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알림 [2016.06.17]반올림 노숙농성 254일차(6월 16일) 이어말하기 -문학평론가 고영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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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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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직업병문제 올바른 해결촉구

반올림 노숙농성 254일차(6월 16일) 이어말하기

 

<시가 있는 저녁>

- 이야기 손님: 문학평론가 고영직

- 사회 : 반올림 권영은

-  영상 :  https://youtu.be/OG4cNZoIB14?list=PL68l6l0ykxTXlpDY1-wm7S4KrudfG9ydu

권영은) 저희가 노숙농성을 한 지 벌써 8개월이 넘었는데요. 이곳에서 삼성의 대화를 촉구하고 진심어린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어말하기에는 문화평론가 고영직 선생님을 모시고 ‘시가 있는 저녁’을 가지려 합니다.먼저 소개를 해 주시죠

 

고영직) 안녕하세요 고영직입니다. 문화평론을 하고 있고 한겨레 칼럼리스트로 활동을 하고 있고, 이런저런 자리에서 시와 문화와 예술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권영은) 시 낭독 이전에 먼저 이곳에 어떻게 오시게 되었는지도 이야기해주세요

 

고영직) 제가 권영은 활동가님을 알고 있었는데요. 멋지게 얘기하면 대면의 요청이라 하잖아요. 영은님의 대면의 요청을 뿌리칠 수 없어서 왔습니다.

 

권영은) 먼저 시를 하나 읽고 차차 진행해보면 좋겠네요

 

고영직) 제가 오늘 몇 편의 시를 준비해 왔는데요. 첫 번째 낭독할 시는 독일의 유명한 시인 ‘브레히트’의 <아이들의 기도> 라는 짤막한 시 인데요. 이 시를 준비해 온 이유는 아직까지 한국이 그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데요, 2년 전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가 침몰한 이후에 그로부터 우리사회는 단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생생한 TV화면으로 보면서 너무나 가슴이 아팠는데 치유가 필요할 때 그때 만난 시가 이 시였습니다. 시인이 2차대전 직후에 쓴 시입니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시, 「아이들의 기도」

 

집이 불타지 않게 해주세요

폭격기가 뭔지 모르게 해주세요

밤에는 잘 수 있게 해주세요

삶이 형벌이 아니게 해주세요

엄마들이 울지 않게 해주세요

아무도 누군가를 죽이지 않게 해주세요

뭔가를 완성시키게 해주세요

그럼 누군가를 믿을 수 있겠죠

젊은 사람들이 뭔가를 이루게 해주세요

늙은 사람들도 그렇게 하게 해주세요

* * *

 

권영은) 무언가를 해주세요. 해주세요 라는 아이들의 기도네요. 울지않게 해주세요 형벌이 아니게 해주세요...라는..아이들이 바라게 해달라고 하는 것 치고는 참 슬프네요,.. 그냥 장난감 사주세요 친구랑 놀고싶어요 라는 요청이 아니네요

 

고영직) 2차 대전 상황을 염두해두고 쓴 것같아요. 전쟁은 많은 경우에 어린아이들과 또 여성들이 피해를 입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느 시인이 ‘전쟁의 반대는 평화가 아니고 일상이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저는 이 시 표현 중에 ‘삶이 형벌이 아니게 해주세요’ 라는 말에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오늘 황유미씨의 아버님 황상기 선생님도 계시지만, 삶이 형벌이 되는 사람이 급증하는것 같아요. 마음이 서해바다 뻘밭같은 그런 삶에서 어떻게 하면 삶이 기쁨을 느끼고 그럴수 있을까를 이 시를 보면서 많이 생각해보게 되었구요.

