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들장애인야학 활동가, 한명희
사회 : 이종란
종) 오늘은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는 한명희 선생님을 모셨다. 이 자리에는 반올림 농성을 응원하기 위해 공공운수 노조에서도 와 계신다.
한명희 선생님은 우리 농성장에 여러 번 오셔서 숙박도 하셨는데, 궁금했다. 어떻게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게 되었는지, 노들야학에는 어떻게 가게 되었는지
명) 중증장애인 활동보조 서비스 제도라는 것이 있는데, 원래는 노들야학에 다니는 분의 활동보조인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연히 노들야학이라는 공간을 알게 되었고, 노들야학에 교사로 자원 활동을 하면서 결국 상근활동까지 하게 된 거다. 성인 장애인들의 교육율이 매우 낮은데, 노들야학이라는 곳은 그런 성인 장애인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공간이다. 처음에는 활동보조인으로 드나들며 굉장히 매력적인 곳이란 생각을 했었고, 일상에서 많이 만나지 못하는 중증장애인들을 많이 뵈면서 신기한 기분도 들고 그랬다.
종) 지금 가르치는 과목은 무엇인지?
명) 정해져있는 교과 과목이 있는 것은 아니고 학기 끝날 때마다 수련회를 가서 한 학기 수업을 평가하고 정한다. 예전에는 초등문예 과목을 가르쳤는데, 지금은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종) 전장연(전국장애인철폐연대)에서 오래 활동한 박경석 선생님을 이곳에 모셔서 말씀을 들으며 감동을 많이 받았었다. 그때 알게 된 것이 장애인이 없는 게 아니라 집에서 나오질 못해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 장애인들이 자존감을 갖고 살기에는 우리 사회가 참 어렵고 차가운 곳이라는 것. 그런 사회에서 장애인도 존중받아야 할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고, 또 그것을 위해 싸우고 그 과정에서 구속도 되었던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감동을 많이 받았었다. 그런데도 박경석 선생님을 포함해서 함께 활동하는 분들을 만나면 매우 밝고 재미있으시다.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는 마음도 늘 있으신 것 같고. 노들야학의 분위기는 어떠한지?
명) 노들야학은 수요일은 제외하고 월, 화, 목, 금 매주 저녁 수업이 진행된다. 기초 한글 교육부터 하는데, 교육 받는 분들이 원래 어디 계셨었는가 하면 장애인 수용시설이라는 대규모 시설에 있었거나 집에만 있었던 재가 장애인이었거나 그랬다. 자신의 유일한 친구가 라디오라는 분, 집에서 천장만 보고 살았다는 분 .. 그런 삶을 살아 오셨던 분들이 노들야학으로 온다. 그래서 예전에는 야학이 쉴수 없었다. 방학도 없었다. 야학 수업이 없으면 이분들이 나오질 못하니까. 지금은 방학도 있고, 공부하시는 분들이 방학 언제냐 먼저 묻기도 하고 그러시지만...
처음 노들야학에 오시면 좀 기이한 광경을 많이 보시게 된다. 좀 장난스럽기도 하고, 시끌시끌하기도 하다. 수업이 한창 진행중인데 장애인 콜택시가 도착해서 가신다거나.. 좀 색다른 상황들이 많이 벌어진다. 틀에 박히지 않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있다.
예전에는 학생운동을 하면서 자본주의와 싸우고 신자유주의 철폐를 외치고 그랬는데, 장애인들을 만나면서 그 때의 언어들을 현장에서 어떻게 실현하고 전달할지가 고민이었다. 그런데 ‘푸른잔디회’라는 일본의 장애인단체가 외쳤던 구호 중에 “우리의 신체성이 자본주의를 부정한다”는 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러한 표현에 감명을 받기도 했다.
종) 언제부터 활동 하셨는지?
명) 상근활동을 한 것은 2007년부터다.
종) 장애인 인권운동 하시는 분들을 볼 때 마다 꼭 함께 만나고 싶은 우리 피해자가 있다. 삼성에서 일하다 뇌종양에 걸려서 1급 장애를 안고 살게 된 한혜경 씨인데, 나는 혜경 씨랑 노들 야학에 꼭 같이 가보자고 약속도 하고 그랬다.
최근에는 김호식 이라는 분이 얼마전에 돌아가셨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었다. 그 분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주신다면?
