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성 195일차 이어말하기
손님: 홍종인 유성기업 전 아산지회장
사회: 이종란

#유성기업은 현대차 엔진을 만든다
이: 시청 앞에서 한참 농성을 하는 분, 유성기업에서 일하다가 노조 탄압으로 인해 얼마 전에 한광호 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열사 투쟁을 진행하고 있는 홍종호 유성기업 전 아산지회장 모셨습니다. 홍종인 전 지회장님, 강남역에 와보신 적 있으신지요?
홍: 안녕하세요 홍종인입니다. 강남역이 유성기업 서울 사무소와 가까워요. 와본 적 있습니다.
이: 유성기업이 현대자동차 하청 기업으로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회사지요?
홍: 네 부품 만들어서 현대차에 납품하는 회사입니다.
이: 강남에 유성 본사 관련 회사가 있는지 몰랐네요 생산공장은 영동, 아산 등에 있다고 들었는데요,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하는 일 소개해주시겠어요.
홍: 유성기업은 자동차 핵심 부품인 엔진을 만드는 회사입니다. 아산공장은 핵심 부품인 엔진 피스톤 중에서도 링을 만드는 공장입니다. 링은 엔진 출력을 높이기도 하고 나빠지게도 하고 화재도 나고 그런 부품입니다. 영동공장은 라이너를 만드는 회사입니다. 그 외에 대구공장, 남동공장이 있고요, 계열사도 있습니다. 유성기업이 전체적으로 만들어서 완성품으로 내놓는 부품이 피스톤이거든요, 그 제품이 유성기업 이니셜 YPR이라고 찍혀서 현대차에 납품됩니다.
이: 일하는 노동자 수는 얼마나 되는지요.
홍: 아산·영동·남동·대구공장과 서울사무소까지 합쳐서 770명 정도입니다. 생산직만 따지면 600명가량 됩니다.
#밤에는 잠좀 자자…주간2교대 투쟁
이: 저는 2011년에 처음 유성기업 투쟁 소식을 알게 됐습니다. ‘밤에는 잠좀 자자’는 슬로건으로 교대제를 바꿔보자는 투쟁으로 처음 알게 됐어요. 반도체 노동자들도 교대 근무가 필수적인데요, 교대근무는 국제암연구소가 지정한 2급 발암물질이더라고요. 심야근무로 인해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는 이유에서요. 화학물질 뿐 아니라 생체리듬을 교란하는 것이 교대근무라고 하네요. 삼성전자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직업성 암과 질병에 시달리고 있고 때로는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고 보고 있어요.
유성기업 투쟁이 노동자를 병들게 하는 교대근무를 문제로 이끌어내고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기를 기대했는데, 그 뒤로 4~5년이 지난 뒤에 유성기업 상황은 너무나 처참했어요. 상상 못할 노동탄압으로 인해 죽음에 이르는 노동자가 나오는 상황이죠.
홍: 2011년에 주야 2교대를 시행한 이후에 심야 노동으로 인해 신체리듬이 깨져서 갑자기 돌연사하는 노동자가 있었어요. 자다가 심근경색으로 실려가고 급성 패혈증에 걸리기도 했고요. 야간 근무 들어간 뒤에 심리적 상태가 나빠져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분도 있었죠. 조합원들이 소리 없이 죽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더 이상 죽거나 다치지 않게 하려고 주간 연속 2교대를 요구했어요. 현대기아차가 주간 연속 2교대를 추진할 당시에 요구했기 때문에 원청에서는 ‘하청업체가 어떻게 주간 연속 2교대를 먼저 시행하는가’하는 문제 제기를 하기 시작했죠. 그때 중간에 노조파괴를 기획한 창조컨설팅이 있었던 겁니다.
#노조파괴, 그 뒤에 현대차가 있었다
2011년 5월 18일, 사측에서 직장폐쇄를 했어요. 그 과정에 이대로 공장에서 물러날 수는 없었죠. 그 안에 직원과 현대차 구매총괄 이사가 있었어요. 그 이사가 제네시스 차키를 주면서 차를 빼달라고 해서 봤더니 파일 철이 하나 있었어요. 직장폐쇄를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불법으로 몰아갈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담긴 파일 철이었죠.
이: 원청사인 현대차가 노무관리에 개입한 증거가 발견된 거네요.
홍: 네. 처음 밝혀진 건 그때였죠.
이: 삼성은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삼성이 원청과 하청까지 개입한다는 얘길 들었었는데, 현대차도 하청기업에까지 노무관리를 하는지는 유성기업 사례를 통해 알게 됐다.
홍: ‘거의 개입하지 않았나’하는 의혹 제기를 계속하고 있고요. 최근에서야 2011년 직장폐쇄 터진 뒤에 검찰과 노동부가 압수수색한 결과를 보게 됐는데, 현대에 동향파악을 하더라고요. 예컨대 ‘만도나 이런 쪽에는 성향이 강한 집행부가 나온다더라’는 내용을 보고하더라고요. 유성만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노조 파괴 시나리오가 가동된 사업장들은 현대차가 개입한 게 아니냐는 정황이 드러난 거죠.
이: 창조컨설팅이라고 하는 노무 컨설팅사가 금속노조에 여러 사업장에 노사관리에 개입을 하면서 열 몇 노동조합이 없어지는 비참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는데요,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그럼에도 견딘 거잖아요. 창조컨설팅이 했던 노무관리, 노조탄압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진행됐는지 설명해주시겠어요.
홍: 상당히 세부적으로 상세하게 창조컨설팅 문건에 기록해 뒀더군요. 2011년은 복수노조법이 허용된 해죠. 2011년 7월 15일. 어용노조 설립증, 규약, 설립총회까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창조컨설팅이 어용노조에 다 지침을 줬더라고요. 실제로 확인해본 결과 노동부 신고증과 창조컨설팅이 도와준 설립증이 동일했어요. 복수노조가 허용된 뒤에 생긴 노조가 어용노조 성격을 띄었기 때문에 가입전략이든 이런 부분이 현대차에 다 보고가 됐고, 어용노조 조직이 왜 원활히 진행 되지 않는가라는 내용이 담긴 추궁 메일까지 폭로가 됐죠. 2011년 9월엔 사측이 강제 교육을 보내더라고요. 이 것도 창조컨설팅이 제안한 안이었어요. 그 이후에 징계를 했을 때, 징계 절차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창조컨설팅이 일러준 부분이었어요.
복귀한 뒤에 전체 조합원이 징계·교육대상이 됐어요. 2011년 10월 18일, 소위 노조 상위 클래스-노동조합 간부 위주-에 있는 조합원 해고 24명, 출근정지· 정직 등의 징계를 우선적으로 당했어요. 그때 저도 1차 해고가 됐고요. 2차는 중간급, 3차는 일반 노조원들이 징계를 받았어요. 점차 해고자는 줄어들고 징계 수위도 낮아지는 식이었죠.
용역깡패가 들어오는 곳은 사측이 손해배상 청구를 하죠. 그런데 어용노조에 가입하면 손해배상 대상에서 빼주는 유인책을 내놓고 적극적으로 이를 사측이 활용하라는 부분도 밝혀졌어요.
2011년 간부였던 조합원이 어용으로 빠지면서 손배에서 빠지고 징계 수위도 낮아졌고요. 이 때문에 노조원들이 많이 빠져나가기도 했는데요. 2011년 11월까지는 조합원 이탈자가 많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창조컨설팅이 가입 전략을 새로 내놨어요. 창조컨설팅이 계장, 과장, 부장까지 노조에 가입하게 하는 전략을 다시 세웠더라고요.