 

또, 시구 중 ‘뭔가 완성시키게 해주세요’가 있는데, ‘완성’이라는 말이 얼마나 주는 의미가 있을까요. 얼마 전 미생 이라는 드라마 라도 있었습니다만, 우리의 삶은 끝내 죽음으로서 완성되는지 몰라도, 미생의 상태가 아니라 뭔가 자기의 껍질을 벗고 나로서 살아가는 삶이 이 시의 간절의 언어로 녹아져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권영은) 이번에는 ‘안주철’ 시인의 <다음 생의 할 일들>을 낭독해 주세죠.

 

고영직) 안주철 시인과 다음에 소개해 드릴 박소란 시가 작년에 읽은 최고의 시였어요.

젊은 사람들이 요즘 ‘이생망’ 이란 말을 하잖아요. 이번 생은 망했다 아주 폭삭망했다는 건데요.. 제가 소개할 <다음 생의 할 일들>이란 시의 상황은 가난한 부부의 삶을 다루고 있는데 역설적으로 우리의 힘은 어떤 것이고 새로운 가능성은 어디에 있는가를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아요. 좀 길지만 읽어보겠습니다.

 

# 안주철 시, 「다음 생에 할 일들」

 

아내가 운다

나는 아내보다 더 처량해져서 아내를 본다.

다음 생엔 돈 많이 벌어올게.

아내가 빠르게 눈물을 닦는다.

나는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음 생에는 집을 한 채 살 수 있을 거야.

아내는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본다.

다음 생에는 힘이 부칠 때

아프리카에 들러 모래를 한 줌 만져보자.

아내는 피식 웃는다.

이번 생에 니가 죽을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재빨리 아이가 되어 말한다. 배고파.

아내는 밥을 차리고

아이는 내가 되어 대신 반찬 투정을 한다.

순간 나는 아내가 되어

아내를 혼내려 하는데 변신이 잘 안된다.

아이가 벌써 아내가 되어 나를 혼낸다.

억울할 건 하나도 없다.

조금 늦었을 뿐이다.

 

그래도 나는 아내에게 말한다.

다음 생엔 이번 생을 까맣게 잊게 해줄게.

아내는 눈물을 문지른 손등같이 웃으며 말한다.

오늘 급식은 여기까지

 

* * *

 

권영은) 상당히 슬픈 시인데요. 소개를 좀 해 주세요.

 

고영직) 가난한 부부가 있어요. 아이가 하나 있구요. 그 부부의 삶이 하루하루의 일상적 삶이 힘든거예요. 밥먹는 것도 힘들고. 돈 때문에 힘듭니다. 남편은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이렇게 시로 쓴 것 같아요. 안주철 시인의 자기 경험이라고 하던데요. ‘이번 생에 니가 죽을 수 있을 거 같아’ 라고 하는 이 표현을 실감하면서 하루하루 감내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이 늘고 있다. 2015년도에 대한민국의 최고의 유행어가 ‘헬조선’ 이잖아요. 또 ‘노~~력’ 이렇게 말하는데. 노력하면 배반하지 않는다, 땀은 배반하지 않는다는 명제가 우리에게 있었는데 더 이상 이런 노력이나 땀이 그 대가를 보장해주지 못하고 배반하고 있다는 것을 이 시를 통해서 얘기하고 있는 건데요. 이 시의 제목도 그렇고 역설적이게도 뭔가 슬픈 상황인데 뭔가 희망적인 것 같고 해서 이 시를 준비해 봤습니다. 시 제목 <다음 생에 할 일들> 이라는 표현에도 담겨있지만, 역설적인 표현이죠. 다음 생이 아니라 이번 생에 잘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권영은) 저는 시를 읽을 때 보면, 사람마다 자기가 와 닿는 부분 있다고 하잖아요. 저는 변신하는 부분이 와 닿는데요. 남편이 아내도 되었다가 아이가 아내도 되었다가 가족들이 서로 역할을 바꿔가면서 서로가 서로가 되어주는 것이 소담스럽게 느껴졌어요. 유미씨가 공장에 갈 때 내가 공장에 가서 동생 학비를 벌어서 줄께요 라고 했을 유미는 엄마의 마음을 것 같고, 또 어떨때는 딸의 마음이었다가 했을 것 같네요

