직에 있는 여성들한테 ‘아주머니들은 1년 계약직, 임신 가능성이 높은 새댁은 3개월, 노처녀들은 6개월 계약직’, 이런식으로 분류까지 하더라구요”

# 그 과정에서 상당히 어려웠던 일들이 많았던 걸로 알고 있어요.

“저희가 불법 파견에 맞서서 싸웠는데요. 불법파견이 뭐냐면, 저는 기륭전자 라는 회사를 들어갔다고 생각했는데, 그 과정이 옛날에는 회사로 직접 이력서 내고 취업했다면 요즘에는 파견회사를 거쳐서 취업을 하는 구조인거에요. 직접생산 공정에 파견은 불법이거든요

저 같은 경우, 가리봉역으로 이력서를 들고 오래요. 그래서 갔더니 봉고차가 나와서 ‘기륭전자’ 오신 분들 손들어 보세요, 그 분들 이 봉고차 타세요, 해서, 회사로 데려가는... 그런 식이었어요.

그래서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월급봉투에 파견회사 이름이 찍히고, 똑같은 업무지시를 받아도 출근 표에 얼굴이 없고 번호만 있는 그런 상황이었어요. 똑같은 일을 해도 월급은 반도 안 되고.. 최저임금에서 10원 더 많이 받는 수준으로 받았어요.

그렇게 일하다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건 아니다, 해서 정규직, 계약직, 파견직이 하나가 되어 노조를 만들었어요.

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 판정도 받았어요. 회사는 벌금을 냈어요. 근데 회사는 그 벌금 500만원 받고 죗값 다 치뤘다 하고, 그 사이 수많은 노동자들을 다 해고했어요.”

“억울해서 더 싸웠어요, 소송도 많이 하고 그랬지만, 이 나라가 검찰도 법원도 노동자 편은 아니었어요. 불법파견이 되면 당연히 정규직으로 고용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불법을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을 회사에게 가르쳐 주고 시간을 끌어 주고, 그런 상황을 겪었죠.

그러다 우리가 1000일을 맞기 전에는 끝내야 겠다 해서, 전 김소연 분회장님의 단식을 포함, 다섯 번의 고공, 세 번의 단식, 그 안에 구속되고 수배되고..

정말 죽는 것 빼고는 투쟁의 종합셋트라고 할 정도로, 정말 많은 투쟁들을 만들어 가며 1000일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우리도 사람이라고 목숨걸고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렸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알려 지면서 90일 넘는 단식을 할 때 많은 사람들이 하루 단식도 해주고, 국회 농성도 해주고, 천막도 지켜주고.. 했어요. 음악 하는 분들은 음악으로, 글쓰는 분들은 글로, 돈있는 분들은 돈으로, 정말 많은 연대를 받았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못된 자본이 마지막 선택하는 것은 도망가는 거더라구요.

2008년도에 합의를 못했고 많은 분들이 만류도 많이 했죠, 더 이상 몸 축나는 투쟁 그만하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저희가 포기할 수 없었던 건, 노동부 앞에서 투쟁할 때 마다 아주머니들이 고용보험 받으러 오시는데, “나 또 해고됐어” 하면서 오시는 모습들을 보면서.. 이제 더 이상 여기서 물러나면 갈곳이 없겠구나, 또 3개월짜리 6개월짜리로 계속 해고가 되느니 어렵지만 여기서 희망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고... 우리가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받고 싶었어요.”

“죄지은 최동열은 500만원 벌금받고 그만인데, 그 사이 노동자는 아프고 몸힘들고 해고되는 그런 상황을 겪었어요. 기륭전자가 최동열이 들어오면서 부지매각을 했어요. 우리가 그 이면을 살펴보니까, 기륭이 바지사장을 내세워 부지매각을 하고 마치 기륭은 개입되지 않은 것처럼 꾸몄지만, 저희는 기륭이 개입된 것을 알았기에 신사옥에 가서도 투쟁을 했죠.”

나중에는 포크레인 투쟁을 하면서 결국 1895일 만에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합의를 했어요. 그런데 당장 생산시설도 없고, 직원들과 반목도 있었고 해서 1년 6개월의 유예기간을 두고 합의를 했어요. 합의 후에는 많은 분들, 연대해주신 동지들한테 인사 다니는 일들을 계속 하고 있는데.. 복귀할 시점이 되자, 회사는 한번 더 1년 6개월의 추가 유예를 주장했고, 합의끝에 1년으로 추가 유예를 했어요.