이: 민주 노조파괴를 창조컨설팅이 했고, 현대차가 알고 있었다는 말씀이시지요.
홍: 네, 창조 컨설팅 문건에 보면 현대차 제출용이라고 해서 원본 파일을 캡처한 자료가 있어요.
#대포차를 몰고 인도로 돌진한 용역
이: 복수노조가 금지될 때는 복수노조를 허용하라는 싸움을 하곤 했는데, 그 시기를 벼려서 자본이 어용노조를 세워서 민주노조를 탄압하고 깨뜨리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람들이 많이 알고 공감대를 형성해서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직장폐쇄나 각종 해고, 징계 남발, 용역 깡패를 동원한 끔찍한 폭력을 겪으셨잖아요. 다시 떠올리기 힘든 기억이겠지만, 어떤 일을 겪었는지 설명해주시면 좋겠어요.
홍: 2011년 5월 18일, 직장폐쇄가 됐어요. 자정이 지나고 19일 새벽에 있었던 일이에요. 용역깡패가 대포차를 끌고 라이트를 끈 채로 인도로 돌진해서 조합원 13명이 떨어져 나갔어요. 많이 다친 분은 안면 광대뼈 함몰 골절로 지금도 후유증을 앓고 있어요. 그 이후에 크게 터진 건 6월 22일 아침이에요. 사측이 콘테이너 2개로 공장을 막았어요. 그런데 이날 지게차로 콘테이너를 올린 뒤에 용역이 뛰쳐나오더라고요. 다시 콘테이너가 내려왔어요. 그리고 용역이 콘테이너 위에 올라가서 소화기를 분사했고, 빈 통을 조합원에게 던지면서 두개골 함몰 부상을 했어요. 이 당사자가 지난주까지 징계를 받았는데, 성인은 두개골을 열었던 그 부분이 붙질 않는다더라고요. 상당히 심각한 사태까지 갔었죠.
이: 그런 폭력은 살인 행위 아닌가요. 용역깡패나 사주한 사람들에 대해서 살인죄나 폭행죄가 성립이 됐나요.
홍: 폭력을 사주한 유성기업 사업주와 용역을 고소했어요. 그런데 참 법이 어떻게 정의를 실현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검찰에서부터 용역 폭력 사주했던 부분을 검찰이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했어요. 재정 신청해서 고법에 올렸지만 용역 폭력은 기소돼지 않았어요. 노조 파괴 시나리오를 세운 부분만 검찰이 기소해서 지금 재판하고 있고요. 대포차를 몰았던 사람은 처벌받지 않았고, 진두지휘했던 용역도 집행유예에 사회봉사만 받은 걸로 알고 있어요.
#“형, 나 미쳤나봐. 나 미친거 맞지?”
이: 법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해야 하는데, 사용자에게는 솜방망이 처벌을 하거나 아예 면죄부를 주는 현실이 안타깝네요. 노동자들에게도 노동권과 노동법이 있는데 전혀 노동권이 법에 의해 보장되지 않는 야만적인 사회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야만적인 사회에서 견디면서 노동권을 쥐기 위해, 미래를 위해 싸우는 유성기업 노동자들 참 대단하신 것 같아요.
저 같으면 못 견딜 것 같아요. 그런 끔찍한 폭력 앞에서도 견뎌야 하는 시간들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상당히 많은 분들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들었어요.
홍: 2011년 이후에 조합원들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비롯해서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 있는지 조합원 심리상담 조사를 했었어요. 그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조합원 심리가 좋지 않구나라고 느꼈던 적이 있어요. 2012년 유성기업 아산공장 정문 앞에 굴다리 농성을 했어요. 그때 농성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한 조합원이 개인텐트를 가지고 100m 떨어진 곳에 텐트를 쳤어요. 그 텐트를 시작으로 굴다리 밑에까지 텐트를 치고 같이 지켜주는 그런 일들로 이어졌죠. 처음 곁에 텐트를 친 동지는 매일 혼자 텐트에서 자면서 칼을 갈고 있었던 거예요. 이후에 정신질환으로 산재신청을 해서 승인을 받았는데, 제주도에 요양 가서 또 자해를 했어요. 그리고 굴다리가 높지 않아요. 그런데 그 곳에 올라가서 형이 안 나오면 여기서 뛰어나올 거야라고 했던 다른 동지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얘기하면서 듣고도 표현하지 못하고 전달하지 못했던 일들이 결국 한광호 열사의 죽음을 낳은 것 아닌가하는 마음이 있어요.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정신질환’을 앓아서 정신병원 폐쇄 병동에 입원하는 조합원도 있었고요.
아까 말씀드린 그 조합원이 법정에 서서 마지막으로 얘기했던 부분이 사실 저는 정신과 상담을 하고 있고, 약을 먹고 있다고 얘길 했어요. 그 이후에 이 친구가 입원을 했는데, 더 죽을 것 같다면서 나왔으면 좋겠다고 해서 나왔어요. 그 이후에 밥을 사주러 한 번 갔어요. 한참을 자기 얘기를 하다가 마지막에 하는 말이 “나 진짜 미쳤나봐. 나 미친 거 맞지”라고 하더라고요. 앞서 자살 시도부터 해서 투쟁했던 나날들을 증언하고 나서 “지금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 왜 이렇게까지 됐는지 나도 모르겠다”는 얘기가 제 가슴을 정말 아프게 했어요. 당시에는 산재 불승인됐고요. 제주도에서 요양한 뒤에 최근에 산재 승인이 됐다. 전화가 와서 고맙다고 계속 얘기를 하는데, 순진하고 아무 것도 모르는 친구들이 왜 이렇게 변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그 과정이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파업을 하면 관리자가 앞을 막아서요. 막아선 사이에는 카메라, 휴대전화를 들고 앞에 나서는 사람들을 채증을 해요. 손이라도 조금 뻗었다거나 말을 하거나 하면 바로 법적 증거자료가 되는 거에요. 일상적으로 관리자들이 스스로 하는 얘기가 채증조와 몸빵조가 있다고 해요.
채증조는 말 그대로 채증하는 팀이고요, 몸빵조는 시비 걸고 맞는 사람들이에요. 공장장은 ‘시비 걸고 맞고 쓰러져라’라는 지침을 줬다고 해요. 그 뒤에 들어온 관리노무이사는 나이 어린 관리자들을 시켜서 금속노조의 아버지 뻘 되는 동지들에게 귓속말로 욕을 하고 반발하면 채증하라고 주문을 한다더라고요. 관리자도 사람인지라 전달을 해줍니다. 지금 유성기업 아산공장에는 렌즈 붙은 안경, 카메라 붙은 시계·목걸이를 지닌 채증조가 있어요. 이 사람들이 있으니 조심하라고까지 얘기를 해줘요.
이즈음에 영동공장에 몰래 카메라가 들어간 거에요. 콘센트 안에 볼트 구멍에 렌즈를 심어서 몰래카메라를 숨겨뒀더라고요. 또 비상구에 구멍이 하나 작게 있어서 탈의장까지 보이는 몰래카메라를 심기도 했고요. 도대체 탈의장이 찍힐 수 없는데, 그걸 찍어서 법적 자료로 쓰이기도 했어요. 의심을 하고 찾다보니까 몰래카메라가 숨겨져 있었던 게 폭로됐죠.