 

고영직) 이 시에 담긴 메시지는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이 우리가 꿈꾸는 이상이 될 수 있고 우리가 꿈꾸는 이상이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깔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지금 이 앞을 지나는 시민들의 삶의 일상이 이상이 될 수 있는지 그건 꿈 같인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의 힘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정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을 이 안주철 시인의 <다음 생에 할 일들>이란 시가 말해주는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영은) 다음 시를 낭독하기 전에 저희가 시 이야기 말고 다른 재미난 이야기도 하면 좋겠는데요. 다른 얘기를 해보자면 저와 고영직 선생님이 어떤 인연이 있는줄 아세요? 저희가 예전에 교도소를 같이 들락거렸던 사이? 이렇게 이야기하면 조금 흥미가 생기지 않으세요? 이렇게 시를 재소자 분들과 같이 낭독을 하고 했던 사이인데요. 그때 그분들이 이런 시를 한글자 한글자 소중하게 새겨 읽고 그 느낌을 각자 이야기했던 그 시간들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고영직) 지금 ‘시의 쓸모’에 대해서 질문하신 것 같은데요. 시는 여전히 많이 안 팔리죠. 읽은 사람은 많지 않죠. 어떤 책은 몇 만부가 팔리기도 하고 영화는 천만 영화 가볍게 돌파하기도 하는데요. 그러나 천만 영화를 보고서 내 삶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그런데 100부나 500부 팔리는 어떤 시는 누군가의 가슴에 삶의 씨앗이 되어서 삶의 항로를 바꿔주는 경우가 많구요 특히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영은 샘을 만난게 여주교도소나 영등포 교도소에서 만났는데요 그때 만난 수형자들은 시가 필요한 사람들 이었어요. 지금 당장 쓸모를 주진 않지만 어떤 삶의 방향을 잡아주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시를 들고 온 이유도, 따지고 보면 우리사회가 이야기의 힘, 시의 힘을 신뢰하는게 중요하다는 점을 말씀을 드리고 싶어 가지고 왔구요.

 

제가 존경하는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라는 작가가 있는데. 작년에 돌아가셨는데, 아주 대단한 작가입니다. 그 작가가 어느 산문에서 그런 얘기를 합니다. ‘인간은 분자로 구성된 게 아니라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 얘기는 이야기의 힘을 신뢰하고, 우리가 세상을 바꾸어내는 힘은 상징의 힘과 이 실제적인 힘을 같이 있을 때 해결 가능하다고 봅니다. 저는 삼성반도체 해결 문제 또한 거기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 몸과 마음에는 세 가지의 길이 있는 것 같아요. 눈길, 발길, 손길.. 이 세 가지의 길을 마음길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눈총이 아니라 눈길을 주는게 중요하지 않습니까. 눈길을 주고 또 누군가의 곁에 있어주고 싶은 마음으로 발길을 재촉하고 또 누군가에게 손길을 내밀어 주는 것. 이게 어떻게보면 가장 좋은 삶이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권영은) 고영직 선생님께서 오늘 이렇게 삼성직업병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이런 마음으로 시를 골라오신 것 같아요. 또 다음 시는 어떤 시를 골라오셨는지요.

 

고영직) 박소란 이라는 젊은 시인의 <체념을 위하여>라는 시입니다.