그렇게 복귀한 회사에서는 일감도 주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어서.. 저희는 다시 또 투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최동열이 사기꾼이어서, 기다려 달라 말하더니 2013년에 야밤도주를 했죠. 2014년 1월 1일날, 우리가 찾아갔더니 그걸 또 주거침입으로 고소 고발을 해서 재판까지 받는 그런 상황이에요.

우리가 임금체불 건으로 걸었더니 기륭은 자기 사리사욕 다 챙기고 공장을 상장폐지 시키고, 회사를 폐업시키고 그랬어요.

작년에 저희가 오체투지까지 했는데.. 그때 우리를 또 싸우게 하는게 뭘까,를 생각해 보니, 이 나라에 정말 비정규직이라는 제도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다수의 노동자를 위해 존재하는지, 배부르면서도 여전히 돈을 많이 모으고 싶은 그들을 위해 존재하는지,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비정규직 이라는 제도만 없으면, 우리가 복귀는 했지만 그래도 일을 하지 못하는 그런 상황까지는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고, 돌아갈 곳은 없지만 그래도 잘못된 제도를 고치기 위한 싸움을 계속 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다른 연대 동지들과 함께 싸우고 있죠.

그런데 이 나라는 대통령 하나 잘못 뽑았더니, 노동법개악을 시도 하고, 그걸 막았더니 이제는 지침을 세워서 언제든지 사장 마음대로 해고하고 사장 마음대로 임금깎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세상이 발악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거 막아 보려는 싸움도 계속 하구요. 또 한 가지는 저희가 거리에서만 10년 싸워왔는데, 이후 무엇을 만들어나갈지 고민을 계속 하는 그런 상황입니다.“

# 최근에 추진하고 있는 <비정규 노동자의 집> 소개를 좀 해주세요.

“10년 투쟁을 해도 돌아갈 곳이 없는 기륭의 상황을 보면서, 무언가를 남겨야 하지 않겠냐, 는 애기를 많이 해주셔서... 아직도 비정규직, 정리해고 문제로 오랜 시간 싸워온 동지들이 상경투쟁을 하다가도 잘 곳이 없어 길에서 자는.. 그런 모습을 보니까, 우리 마음 나눌 공간을 만들자는 얘기가 나왔고, 그 안에서 비정규 노동자의 집을 만들어 보자, 는 제안을 하여.. 그 사업이 추진 중이에요. 열심히 주춧돌을 모으고 있는 중이에요. 사회단체 동지들, 종교계, 법조계 등에 다 부탁을 드리고 있어요.

비정규 노동자들의 쉼터가 되었으면 좋겠다, 방학 때 찾아가는 외갓집처럼 이야기도 나누고 따뜻한 밥 한끼 나누는 그런 공간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우선 갖고 있고, 거기에 더해서 의사 선생님들이 참여해 주셔서 투쟁하는 동지들 치유하는 공간도 함께 만들어 보려고,, 올해 상반기에는 만들어 보려고 노력 중이구요. 돈이 10억 정도 필요한 것 같은데, 4억 정도 모아지면 대출을 받아서 센터로서 만들어보자, 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주춧돌이라고 하여, 한 구좌에 50만원씩 기부하는 방식도 있고, 5년 후에 돌려드릴 수 있는 출자 방식도 있어요.”

# 직업병 피해자들 위한 응원한마디도 부탁드릴게요

“저희는 아프면서 투쟁을 하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아픈 몸을 이끌고, 자신의 자식을 또 가슴에 묻으면서 투쟁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인 것 같은데, 다른 건 몰라도 딱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은건, ‘나는 왜 사람이고 싶을까’라는 생각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가끔은 흐트려져도 좋다고 생각해요. 다만 포기만 하지 않으면 좋겠다.

저도 투쟁할 때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라는 말이 제일 싫었어요. 당신이 뭘아나.. 싶었는데... 지금은 그 시절을 겪고 나니까, 우리가 그때 만일 포기했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2008년에 죽음을 넘나드는 단식을 겪으면서는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정말 소중하다는 생각도 했어요. 응원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다는 것도 믿어 주시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