이: 아주 저질스런 영화를 보는 느낌의 현실이네요.
홍: 일상적 감시가 그냥 감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생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는 것이 문제에요. 심지어 스마트폰을 작업복 가슴 주머니에 넣어서 감시하기도 하더라고요. 현장에 있는 노동자가 잠깐 화장실에 가려고 나가도 시간을 체크해서 “왜 이렇게 오래 자리를 비웠느냐”면서 임금을 깎기도 했어요. 심지어 물 먹는 것 가지고도 그러더라고요. 항의를 하니까 대답 안하고 경고장 올리고 징계를 했어요. 항의하는 내용을 고소·고발해서 경찰 조사를 받고 법원에 가기도 하고요.
이번에 세상을 떠난 한광호 열사. 고소고발 당한 건수가 11건이에요. 이 가운데 9건이 무혐의였고요, 2건만 인정됐어요. 의도적으로 파놓은 함정에 빠진 거에요. 이렇게 서서히 사람을 죽여 가더라고요. 고소고발을 제일 많이 당한 동지는 건수가 50건이고, 벌금만 몇 천만 원이라고 하더라고요. 고소고발 50건 정도 되면 잘못한 게 없어요. 가다가 시비 걸어서 한 마디 했던 일, 손짓을 하니까 방위 차원에서 손 내민 일 이런 것들로 다 걸리는 거에요. 그런데 경찰서에 가 보면 내가 위해를 가하는 장면만 있더라고요. 경찰서 가서 억울해서 법정에 가면 증거 내놓으라고 하고요. 계속 이런 일들이 반복되니까 ‘내가 왜 법정에 서야 하는가’가 아니라 ‘나는 왜 이렇게 항상 억울하게 당하고 형사기관·수사기관부터 해서 내 주장은 왜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가’라는 절망에 빠지면서 상처가 생기더라고요. 사측은 채증해서 징계를 구하고요. 그 사람, 살지 말라는 거죠.
#“종량제쓰레기봉투 안에서 잠을 잤다”
이: 듣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히네요. 유성기업 대표가 유시영 씨죠?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오체투지할 때 그 이면에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몰랐어요. 지금 얘기를 들어보니까 정말 그런 사람은 감옥에서 평생 살아도 모자랄 천벌 받을 짓을 했네요. 꼭 반드시 감옥에 가야 하는 사람인데 유시영 씨를 처벌하지 않는 상황이잖아요. 정말 개탄스럽습니다. 그러다가 한광호 님도 자신의 목숨을 내던진 것 같아요. 이 문제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서울시청에 와서 동료의 죽음을 알리고 열사투쟁을 하고 계시죠. 이게 또 기가 막힌 점이 분향소 하나 못 차리게 하려고 경찰 병력이 지키고 서 있었고요. 굉장히 힘들게 분향소를 세우셨잖아요. 동료의 죽음에 대해 애도할 시간도 없이 공권력에 의한 탄압을 받으셨죠. 한광호 열사 투쟁에 대해서도 소상히 얘기 해주셨으면 합니다.
홍: 3월 17일 한광호 동지가 주검으로 발견됐어요. 6일 뒤인 23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영정 사진을 놓기 위해서 자리를 잡으려는 순간에 청경과 경찰이 영정을 빼앗아갔어요. 시청 서편에 분향소를 설치하겠다고 얘기를 했는데, 천막을 또 바로 빼앗아갔어요. 거기 눌러 앉아서 노숙하겠다고 얘기를 했더니 잠은 잘 수 없다고 하면서 침낭도 보이기만 하면 빼앗아가고, 바닥에 까는 보온재도 빼앗아가더라고요. 하다못해 비닐 조각을 하나 구해서 가져왔더니 그 비닐 조각도 가져가요. 참 웃긴 게 손바닥만한 비닐 조각을 여성 조합원이 들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경찰이 손으로 발로 밀면서 고착을 시키더라고요. 여경이 올 때까지 15~20분간 그랬어요. 경찰이 비닐 한 쪽 빼앗아가면서 영웅이 된 것처럼 비아냥거리고 웃고 그러더라고요. 과연 이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일인가요. 무전기를 들으라고 틀어놓은 것처럼 ‘고착시키고 채증해’라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대놓고 공권력이 탄압을 하는데 정말 해도 너무하더라고요. 이대로 가다가는 내가 심장이 떨려서 죽겠다 싶어서 핫팩을 가슴팍에 대고 잤어요. 너무 추워서 대용량 쓰레기봉투를 사서 가지고 오는데, 그것도 빼앗았어요. 이건 비닐조각이 아니라 쓰레기봉투니까 달라고 하니까 그제야 주더라고요. 그 쓰레기봉투를 연결해서 그 안에 들어가서 잤어요.
이: 저도 그 소식을 페이스북을 통해서 봤어요. 지금이 21세기인가, 대한민국에서 과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것인가요. 정말 너무 비참하더라고요. 수치스럽고 부끄러웠어요. 지금은 그런 상황이 조금 해결되긴 했지만, 여전히 서울시청에서 분향소를 허용하지 않아서 사용료를 내야 한다고 들었어요.
홍: 진짜 노숙을 12일간 했고요, 13일차 되던 날 경찰의 만행에 분노한 3대 종단이 와서 기도회를 위한 천막을 치자고 제안하셔서 그때 천막을 쳤어요. 그러니까 시에서는 종단에 압박을 하더라고요. 그러다가 13~14일 범시민대책위에서 사용허가 신청을 해서 지금 사용을 하고 있고요. 이 이후에는 불법이라면서 과태료 부과 대상이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시청도 3대 종단이 천막을 마련했으니 종단에서 걷지 않으면 3대 종단에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얘기를 하기도 했어요.
이: 서울시청이 그렇게 치사하게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삼성은 IMF 당시에 삼성코닝 구조조정 시나리오를 썼지요. 미행·타격·감시·그림자마킹을 비롯해서 군대 용어보다 더 무시무시한 용어로 노동자를 어떻게 감시해야 할지 깨알같이 정리한 문건을 봤어요. 정말 미친 기업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삼성 뿐 아니라 현대도 그렇다는 현실이 참 안타까워요. 현대사를 거치면서 ‘친재벌 반민중’이 깊게 뿌리내린 것도 안타깝고요. 노동자 민중의 인권을 최소한이라도 보장해야 하는 건 아닌가 싶어요.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 “억울하잖아요”
이: 제일 화가 나는 건 재벌들이 쌓아올린 사내유보금이 엄청나다고 하잖아요. 10대 그룹 상장사 사내유보금만 2015년 기준 560조가 넘는다고 하잖아요. 그 가운데 삼성이 232조 원, 현대차만 113조 원에 가까운 사내유보금을 쌓아놓고 있죠. 그 돈을 벌어놓은 노동자들, 국민들에게 분배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서 노동자를 기계처럼 부리고 탄압하는 현실이 너무 마음이 아파요. 하루 빨리 바뀌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해요. 사람들은 다 마음이 따뜻하고 성실하게 일하고 남이 잘못 사는 것에 대해 도울 줄 아는데, 이 구조가 재벌 키우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 잘못된 정부가 자꾸 그릇된 문제를 낳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루 빨리 노동자들을 무시하고 탄압하고 잘못된 현실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많이 힘드시죠?