 

# 박소란 시 , 「체념을 위하여」

 

희망과 야합한 적 없었다 결탄코

늘 한 발 앞서 오던 체념만이 오랜 밥이고 약이었음을

고백한다 밤낮 부레끓는 숨과 다투던 폐암 말기의 어머니

악착같이 달아 펄떡이던 몸뚱이를

일찍이 반지하 시린 윗목에 안장한 일에 대하여

마지막 구원의 사이렌마저 함부로 외면할 수 있었던 조숙한 나약함에 대하여

방 한 귀퉁이 중고 산소호흡기를 들여놓고

새벽마다 동네 장의사 명함만 만지작거렸다

그 어떤 신념보다 더욱 견고한 체념으로, 어김없이 날은 밝아

먼 산 기울어진 해도 저토록 가쁘게

가쁘게 도시의 관짝을 여밀 수 있었음을 알았다 습관처럼

사랑을 구하던 애인이 어느 막다른 골목에서 뒷걸음쳐 갈 때도

시험에 낙방하고 아무 일자리나 찾아 가게들을 전전할 때도

오로지 체념, 체념만을 택하였다 체념은 나의 신앙

그 앞에 무릎 꿇고 자주 빌었으며 순실히 경배하였다

체념하며 산 것이 아니라 체념하기 위해 살았다 어쩌면

이제 와 더 깊이 체념한다 한 들 그리하여 제 발 살 려 다 오

끝까지 매달리던 어머니의 원망 같은 무덤이 핏빛 흉몽으로 솟아오르고

안부조차 알길 없는 애인이 허랑한 시절이 막무가내로 뺨다귀를 갈긴다 한들

행여 우연히 한 번쯤 더듬거리듯 옛날을 불러세운다 한들

절망은 여전히 온 힘을 다해 절망할 것이고

나는 기어이 침묵으로 순교할 것이다 다시 체념을 위하여

도망치듯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굳센 체념을

 

* * *

 

 

권영은) 체념을 위하여 라는 말이 역설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고영직) 좋은 시의 특징은 역설적인데 있죠 사실은. 항상 좋은 시나 좋은 예술이 경계하는 것은 상투성이지 않습니까. 그 상투성에 저항하기 위해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체념이라는 말을 전혀다른 의미로, 여기서 말하는 체념은 어쩔수 없음이라는 냉소의 신화와 전혀 다릅니다.

“희망과 야합한 적 없었다”는 표현은 상당히 이 시인의 삶이 간단치 않았음을 입증하는 것이구요. 이 시인의 삶 또한 매우 깊었다, 너무 외롭고 쓸쓸했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쓴 것 같아요. 우리는 다 희망을 갈구합니다. 그러나 희망은 더디게 옵니다. 항상 희망은 드물게 옵니다. 그 점을 박소란 시인은 그때의 경험을 이 시를 통해 말을 하고 있는 것 같구요.

 

본문중에 보면 이런 표현이 있어요. “체념하며 산 것이 아니라 체념하기 위해 살았다”는 이 표현은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마음이 있지 않을까. 아까 헬조선이라는 얘기도 말씀 드렸지만 우리 삶이라는게 흔히 바닥을 쳤는데 지하1층이 있고 지하2층이 있고 심지어 지하10층이 있는 그런 것은 아닐까. 그런 두려움이 엄습하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소란 시인이 여기서 말하는 체념은 ‘굳건한 체념’ 이란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여기서 말하는 ‘체념’은 희망의 다른 말이지 않을까. 그렇게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권영은) 황상기 아버님이 이 시를 다 온전히 읽으셨더라면 여기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해주셨을 것 같은데, 이 시는 역설적이래요 반대로 이야기한 거라네요. 아 우리 이런 거 안 읽었잖아요. 우리 여기서 선명한 이야기 하거든요. 삼성 뭐가 잘못되었다. 노동부 정신차려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체념을 위하여’라는 시를 읽다니...(웃음)

 