명) 호식 형은 야학에 학생으로 왔던게 15년 정도 되었다. 2001년부터 왔었다. 2010년부터는 현장 인문학이란 이름으로 수유너머의 고병권 선생님과 함께 책을 인문학 책을 읽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 이 분이 본인의 삶에서 가장 빛나는 시간 중 한 순간을 만났던 것 같다. 중증 장애인이 인문학, 철학을 공부하고 연구한다는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이 형이 루쉰, 니체의 책들을 매우 좋아했다. 카프카의 글을 패러디하여 국회의원들에게 보내는 글을 쓰기도 했다.
평소 술을 좋아해서 늘 두꺼비 25도 소주를 즐겼던 사람인데 ... 삶에 대한 외로움, 고독감이 있었던 것 같고, 그런 감정이 누적되고, 술로 일상이 많이 흔들리면서, 결국 심근경색으로 집에서 돌아가시게 되었다. 가족들도 경황이 없었는지 지난 목요일에 돌아가셨는데 토요일에야 소식을 듣고 야학에서는 월요일 날 함께 추모제를 지냈다.
종) 누구보다 삶을 뜨겁게 살았던 분인 것 같다. 책도 많이 읽고 열정적으로 살았던 그 분의 삶을 뒤늦게나마 기억하고 추모하겠다.
지난 번에 박경석 선생님과 인연이 되어 광화문 공동행동 농성장에도 갔었는데 그곳은 얼마나 되었나?
명) 지금 4년 째다.
종) 우리가 180일을 해도 몸이 많이 힘들고, 농성이라는게 정말 쉬운일이 아니라는 것을 많이 느끼는데... 특히 장애인 운동은 관심을 끌기도 더 어려운 운동인 것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 오랜 세월을 버텨낼 수 있었는지, 어떤 싸움을 하고 있는 건지 설명한다면?
명)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투쟁을 하고 있는 건데, 지금 두 제도 모두, 그에 따른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장애인들이 스스로의 가난과 장애 정도를 증명해야 한다. 줄 세워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거다. 우리는 그런 제도를 거부하며 더 이상 가난이나 장애가 한 개인이나 그 가족의 책임이 아니라 나라가 함께 책임져야 하는 문제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2012년 대선 때 후보들에게 엽서를 보내면서 시작된 농성이다.
4년 전에 처음 시작할 때는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우리는 농성을 하려면 장애인용 화장실이 있어야 하고 또 전동 휠체어를 충전할 수 있는 전기가 꼭 필요하다. 그래서 지하철 역사로 들어가게 되었다.
종) 우리 농성장도 괜찮은 편인데, 박경석 선생님이 자기 농성장 자랑을 많이 하셨다. 그래서 실제 가봤더니 침대도 있고 커튼도 있어 놀랐다.
산재사건을 대리하다 보면 장애등급 문제가 발생하고, 그렇게 등급을 매기는 것이 당연한 듯 느껴졌었는데, 지금 말씀을 들으니 잘 몰랐지만 중요한 문제가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또 궁금한게, 우리도 많은 피해자와 함께 하고 있고 긴 세월 함께 싸워온 피해자들도 여럿 계시지만, 사실 피해를 입은 분들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 피해사실을 알리고 변화를 위해 싸움에 나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장애인 분들이 집회현장 같은 곳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면 엄청 대차게 싸우고, 그래서 좀 무섭기도 했다. 처절하게 전투적으로 싸우는 모습들을 봤는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올까? 어떻게 이분들이 주체가 되었을까 궁금했다.
명) 지하철 선로로 내려간 이동권 투쟁도 있었고, 자기 몸과 같은 휠체어에서 내려 대교를 기어가면서 이동권을 주장하는 등 어쩌면 좀 과격해 보이는 투쟁들이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중증장애인 당사자들이 거리로 나와 무언가를 외칠 수 있는 수단들이 많지 않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취하는 수단들이 크게 보여 지는 상황들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여전히 장애인들을 불쌍한 사람들, 도와줘야 하는 사람들로만 대하는 분위기가 있다. 초창기에는 장애인들의 집회에 대응하는 경찰들도 그랬다. 권리의 주체로 보지 않고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거다. 그래서 우리가 ‘나쁜’ 장애인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길 가는데 돈을 쥐어 준다거나, 불쌍하게 바라보는 그런 상황들이 실제 많았다. 그래서 그런 얘기까지 나오게 된 거다.
장애인들이 집회하는데 나온 경찰들을 보면 예전에는 정말 어떻게 할지 잘 모르는 것 같았는데, 요즘에는 전동휠체어 배터리 빼는 법, 휠체어 동작 법을 배워서 나오는 것 같다. 모든 전동휠체어는 수동으로 전환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는데 그런 방법도 익혀서 나오는 것 같더라.