홍: 안 힘들다고 하면 거짓말이고요.
이: 제가 왜 힘드신지 여쭤보는 이유는, 힘들어도 견디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요. 동료의 죽음에 대한 책임감과 의무감이 있으시겠지만, 힘들어도 굴다리 농성, 고공농성을 비롯해서 수많은 탄압에 맞서 싸우고, 개인적인 일상을 포기하고 열사투쟁까지 하시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홍: 네, 가장 힘든 건 마음이 불편하다는 거예요. 정말 힘들지만 왜 싸우는가, 왜 죽지 못하고 있는가. 그 이유는 굴다리 농성할 때를 다시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수많은 조합원들이 전화로 협박 아닌 협박을 해요. “형, 제가 죽겠습니다. 오늘 나 죽을게요. 제발 내려와요”라고 하면서. 이런 상황에 내가 죽게 되면 이 사람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지금도 그래요. 현장 조합원들 안 힘든 사람 없어요. 중증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도 많고요. 대표성을 가진 사람들은 더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는데요. 조합원들의 존재가 저를 다른 마음 먹지 못하도록, 더 단단하게 여며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힘들어하는 사람들보다 조금 더 밝게 지내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고요.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정말 억울하잖아요. 정말 억울해서라도 멈출 수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정말 어떤 잘못을 했으면 확실히 인정을 하겠죠. 그런데 시나리오 짜서 궁지로, 사지로 계속해서 몰아가고, 잘못이 없는데 범죄자를 만드니까 억울해요 정말. 법정에서 사측이 얘기하는 걸 들어보면 ‘우리는 대한민국에 존재하면 안 되는 인간들인가’하는 생각이 들어요. 시청에서는 ‘우리는 쓰레기봉투 안에 들어가야 비닐 한 조각 덮고 잘 수 있는 그런 존재인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말 너무 억울하잖아요. 분명히 나도 부모님이 아끼는 자식이고 인간이고 지금도 숨을 쉬고 활동하고 있고 여기서 대화하고 있는데, 회사에 가면 떠들지 말라고 하고, 억울하면 증거를 찾아오라고 하고, 만들어오라고 하고 그런 얘기만 하고 있어요. 지금껏 사측 관리자는 누구 하나 처벌 받은 사람이 없어요. 진실이 드러날 때까지는 포기하지 말고 싸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저희 반올림도 포기할 수 없어서 지금 9년째 싸우고 있어요. 삼성반도체 백혈병의 진실이 한 아버지의 숭고한 노력 덕분에 조금씩 드러났어요. 언론도 외면을 했지만, 피해자 한 명 만나려고 발품 팔고 유인물 돌리고 현수막 걸면서 알렸더니 ‘나도 백혈병에 걸렸다. 뇌종양에 걸렸다’ 이렇게 얘기하시는 분들이 223명이였어요. 그 중에서 76명이 이미 세상을 떠나셨고요.
홍 선생님은 몇 달 전에 성공회대에서 학생 초청으로 뵈었죠. 제가 그 때 부럽다고 말씀을 드린 적이 있었는데, 후회합니다. 삼성은 노동조합이 없어서 비정규직 실태도, 돌아가신 분들도 잘 알 수가 없어요. 하지만 유성기업은 노동조합 만들어서 탄압을 받고 있지만, 그래도 같이 투쟁하고 있어서 부럽다고 얘기했었죠. 지금 그 말씀을 드렸던 걸 많이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삼성은 농성한 지 195일째가 됐는데, 지금 사과 한 마디, 보상도 제대로 하지 않았어요. 온라인, 페이스북으로 유성기업 투쟁에 대해서 많이 알리고 연대하고픈 마음이 커요. 어떻게 보면 같은 문제인 것 같아요. 삼성과 현대가 노동권을 짓밟고 인정하지 않는 상황, 한국 사회의 절대 다수인 노동자들이 어떻게 힘들어지고 있는지, 우리가 좀 더 많이 연대하고 제대로 알려서 억울함을 풀고 더 이상 억울한 게 아니라 인간답게 제대로 대접 받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얘기. 유성기업 투쟁에 대해 연대해달라는 얘기도 좋고, 삼성 직업병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해서 피해자 가족들이나 반올림 활동가들이나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
#숨기려는 자와 들추려는 자의 싸움
홍: 저는 반올림을 노동안전부장할 때부터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서 알고 있었어요. 그때 보면 항상 삼성도, 유성도 진실을 은폐하고 숨기려는 모습을 많이 비추더라고요. 인정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게 도리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마치 아닌 것처럼 자기 잘못을 덮어요. 그러다 나중에 수습할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행태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유성은 지금 노조파괴 시나리오든 뭐든 깔끔하게 인정하면 되는데, 한 번 아니라고 하니까 계속 아니라고밖에 할 수 없는 거잖아요. 어용노조가 노조가 아니라는 판결이 나왔고, 재정에서도 노조 파괴는 사측에서 일정 부분 조종한 정황이 있다는 얘기가 나왔고요.
삼성 직업병 문제도 노동자들이 사내에서 정확히 조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강제적으로라도 더 이상 죽지 않도록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봐요.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아서 ‘진실’에 대해 많이 거론하죠. 그런데 감추려고 하는 진실이 너무 크기 때문에 진실을 들춰내려는 노력이 있는 것이겠죠. 숨기려는 자와 드러내려는 자의 지난한 싸움이 계속되고 있네요.
정말 더러운 것이 있어요. 이 나라는 자본과 노동자, 돈을 가진 자와 없는 자에 대해 편을 들어주는 쪽이 너무 명확해요. 그걸 깨달아가는 시대가 됐으면 좋겠어요.
한광호 동지가 3월 17일 주검으로 발견된 지 이제 33일이 됐어요. 앞으로 그가 33일 더 차가운 냉동고에 있어야 할지… 아직 기약이 없어요. 사측이 전혀 반성하지도 않고 있고요. 애도 표현 한마디 하지 않았고요. 그 동지가 차가운 곳에서 계속 있을 걸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하고 화가 치밀어올라요. 저희 힘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이미 다 아실 거라고 생각해요.
‘조그만 힘’, 우리가 할 수 있는 손가락 운동으로 SNS에서 얘기하고 거론하고 언론에 나오게 한다면 유성기업은 부담이 될 거에요. 유성기업이 검색순위에 뜨기만해도 부담이 될 거란 말이죠. 저는 한광호 동지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 동지가 ‘그래 잘한다, 그래 승리했다, 고맙다’라고 하면서 하늘로 갈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이: 33일 전 세상을 떠난 유성기업 한광호 열사가 마음 편히 눈감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서울시청 한 가운데서 공권력에 맞서서 투쟁하고 계신 홍종인 동지 모셨습니다. 마음 모아 주실 거죠? 더 많이 알려서 이 투쟁 너무 길어지지 않도록 연대하겠습니다. 저희도 지금 이곳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한 게 작년 10월 7일이에요. 삼성이 끝까지 버티는 바람에,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아서 농성이 길어지고 있는데, 힘 잃지 않고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오는 4월 22일은 농성 200일입니다. 반올림이 농성 200일을 맞아 문화제를 합니다. 이 소식도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유성기업 투쟁 동지께서 말씀하러 오신다고 하니 평소보다 많은 분들이 오셨어요. 인기가 많으세요. 이 문제에 대해서 지지하고 공감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네요. 지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농성 195일차 이어말하기
손님: 홍종인 유성기업 전 아산지회장
사회: 이종란
#유성기업은 현대차 엔진을 만든다
이: 시청 앞에서 한참 농성을 하는 분, 유성기업에서 일하다가 노조 탄압으로 인해 얼마 전에 한광호 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열사 투쟁을 진행하고 있는 홍종호 유성기업 전 아산지회장 모셨습니다. 홍종인 전 지회장님, 강남역에 와보신 적 있으신지요?