고영직) 제가 존경하는 ‘재일조선인 서경석’ 선생님이 희망에 대해 어느 강의에서 이야기하기를, 희망은 기쁠 희가 아니라 드물 희를 써서 희망이라는 말이 ‘드물게 온다’는 겁니다. 기쁠 희 가 아니라 드물 희를 써서요. 저는 성급한 희망이나 조급한 결론 같은 것은 가짜 희망이라는 점을 이 시인이 시의 행간에서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체념하기 위해 산 것이 아니라 체념하기 위해 살았다”는 것은 상당히 내공이 있는 표현인 것 같아요. 저는 이 시가 가지고 있는 체념의 의미는 상당히 경청해야 할 의미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권영은) 희망은 드물다는 말이 저희에게도 와 닿죠. 드물죠 그렇죠. 저희가 9년동안 삼성반도체 뿐 아니라 반올림 이름으로 싸워왔는데요...좀 더 노력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고영직) 저는 이 시를 보면서 역설적으로도 돌아가신 동화작가 중에 권정생 선생님이 떠올랐어요. 생전에 딱 한번 뵌적이 있는데요. 안동에 가서 오두막집에서 나눈 대화가 삶의 위기에서, 수렁에서 발목을 잡는다고 생각했을 때 선생님의 표정이 생각이 나요. 그 양반이 좁은 골방에서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읽고 계시더라구요. 늘 옆에 끼고. 그리고 선생님의 동화 팬들에게 답장을 쓰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요. 건강도 되게 안좋고 그랬는데요. 그런데 담담하게, 크게 놀라지도 않고 담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고영직) 네 번째 시로 넘어가야겠는데요. 아까 눈길과 발길과 손길 이야기 했는데요. 그걸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너’ 이죠. 백무산 시 중에서 ‘너를 쬐어야 한다’는 시를 준비해 왔습니다. 시가 너무 길어서 제가 그 시 중에 마지막 구절만을 준비해 왔습니다. 사람이 그립고 외롭고 쓸쓸할 때는 누군가를 쬐어야해요. 마지막 부분 읽어드리겠습니다.

 

# 백무산 시 「너를 쬐어야 한다」 (부분)

 

하지만 세상의 모든 사정이 나를 해체하는 건 아니다.

나의 심장에 햇볕도 기쁨도 소용없을 때가 있다.

오직 너를 쬐어야만 할 때가 있다.

먼 대륙의 바람이 심장을 자주 달구었지만 나는 떠날 수가 없었다.

너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너의 체온이 나의 체온이므로

낮고 어두운 곳에서 울고 있는 너 때문에

너의 차디찬 피가 멈추었던 내 심장을 뛰게 했으므로

 

* * *

 

 

고영직) 백무산 시인을 보름 전에 울산에서 만난 적이 있었고 이 시를 잠시 이야기 했었는데요, 저는 이 구절이 가장 좋아요. “나의 심장에 햇볕도 기쁨도 소용없을 때가 있다. 오직 너를 쬐어야만 할 때가 있다.” 이 표현이 참 멋있습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풀어보면 한글자로 ‘곁’ 이란 것 같아요. 한국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말이 ‘곁’인데, 가장 결핍된 말 같아요.

 

곁은 있어줌 이란 말인데요. ‘있음’이란 말과 ‘줌’이란 말이 결합된 말이잖아요. “있음”은 너의 존재 자체, “줌”은 선물이란 말이니, 누군가의 존재가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그게 곁에 있음의 의미겠죠.

 

권영은) 저희 뒤에 삼성도 있지만, 고운 꽃들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행복이 되고 기쁨이 되고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었을 이들 76분이 꽃으로 있습니다. 황상기 아버님이 농성장에 도착하시면 늘 이 작은 꽃들을 챙기십니다. 너무 아까운 때에 세상을 떠난 피해자들을 기리는 꽃들이라, 늘 돌보고 살핍니다. 돈으로 쉽게 앗아갈 존재들은 아니라는 것을 저희가 말하고 싶었는데요. 저에게는 이렇게 이 시가 와 닿았습니다.