종) 서서히 마칠 시간이 되어간다. 어쨌건 우리 싸움을 응원하러 오셨으니, 삼성을 향한 쓴소리 혹은 반올림을 응원하는 얘기를 해주면 좋겠다.
명) 우리 학생들이 60명 정도 있는데, 농성하시는 동안 가능한 많은 학생들과 함께 이곳에 오겠다. 휠체어가 있으면 실제보다 훨씬 많아 보이는 효과가 있다. 조만간 날씨가 더워지기 전에 아주 많은 학생들과 이 공간을 뜨겁게 지키러 오겠다.
종 ) 다음 주 금요일 저녁 7시에 이곳에서 반올림 농성 200일 문화제를 할 계획이다. 우리가 벌써 200일이 되었다. 22일 19시에도 많은 분들이 오시면 좋겠다.
노들장애인야학 활동가, 한명희
사회 : 이종란
종) 오늘은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는 한명희 선생님을 모셨다. 이 자리에는 반올림 농성을 응원하기 위해 공공운수 노조에서도 와 계신다.
한명희 선생님은 우리 농성장에 여러 번 오셔서 숙박도 하셨는데, 궁금했다. 어떻게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게 되었는지, 노들야학에는 어떻게 가게 되었는지
명) 중증장애인 활동보조 서비스 제도라는 것이 있는데, 원래는 노들야학에 다니는 분의 활동보조인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연히 노들야학이라는 공간을 알게 되었고, 노들야학에 교사로 자원 활동을 하면서 결국 상근활동까지 하게 된 거다. 성인 장애인들의 교육율이 매우 낮은데, 노들야학이라는 곳은 그런 성인 장애인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공간이다. 처음에는 활동보조인으로 드나들며 굉장히 매력적인 곳이란 생각을 했었고, 일상에서 많이 만나지 못하는 중증장애인들을 많이 뵈면서 신기한 기분도 들고 그랬다.
종) 지금 가르치는 과목은 무엇인지?
명) 정해져있는 교과 과목이 있는 것은 아니고 학기 끝날 때마다 수련회를 가서 한 학기 수업을 평가하고 정한다. 예전에는 초등문예 과목을 가르쳤는데, 지금은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종) 전장연(전국장애인철폐연대)에서 오래 활동한 박경석 선생님을 이곳에 모셔서 말씀을 들으며 감동을 많이 받았었다. 그때 알게 된 것이 장애인이 없는 게 아니라 집에서 나오질 못해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 장애인들이 자존감을 갖고 살기에는 우리 사회가 참 어렵고 차가운 곳이라는 것. 그런 사회에서 장애인도 존중받아야 할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고, 또 그것을 위해 싸우고 그 과정에서 구속도 되었던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감동을 많이 받았었다. 그런데도 박경석 선생님을 포함해서 함께 활동하는 분들을 만나면 매우 밝고 재미있으시다.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는 마음도 늘 있으신 것 같고. 노들야학의 분위기는 어떠한지?
명) 노들야학은 수요일은 제외하고 월, 화, 목, 금 매주 저녁 수업이 진행된다. 기초 한글 교육부터 하는데, 교육 받는 분들이 원래 어디 계셨었는가 하면 장애인 수용시설이라는 대규모 시설에 있었거나 집에만 있었던 재가 장애인이었거나 그랬다. 자신의 유일한 친구가 라디오라는 분, 집에서 천장만 보고 살았다는 분 .. 그런 삶을 살아 오셨던 분들이 노들야학으로 온다. 그래서 예전에는 야학이 쉴수 없었다. 방학도 없었다. 야학 수업이 없으면 이분들이 나오질 못하니까. 지금은 방학도 있고, 공부하시는 분들이 방학 언제냐 먼저 묻기도 하고 그러시지만...
처음 노들야학에 오시면 좀 기이한 광경을 많이 보시게 된다. 좀 장난스럽기도 하고, 시끌시끌하기도 하다. 수업이 한창 진행중인데 장애인 콜택시가 도착해서 가신다거나.. 좀 색다른 상황들이 많이 벌어진다. 틀에 박히지 않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있다.