홍: 안녕하세요 홍종인입니다. 강남역이 유성기업 서울 사무소와 가까워요. 와본 적 있습니다.
이: 유성기업이 현대자동차 하청 기업으로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회사지요?
홍: 네 부품 만들어서 현대차에 납품하는 회사입니다.
이: 강남에 유성 본사 관련 회사가 있는지 몰랐네요 생산공장은 영동, 아산 등에 있다고 들었는데요,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하는 일 소개해주시겠어요.
홍: 유성기업은 자동차 핵심 부품인 엔진을 만드는 회사입니다. 아산공장은 핵심 부품인 엔진 피스톤 중에서도 링을 만드는 공장입니다. 링은 엔진 출력을 높이기도 하고 나빠지게도 하고 화재도 나고 그런 부품입니다. 영동공장은 라이너를 만드는 회사입니다. 그 외에 대구공장, 남동공장이 있고요, 계열사도 있습니다. 유성기업이 전체적으로 만들어서 완성품으로 내놓는 부품이 피스톤이거든요, 그 제품이 유성기업 이니셜 YPR이라고 찍혀서 현대차에 납품됩니다.
이: 일하는 노동자 수는 얼마나 되는지요.
홍: 아산·영동·남동·대구공장과 서울사무소까지 합쳐서 770명 정도입니다. 생산직만 따지면 600명가량 됩니다.
#밤에는 잠좀 자자…주간2교대 투쟁
이: 저는 2011년에 처음 유성기업 투쟁 소식을 알게 됐습니다. ‘밤에는 잠좀 자자’는 슬로건으로 교대제를 바꿔보자는 투쟁으로 처음 알게 됐어요. 반도체 노동자들도 교대 근무가 필수적인데요, 교대근무는 국제암연구소가 지정한 2급 발암물질이더라고요. 심야근무로 인해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는 이유에서요. 화학물질 뿐 아니라 생체리듬을 교란하는 것이 교대근무라고 하네요. 삼성전자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직업성 암과 질병에 시달리고 있고 때로는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고 보고 있어요.
유성기업 투쟁이 노동자를 병들게 하는 교대근무를 문제로 이끌어내고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기를 기대했는데, 그 뒤로 4~5년이 지난 뒤에 유성기업 상황은 너무나 처참했어요. 상상 못할 노동탄압으로 인해 죽음에 이르는 노동자가 나오는 상황이죠.
홍: 2011년에 주야 2교대를 시행한 이후에 심야 노동으로 인해 신체리듬이 깨져서 갑자기 돌연사하는 노동자가 있었어요. 자다가 심근경색으로 실려가고 급성 패혈증에 걸리기도 했고요. 야간 근무 들어간 뒤에 심리적 상태가 나빠져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분도 있었죠. 조합원들이 소리 없이 죽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더 이상 죽거나 다치지 않게 하려고 주간 연속 2교대를 요구했어요. 현대기아차가 주간 연속 2교대를 추진할 당시에 요구했기 때문에 원청에서는 ‘하청업체가 어떻게 주간 연속 2교대를 먼저 시행하는가’하는 문제 제기를 하기 시작했죠. 그때 중간에 노조파괴를 기획한 창조컨설팅이 있었던 겁니다.
#노조파괴, 그 뒤에 현대차가 있었다
2011년 5월 18일, 사측에서 직장폐쇄를 했어요. 그 과정에 이대로 공장에서 물러날 수는 없었죠. 그 안에 직원과 현대차 구매총괄 이사가 있었어요. 그 이사가 제네시스 차키를 주면서 차를 빼달라고 해서 봤더니 파일 철이 하나 있었어요. 직장폐쇄를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불법으로 몰아갈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담긴 파일 철이었죠.
이: 원청사인 현대차가 노무관리에 개입한 증거가 발견된 거네요.
홍: 네. 처음 밝혀진 건 그때였죠.
이: 삼성은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삼성이 원청과 하청까지 개입한다는 얘길 들었었는데, 현대차도 하청기업에까지 노무관리를 하는지는 유성기업 사례를 통해 알게 됐다.
홍: ‘거의 개입하지 않았나’하는 의혹 제기를 계속하고 있고요. 최근에서야 2011년 직장폐쇄 터진 뒤에 검찰과 노동부가 압수수색한 결과를 보게 됐는데, 현대에 동향파악을 하더라고요. 예컨대 ‘만도나 이런 쪽에는 성향이 강한 집행부가 나온다더라’는 내용을 보고하더라고요. 유성만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노조 파괴 시나리오가 가동된 사업장들은 현대차가 개입한 게 아니냐는 정황이 드러난 거죠.
이: 창조컨설팅이라고 하는 노무 컨설팅사가 금속노조에 여러 사업장에 노사관리에 개입을 하면서 열 몇 노동조합이 없어지는 비참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는데요,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그럼에도 견딘 거잖아요. 창조컨설팅이 했던 노무관리, 노조탄압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진행됐는지 설명해주시겠어요.
홍: 상당히 세부적으로 상세하게 창조컨설팅 문건에 기록해 뒀더군요. 2011년은 복수노조법이 허용된 해죠. 2011년 7월 15일. 어용노조 설립증, 규약, 설립총회까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창조컨설팅이 어용노조에 다 지침을 줬더라고요. 실제로 확인해본 결과 노동부 신고증과 창조컨설팅이 도와준 설립증이 동일했어요. 복수노조가 허용된 뒤에 생긴 노조가 어용노조 성격을 띄었기 때문에 가입전략이든 이런 부분이 현대차에 다 보고가 됐고, 어용노조 조직이 왜 원활히 진행 되지 않는가라는 내용이 담긴 추궁 메일까지 폭로가 됐죠. 2011년 9월엔 사측이 강제 교육을 보내더라고요. 이 것도 창조컨설팅이 제안한 안이었어요. 그 이후에 징계를 했을 때, 징계 절차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창조컨설팅이 일러준 부분이었어요.
복귀한 뒤에 전체 조합원이 징계·교육대상이 됐어요. 2011년 10월 18일, 소위 노조 상위 클래스-노동조합 간부 위주-에 있는 조합원 해고 24명, 출근정지· 정직 등의 징계를 우선적으로 당했어요. 그때 저도 1차 해고가 됐고요. 2차는 중간급, 3차는 일반 노조원들이 징계를 받았어요. 점차 해고자는 줄어들고 징계 수위도 낮아지는 식이었죠.
용역깡패가 들어오는 곳은 사측이 손해배상 청구를 하죠. 그런데 어용노조에 가입하면 손해배상 대상에서 빼주는 유인책을 내놓고 적극적으로 이를 사측이 활용하라는 부분도 밝혀졌어요.
2011년 간부였던 조합원이 어용으로 빠지면서 손배에서 빠지고 징계 수위도 낮아졌고요. 이 때문에 노조원들이 많이 빠져나가기도 했는데요. 2011년 11월까지는 조합원 이탈자가 많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창조컨설팅이 가입 전략을 새로 내놨어요. 창조컨설팅이 계장, 과장, 부장까지 노조에 가입하게 하는 전략을 다시 세웠더라고요.