 

고영직) 시에 보면 ‘너의 체온이 나의 체온이므로 낮고 어두운 곳에서 울고 있는 너 때문에’ 라는 표현이 있는데요. 백무산 시인이 그런 낮고 어두운 있는 너란 존재에 대해 생각하고, 그게 필요하다는 거죠. 우리 사회가 온기가 있는 사회여야 한다는 거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인기척이 필요하고 그게 안심하고 살수 있는 토대일텐데 그런데 우리사회는 한번 내려가면 다시 올라갈 수 없는 일종의 미끄럼틀 사회가 되어버린 게 아닐까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가겠다 라는 그런 삶의 태도가 시의 행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시의 힘이라고 봐요.

 

영어로 ‘개인’을 뜻하는 ‘individual’이 더 이상 쪼갤 수 없다는 것을 뜻하잖아요. 사람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온전한 하나의 존재입니다. 지금은 사람보다 아파트의 격을 더 소중히 여기는 사회인데,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척도로 삼을 것인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권영은) 우리 농성장이 발길이 끊이지 않는데요. 오늘은 우리 농성장에 ‘고난함께’ 예배공동체 분들이 오셔서 이 선반들 손길로 다 닦고 가시고, 지나가는 시민들도 눈길 한번 더 주시고 가시는데요, 저희도 삼성이 주는 절망으로, 쉽게 희망을 발견하기 힘들었지만 아 곁이 있구나.. 아 우리도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곁이구나 하는 것을 하루하루 알아가는 것 같습니다. 비록 노숙농성하면서 8개월 동안 고생 고생하고 있지만요.

 

고영직) 권영은 선생님도 그렇고 여기 계신 분들의 표정들이 다들 어둡지 않아서 좋아요. 속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요. 가는 길 어려워도 웃으며 가는 것이 우리가 가진 최고의 무기 같아요. 어떤 시인이 그런 시를 썼어요. ‘웃음에는 민주주의가 없다’는. 삼성반도체 문제 또한 민주주의 문제이인데 그래서 해결은 민주주의를 어떻게 구성하고 회복해 갈 것인가에 달려있는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는 끊임없는 과정중에 있는 거잖아요. 저는 이런 노력들이 나의 변화 개인의 변화 뿐 아니라 나와 너가 손을 잡고 어떻게 하면 집단적 에로스를 방출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권영은) 이제 마지막 시 박철 시인의 ‘불을 지펴야겠다’를 낭독해주시겠습니다.

 

# 박철 시, 「불을 지펴야겠다」

 

올 가을엔 작업실을 하나 마련해야겠다

눈 내리는 밤길 달려갈 사나이처럼

따뜻하고 맞춤한 악수의 체온을

무슨 무슨 오피스텔 몇호가 아니라

어디 어디 원룸 몇층이 아니라

비 듣는 연립주택 지하 몇호가 아니라

저 별빛 속에 조금 더 뒤 어둠 속에

허공의 햇살 속에 불멸의 외침 속에

당신의 속삭임 속에 다시 피는 꽃잎 속에

막차의 운전수 등 뒤에 임진강변 초병의 졸음 속에

참중나무 가지 끝에 광장의 입맞춤 속에

피뢰침의 뒷주머니에 등굣길 뽑기장수의 연탄불 속에

나의 작은 책상을 하나 놓아두어야게다

지우개똥 수북이 주변은 너저분하고

나는 외롭게 긴 글을 한 편 써야곘다

세상의 그늘에 기름을 부어야겠다

불을 지펴야겠다

아름다운 가을날 나는 새로운 안식처에서 그렇게

의미 있는 일을 한번 해야겠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서설이 내리기 전 하나의 방을 마련해야겠다

 

* * *

 

고영직) <불을 지펴야겠다>라는 제목의 이 시는 표면적인 어떤 ‘불을 지펴야겠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저는 ‘우리 마음의 불을 켜자’는 의미로 해석했어요. 우리가 텔레비전을 끄고, 핸드폰을 끄고 마음의 불을 켜야하지요. 마음의 불을 켜기 위해서는 시끄럽고 복잡한 시간이 아니라 고독한 시간, 나와 진실하게 마주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 뭘 하나씩 뒤집어 쓰고 나오는게 아닐까 해요. 그걸 세글자로 ‘인두겁’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어쩌면 사람이 사람에 대해서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데 사람이 사람에게 함부로 하는 문화를 당연히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선 안되는데.


시인이 실제 작업실을 마련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까 말한 것처럼 숫자가 아니라 자연이나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나 이런 속에서 자신의 작업실을 마련하겠다는 이야기는 어찌보면 시인으로서는 자기 시론 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나는 이런 시를 쓰겠다는 의미인데, 시인으로서 자기 삶을 그렇게 살겠다는 것 표현에서 저는 눈에 보이는 불 뿐 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불을 어떻게 켤 것인가 하는 그런 의미에서 이 시를 골라봤습니다.


권영은) 세상의 그늘에 기름을 부어서 불을 지피겠다는 겁니다. 상당히 열정이 활활 타오르는 시인같아요. 우리 유미의 질병은 개인질병이 절대 아니다. 산업재해임을 밝히겠다. 고 싸웠고 그 어려운 산재인정을 받았는데, 여전히 불을 지피고 계시죠.

 

고영직) 우리가 하루하루가 기뻐야하는데 그런 기쁜 일이 많이 없다는게 유갑스럽지요. 불을 지피겠다는 의미는 우리가 상당히 생각해 볼 화두인거 같아요. 정말 무엇이 우리사회에서 중요하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지를 내면의 목소리에 호소하는 그런 이야기 같고요. 실제 불이 필요할 때가 있잖아요. 이때 불은 작은 촛불이 아니라 큰 횃불이 될 수 도 있겠요. 그런 저는 이렇게 의미의 다발을 고구마줄기처럼 캐낼 수 있는 시가 좋습니다

저도 한사람의 시민으로 살아가지만 한 사람의 시민으로 잘 사는 게 참 어려운 거 같습니다. 때로는 외면하고 싶고 때로는 침묵하고 싶은 욕망이나 욕구도 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왼쪽 가슴에 불을 지피게 하는, 진실에 눈을 감지 않고 어떤 그런 삶을 살아야되는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권영은) 저희는 지금 이곳에서 불을 지핀지 254일째입니다. 활활 타고 있습니다. 여름이라 좀 덥긴 한데요. 저희는 이곳에서 삼성 직업병 문제가 올바로 해결될 때까지 계속 이곳에 있을텐데요. 오늘 이렇게 이곳에 와주셔서 시를 낭독해주신 것도 저희 마음에 불쏘시개가 되어 활활 타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권영은) 오늘 제목은 시를 읽는 저녁이었는데요. 시가 있는 저녁 만들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 마지막 한마디 부탁합니다.

 

고영직) 따로 준비한 말은 없지만요. 황유미씨의 아버님이신 황상기 선생님, 또 다른 피해자들의 가족들이 지치지 않고 서로 손을 잡고 길게 갔으면 좋겠어요. 이때 길게 간다는 건 다른 의미가 아니라 건강했으면 좋겠구요.

저는 문화예술판에 검열 문제가 많이 심각해서 그 문제에 대해 많이 떠들기도 하는데요. 한국사회가 정말 여러 분야에서 너무 재미가 없어지는 것 같아요.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미인데. 재미에서 기쁨이 나오는건데.

좀 하루하루의 삶이 즐겁고 기쁨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회의 양극화의 문제가 웃음의 양극화로 나타나는 사회는 결코 좋은 사회라고 말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우루과이 시인 ‘마리오 베네딕트’라는 시인이 쓴 시의 제목이 ‘참호처럼 기쁨을 방호하라.’ 이란 게 있는데요. 참호처럼 누구도 훼손할 수 없는 기쁨이야말로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사회 전반으로 웃음이 넘치는 집단적인 에로스가 넘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권영은) 오늘 와주셔서 다섯 개의 시 낭독 해주셔서, 저희에게 곁을 내주시고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