이: 민주 노조파괴를 창조컨설팅이 했고, 현대차가 알고 있었다는 말씀이시지요.
홍: 네, 창조 컨설팅 문건에 보면 현대차 제출용이라고 해서 원본 파일을 캡처한 자료가 있어요.
#대포차를 몰고 인도로 돌진한 용역
이: 복수노조가 금지될 때는 복수노조를 허용하라는 싸움을 하곤 했는데, 그 시기를 벼려서 자본이 어용노조를 세워서 민주노조를 탄압하고 깨뜨리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람들이 많이 알고 공감대를 형성해서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직장폐쇄나 각종 해고, 징계 남발, 용역 깡패를 동원한 끔찍한 폭력을 겪으셨잖아요. 다시 떠올리기 힘든 기억이겠지만, 어떤 일을 겪었는지 설명해주시면 좋겠어요.
홍: 2011년 5월 18일, 직장폐쇄가 됐어요. 자정이 지나고 19일 새벽에 있었던 일이에요. 용역깡패가 대포차를 끌고 라이트를 끈 채로 인도로 돌진해서 조합원 13명이 떨어져 나갔어요. 많이 다친 분은 안면 광대뼈 함몰 골절로 지금도 후유증을 앓고 있어요. 그 이후에 크게 터진 건 6월 22일 아침이에요. 사측이 콘테이너 2개로 공장을 막았어요. 그런데 이날 지게차로 콘테이너를 올린 뒤에 용역이 뛰쳐나오더라고요. 다시 콘테이너가 내려왔어요. 그리고 용역이 콘테이너 위에 올라가서 소화기를 분사했고, 빈 통을 조합원에게 던지면서 두개골 함몰 부상을 했어요. 이 당사자가 지난주까지 징계를 받았는데, 성인은 두개골을 열었던 그 부분이 붙질 않는다더라고요. 상당히 심각한 사태까지 갔었죠.
이: 그런 폭력은 살인 행위 아닌가요. 용역깡패나 사주한 사람들에 대해서 살인죄나 폭행죄가 성립이 됐나요.
홍: 폭력을 사주한 유성기업 사업주와 용역을 고소했어요. 그런데 참 법이 어떻게 정의를 실현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검찰에서부터 용역 폭력 사주했던 부분을 검찰이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했어요. 재정 신청해서 고법에 올렸지만 용역 폭력은 기소돼지 않았어요. 노조 파괴 시나리오를 세운 부분만 검찰이 기소해서 지금 재판하고 있고요. 대포차를 몰았던 사람은 처벌받지 않았고, 진두지휘했던 용역도 집행유예에 사회봉사만 받은 걸로 알고 있어요.
#“형, 나 미쳤나봐. 나 미친거 맞지?”
이: 법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해야 하는데, 사용자에게는 솜방망이 처벌을 하거나 아예 면죄부를 주는 현실이 안타깝네요. 노동자들에게도 노동권과 노동법이 있는데 전혀 노동권이 법에 의해 보장되지 않는 야만적인 사회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야만적인 사회에서 견디면서 노동권을 쥐기 위해, 미래를 위해 싸우는 유성기업 노동자들 참 대단하신 것 같아요.
저 같으면 못 견딜 것 같아요. 그런 끔찍한 폭력 앞에서도 견뎌야 하는 시간들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상당히 많은 분들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들었어요.
홍: 2011년 이후에 조합원들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비롯해서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 있는지 조합원 심리상담 조사를 했었어요. 그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조합원 심리가 좋지 않구나라고 느꼈던 적이 있어요. 2012년 유성기업 아산공장 정문 앞에 굴다리 농성을 했어요. 그때 농성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한 조합원이 개인텐트를 가지고 100m 떨어진 곳에 텐트를 쳤어요. 그 텐트를 시작으로 굴다리 밑에까지 텐트를 치고 같이 지켜주는 그런 일들로 이어졌죠. 처음 곁에 텐트를 친 동지는 매일 혼자 텐트에서 자면서 칼을 갈고 있었던 거예요. 이후에 정신질환으로 산재신청을 해서 승인을 받았는데, 제주도에 요양 가서 또 자해를 했어요. 그리고 굴다리가 높지 않아요. 그런데 그 곳에 올라가서 형이 안 나오면 여기서 뛰어나올 거야라고 했던 다른 동지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얘기하면서 듣고도 표현하지 못하고 전달하지 못했던 일들이 결국 한광호 열사의 죽음을 낳은 것 아닌가하는 마음이 있어요.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정신질환’을 앓아서 정신병원 폐쇄 병동에 입원하는 조합원도 있었고요.
아까 말씀드린 그 조합원이 법정에 서서 마지막으로 얘기했던 부분이 사실 저는 정신과 상담을 하고 있고, 약을 먹고 있다고 얘길 했어요. 그 이후에 이 친구가 입원을 했는데, 더 죽을 것 같다면서 나왔으면 좋겠다고 해서 나왔어요. 그 이후에 밥을 사주러 한 번 갔어요. 한참을 자기 얘기를 하다가 마지막에 하는 말이 “나 진짜 미쳤나봐. 나 미친 거 맞지”라고 하더라고요. 앞서 자살 시도부터 해서 투쟁했던 나날들을 증언하고 나서 “지금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 왜 이렇게까지 됐는지 나도 모르겠다”는 얘기가 제 가슴을 정말 아프게 했어요. 당시에는 산재 불승인됐고요. 제주도에서 요양한 뒤에 최근에 산재 승인이 됐다. 전화가 와서 고맙다고 계속 얘기를 하는데, 순진하고 아무 것도 모르는 친구들이 왜 이렇게 변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그 과정이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파업을 하면 관리자가 앞을 막아서요. 막아선 사이에는 카메라, 휴대전화를 들고 앞에 나서는 사람들을 채증을 해요. 손이라도 조금 뻗었다거나 말을 하거나 하면 바로 법적 증거자료가 되는 거에요. 일상적으로 관리자들이 스스로 하는 얘기가 채증조와 몸빵조가 있다고 해요.
채증조는 말 그대로 채증하는 팀이고요, 몸빵조는 시비 걸고 맞는 사람들이에요. 공장장은 ‘시비 걸고 맞고 쓰러져라’라는 지침을 줬다고 해요. 그 뒤에 들어온 관리노무이사는 나이 어린 관리자들을 시켜서 금속노조의 아버지 뻘 되는 동지들에게 귓속말로 욕을 하고 반발하면 채증하라고 주문을 한다더라고요. 관리자도 사람인지라 전달을 해줍니다. 지금 유성기업 아산공장에는 렌즈 붙은 안경, 카메라 붙은 시계·목걸이를 지닌 채증조가 있어요. 이 사람들이 있으니 조심하라고까지 얘기를 해줘요.
이즈음에 영동공장에 몰래 카메라가 들어간 거에요. 콘센트 안에 볼트 구멍에 렌즈를 심어서 몰래카메라를 숨겨뒀더라고요. 또 비상구에 구멍이 하나 작게 있어서 탈의장까지 보이는 몰래카메라를 심기도 했고요. 도대체 탈의장이 찍힐 수 없는데, 그걸 찍어서 법적 자료로 쓰이기도 했어요. 의심을 하고 찾다보니까 몰래카메라가 숨겨져 있었던 게 폭로됐죠.
이: 아주 저질스런 영화를 보는 느낌의 현실이네요.
홍: 일상적 감시가 그냥 감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생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는 것이 문제에요. 심지어 스마트폰을 작업복 가슴 주머니에 넣어서 감시하기도 하더라고요. 현장에 있는 노동자가 잠깐 화장실에 가려고 나가도 시간을 체크해서 “왜 이렇게 오래 자리를 비웠느냐”면서 임금을 깎기도 했어요. 심지어 물 먹는 것 가지고도 그러더라고요. 항의를 하니까 대답 안하고 경고장 올리고 징계를 했어요. 항의하는 내용을 고소·고발해서 경찰 조사를 받고 법원에 가기도 하고요.
이번에 세상을 떠난 한광호 열사. 고소고발 당한 건수가 11건이에요. 이 가운데 9건이 무혐의였고요, 2건만 인정됐어요. 의도적으로 파놓은 함정에 빠진 거에요. 이렇게 서서히 사람을 죽여 가더라고요. 고소고발을 제일 많이 당한 동지는 건수가 50건이고, 벌금만 몇 천만 원이라고 하더라고요. 고소고발 50건 정도 되면 잘못한 게 없어요. 가다가 시비 걸어서 한 마디 했던 일, 손짓을 하니까 방위 차원에서 손 내민 일 이런 것들로 다 걸리는 거에요. 그런데 경찰서에 가 보면 내가 위해를 가하는 장면만 있더라고요. 경찰서 가서 억울해서 법정에 가면 증거 내놓으라고 하고요. 계속 이런 일들이 반복되니까 ‘내가 왜 법정에 서야 하는가’가 아니라 ‘나는 왜 이렇게 항상 억울하게 당하고 형사기관·수사기관부터 해서 내 주장은 왜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가’라는 절망에 빠지면서 상처가 생기더라고요. 사측은 채증해서 징계를 구하고요. 그 사람, 살지 말라는 거죠.
#“종량제쓰레기봉투 안에서 잠을 잤다”
이: 듣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히네요. 유성기업 대표가 유시영 씨죠?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오체투지할 때 그 이면에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몰랐어요. 지금 얘기를 들어보니까 정말 그런 사람은 감옥에서 평생 살아도 모자랄 천벌 받을 짓을 했네요. 꼭 반드시 감옥에 가야 하는 사람인데 유시영 씨를 처벌하지 않는 상황이잖아요. 정말 개탄스럽습니다. 그러다가 한광호 님도 자신의 목숨을 내던진 것 같아요. 이 문제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서울시청에 와서 동료의 죽음을 알리고 열사투쟁을 하고 계시죠. 이게 또 기가 막힌 점이 분향소 하나 못 차리게 하려고 경찰 병력이 지키고 서 있었고요. 굉장히 힘들게 분향소를 세우셨잖아요. 동료의 죽음에 대해 애도할 시간도 없이 공권력에 의한 탄압을 받으셨죠. 한광호 열사 투쟁에 대해서도 소상히 얘기 해주셨으면 합니다.
홍: 3월 17일 한광호 동지가 주검으로 발견됐어요. 6일 뒤인 23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영정 사진을 놓기 위해서 자리를 잡으려는 순간에 청경과 경찰이 영정을 빼앗아갔어요. 시청 서편에 분향소를 설치하겠다고 얘기를 했는데, 천막을 또 바로 빼앗아갔어요. 거기 눌러 앉아서 노숙하겠다고 얘기를 했더니 잠은 잘 수 없다고 하면서 침낭도 보이기만 하면 빼앗아가고, 바닥에 까는 보온재도 빼앗아가더라고요. 하다못해 비닐 조각을 하나 구해서 가져왔더니 그 비닐 조각도 가져가요. 참 웃긴 게 손바닥만한 비닐 조각을 여성 조합원이 들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경찰이 손으로 발로 밀면서 고착을 시키더라고요. 여경이 올 때까지 15~20분간 그랬어요. 경찰이 비닐 한 쪽 빼앗아가면서 영웅이 된 것처럼 비아냥거리고 웃고 그러더라고요. 과연 이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일인가요. 무전기를 들으라고 틀어놓은 것처럼 ‘고착시키고 채증해’라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대놓고 공권력이 탄압을 하는데 정말 해도 너무하더라고요. 이대로 가다가는 내가 심장이 떨려서 죽겠다 싶어서 핫팩을 가슴팍에 대고 잤어요. 너무 추워서 대용량 쓰레기봉투를 사서 가지고 오는데, 그것도 빼앗았어요. 이건 비닐조각이 아니라 쓰레기봉투니까 달라고 하니까 그제야 주더라고요. 그 쓰레기봉투를 연결해서 그 안에 들어가서 잤어요.
이: 저도 그 소식을 페이스북을 통해서 봤어요. 지금이 21세기인가, 대한민국에서 과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것인가요. 정말 너무 비참하더라고요. 수치스럽고 부끄러웠어요. 지금은 그런 상황이 조금 해결되긴 했지만, 여전히 서울시청에서 분향소를 허용하지 않아서 사용료를 내야 한다고 들었어요.
홍: 진짜 노숙을 12일간 했고요, 13일차 되던 날 경찰의 만행에 분노한 3대 종단이 와서 기도회를 위한 천막을 치자고 제안하셔서 그때 천막을 쳤어요. 그러니까 시에서는 종단에 압박을 하더라고요. 그러다가 13~14일 범시민대책위에서 사용허가 신청을 해서 지금 사용을 하고 있고요. 이 이후에는 불법이라면서 과태료 부과 대상이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시청도 3대 종단이 천막을 마련했으니 종단에서 걷지 않으면 3대 종단에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얘기를 하기도 했어요.
이: 서울시청이 그렇게 치사하게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삼성은 IMF 당시에 삼성코닝 구조조정 시나리오를 썼지요. 미행·타격·감시·그림자마킹을 비롯해서 군대 용어보다 더 무시무시한 용어로 노동자를 어떻게 감시해야 할지 깨알같이 정리한 문건을 봤어요. 정말 미친 기업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삼성 뿐 아니라 현대도 그렇다는 현실이 참 안타까워요. 현대사를 거치면서 ‘친재벌 반민중’이 깊게 뿌리내린 것도 안타깝고요. 노동자 민중의 인권을 최소한이라도 보장해야 하는 건 아닌가 싶어요.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 “억울하잖아요”
이: 제일 화가 나는 건 재벌들이 쌓아올린 사내유보금이 엄청나다고 하잖아요. 10대 그룹 상장사 사내유보금만 2015년 기준 560조가 넘는다고 하잖아요. 그 가운데 삼성이 232조 원, 현대차만 113조 원에 가까운 사내유보금을 쌓아놓고 있죠. 그 돈을 벌어놓은 노동자들, 국민들에게 분배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서 노동자를 기계처럼 부리고 탄압하는 현실이 너무 마음이 아파요. 하루 빨리 바뀌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해요. 사람들은 다 마음이 따뜻하고 성실하게 일하고 남이 잘못 사는 것에 대해 도울 줄 아는데, 이 구조가 재벌 키우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 잘못된 정부가 자꾸 그릇된 문제를 낳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루 빨리 노동자들을 무시하고 탄압하고 잘못된 현실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많이 힘드시죠?
홍: 안 힘들다고 하면 거짓말이고요.
이: 제가 왜 힘드신지 여쭤보는 이유는, 힘들어도 견디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요. 동료의 죽음에 대한 책임감과 의무감이 있으시겠지만, 힘들어도 굴다리 농성, 고공농성을 비롯해서 수많은 탄압에 맞서 싸우고, 개인적인 일상을 포기하고 열사투쟁까지 하시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홍: 네, 가장 힘든 건 마음이 불편하다는 거예요. 정말 힘들지만 왜 싸우는가, 왜 죽지 못하고 있는가. 그 이유는 굴다리 농성할 때를 다시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수많은 조합원들이 전화로 협박 아닌 협박을 해요. “형, 제가 죽겠습니다. 오늘 나 죽을게요. 제발 내려와요”라고 하면서. 이런 상황에 내가 죽게 되면 이 사람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지금도 그래요. 현장 조합원들 안 힘든 사람 없어요. 중증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도 많고요. 대표성을 가진 사람들은 더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는데요. 조합원들의 존재가 저를 다른 마음 먹지 못하도록, 더 단단하게 여며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힘들어하는 사람들보다 조금 더 밝게 지내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고요.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정말 억울하잖아요. 정말 억울해서라도 멈출 수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정말 어떤 잘못을 했으면 확실히 인정을 하겠죠. 그런데 시나리오 짜서 궁지로, 사지로 계속해서 몰아가고, 잘못이 없는데 범죄자를 만드니까 억울해요 정말. 법정에서 사측이 얘기하는 걸 들어보면 ‘우리는 대한민국에 존재하면 안 되는 인간들인가’하는 생각이 들어요. 시청에서는 ‘우리는 쓰레기봉투 안에 들어가야 비닐 한 조각 덮고 잘 수 있는 그런 존재인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말 너무 억울하잖아요. 분명히 나도 부모님이 아끼는 자식이고 인간이고 지금도 숨을 쉬고 활동하고 있고 여기서 대화하고 있는데, 회사에 가면 떠들지 말라고 하고, 억울하면 증거를 찾아오라고 하고, 만들어오라고 하고 그런 얘기만 하고 있어요. 지금껏 사측 관리자는 누구 하나 처벌 받은 사람이 없어요. 진실이 드러날 때까지는 포기하지 말고 싸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저희 반올림도 포기할 수 없어서 지금 9년째 싸우고 있어요. 삼성반도체 백혈병의 진실이 한 아버지의 숭고한 노력 덕분에 조금씩 드러났어요. 언론도 외면을 했지만, 피해자 한 명 만나려고 발품 팔고 유인물 돌리고 현수막 걸면서 알렸더니 ‘나도 백혈병에 걸렸다. 뇌종양에 걸렸다’ 이렇게 얘기하시는 분들이 223명이였어요. 그 중에서 76명이 이미 세상을 떠나셨고요.
홍 선생님은 몇 달 전에 성공회대에서 학생 초청으로 뵈었죠. 제가 그 때 부럽다고 말씀을 드린 적이 있었는데, 후회합니다. 삼성은 노동조합이 없어서 비정규직 실태도, 돌아가신 분들도 잘 알 수가 없어요. 하지만 유성기업은 노동조합 만들어서 탄압을 받고 있지만, 그래도 같이 투쟁하고 있어서 부럽다고 얘기했었죠. 지금 그 말씀을 드렸던 걸 많이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삼성은 농성한 지 195일째가 됐는데, 지금 사과 한 마디, 보상도 제대로 하지 않았어요. 온라인, 페이스북으로 유성기업 투쟁에 대해서 많이 알리고 연대하고픈 마음이 커요. 어떻게 보면 같은 문제인 것 같아요. 삼성과 현대가 노동권을 짓밟고 인정하지 않는 상황, 한국 사회의 절대 다수인 노동자들이 어떻게 힘들어지고 있는지, 우리가 좀 더 많이 연대하고 제대로 알려서 억울함을 풀고 더 이상 억울한 게 아니라 인간답게 제대로 대접 받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얘기. 유성기업 투쟁에 대해 연대해달라는 얘기도 좋고, 삼성 직업병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해서 피해자 가족들이나 반올림 활동가들이나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
#숨기려는 자와 들추려는 자의 싸움
홍: 저는 반올림을 노동안전부장할 때부터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서 알고 있었어요. 그때 보면 항상 삼성도, 유성도 진실을 은폐하고 숨기려는 모습을 많이 비추더라고요. 인정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게 도리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마치 아닌 것처럼 자기 잘못을 덮어요. 그러다 나중에 수습할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행태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유성은 지금 노조파괴 시나리오든 뭐든 깔끔하게 인정하면 되는데, 한 번 아니라고 하니까 계속 아니라고밖에 할 수 없는 거잖아요. 어용노조가 노조가 아니라는 판결이 나왔고, 재정에서도 노조 파괴는 사측에서 일정 부분 조종한 정황이 있다는 얘기가 나왔고요.
삼성 직업병 문제도 노동자들이 사내에서 정확히 조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강제적으로라도 더 이상 죽지 않도록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봐요.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아서 ‘진실’에 대해 많이 거론하죠. 그런데 감추려고 하는 진실이 너무 크기 때문에 진실을 들춰내려는 노력이 있는 것이겠죠. 숨기려는 자와 드러내려는 자의 지난한 싸움이 계속되고 있네요.
정말 더러운 것이 있어요. 이 나라는 자본과 노동자, 돈을 가진 자와 없는 자에 대해 편을 들어주는 쪽이 너무 명확해요. 그걸 깨달아가는 시대가 됐으면 좋겠어요.
한광호 동지가 3월 17일 주검으로 발견된 지 이제 33일이 됐어요. 앞으로 그가 33일 더 차가운 냉동고에 있어야 할지… 아직 기약이 없어요. 사측이 전혀 반성하지도 않고 있고요. 애도 표현 한마디 하지 않았고요. 그 동지가 차가운 곳에서 계속 있을 걸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하고 화가 치밀어올라요. 저희 힘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이미 다 아실 거라고 생각해요.
‘조그만 힘’, 우리가 할 수 있는 손가락 운동으로 SNS에서 얘기하고 거론하고 언론에 나오게 한다면 유성기업은 부담이 될 거에요. 유성기업이 검색순위에 뜨기만해도 부담이 될 거란 말이죠. 저는 한광호 동지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 동지가 ‘그래 잘한다, 그래 승리했다, 고맙다’라고 하면서 하늘로 갈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이: 33일 전 세상을 떠난 유성기업 한광호 열사가 마음 편히 눈감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서울시청 한 가운데서 공권력에 맞서서 투쟁하고 계신 홍종인 동지 모셨습니다. 마음 모아 주실 거죠? 더 많이 알려서 이 투쟁 너무 길어지지 않도록 연대하겠습니다. 저희도 지금 이곳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한 게 작년 10월 7일이에요. 삼성이 끝까지 버티는 바람에,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아서 농성이 길어지고 있는데, 힘 잃지 않고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오는 4월 22일은 농성 200일입니다. 반올림이 농성 200일을 맞아 문화제를 합니다. 이 소식도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유성기업 투쟁 동지께서 말씀하러 오신다고 하니 평소보다 많은 분들이 오셨어요. 인기가 많으세요. 이 문제에 대해서 지지하고 공감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네요. 지지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