예전에는 학생운동을 하면서 자본주의와 싸우고 신자유주의 철폐를 외치고 그랬는데, 장애인들을 만나면서 그 때의 언어들을 현장에서 어떻게 실현하고 전달할지가 고민이었다. 그런데 ‘푸른잔디회’라는 일본의 장애인단체가 외쳤던 구호 중에 “우리의 신체성이 자본주의를 부정한다”는 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러한 표현에 감명을 받기도 했다.
종) 언제부터 활동 하셨는지?
명) 상근활동을 한 것은 2007년부터다.
종) 장애인 인권운동 하시는 분들을 볼 때 마다 꼭 함께 만나고 싶은 우리 피해자가 있다. 삼성에서 일하다 뇌종양에 걸려서 1급 장애를 안고 살게 된 한혜경 씨인데, 나는 혜경 씨랑 노들 야학에 꼭 같이 가보자고 약속도 하고 그랬다.
최근에는 김호식 이라는 분이 얼마전에 돌아가셨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었다. 그 분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주신다면?
명) 호식 형은 야학에 학생으로 왔던게 15년 정도 되었다. 2001년부터 왔었다. 2010년부터는 현장 인문학이란 이름으로 수유너머의 고병권 선생님과 함께 책을 인문학 책을 읽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 이 분이 본인의 삶에서 가장 빛나는 시간 중 한 순간을 만났던 것 같다. 중증 장애인이 인문학, 철학을 공부하고 연구한다는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이 형이 루쉰, 니체의 책들을 매우 좋아했다. 카프카의 글을 패러디하여 국회의원들에게 보내는 글을 쓰기도 했다.
평소 술을 좋아해서 늘 두꺼비 25도 소주를 즐겼던 사람인데 ... 삶에 대한 외로움, 고독감이 있었던 것 같고, 그런 감정이 누적되고, 술로 일상이 많이 흔들리면서, 결국 심근경색으로 집에서 돌아가시게 되었다. 가족들도 경황이 없었는지 지난 목요일에 돌아가셨는데 토요일에야 소식을 듣고 야학에서는 월요일 날 함께 추모제를 지냈다.
종) 누구보다 삶을 뜨겁게 살았던 분인 것 같다. 책도 많이 읽고 열정적으로 살았던 그 분의 삶을 뒤늦게나마 기억하고 추모하겠다.
지난 번에 박경석 선생님과 인연이 되어 광화문 공동행동 농성장에도 갔었는데 그곳은 얼마나 되었나?
명) 지금 4년 째다.
종) 우리가 180일을 해도 몸이 많이 힘들고, 농성이라는게 정말 쉬운일이 아니라는 것을 많이 느끼는데... 특히 장애인 운동은 관심을 끌기도 더 어려운 운동인 것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 오랜 세월을 버텨낼 수 있었는지, 어떤 싸움을 하고 있는 건지 설명한다면?
명)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투쟁을 하고 있는 건데, 지금 두 제도 모두, 그에 따른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장애인들이 스스로의 가난과 장애 정도를 증명해야 한다. 줄 세워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거다. 우리는 그런 제도를 거부하며 더 이상 가난이나 장애가 한 개인이나 그 가족의 책임이 아니라 나라가 함께 책임져야 하는 문제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2012년 대선 때 후보들에게 엽서를 보내면서 시작된 농성이다.
4년 전에 처음 시작할 때는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우리는 농성을 하려면 장애인용 화장실이 있어야 하고 또 전동 휠체어를 충전할 수 있는 전기가 꼭 필요하다. 그래서 지하철 역사로 들어가게 되었다.
종) 우리 농성장도 괜찮은 편인데, 박경석 선생님이 자기 농성장 자랑을 많이 하셨다. 그래서 실제 가봤더니 침대도 있고 커튼도 있어 놀랐다.
산재사건을 대리하다 보면 장애등급 문제가 발생하고, 그렇게 등급을 매기는 것이 당연한 듯 느껴졌었는데, 지금 말씀을 들으니 잘 몰랐지만 중요한 문제가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또 궁금한게, 우리도 많은 피해자와 함께 하고 있고 긴 세월 함께 싸워온 피해자들도 여럿 계시지만, 사실 피해를 입은 분들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 피해사실을 알리고 변화를 위해 싸움에 나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장애인 분들이 집회현장 같은 곳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면 엄청 대차게 싸우고, 그래서 좀 무섭기도 했다. 처절하게 전투적으로 싸우는 모습들을 봤는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올까? 어떻게 이분들이 주체가 되었을까 궁금했다.
명) 지하철 선로로 내려간 이동권 투쟁도 있었고, 자기 몸과 같은 휠체어에서 내려 대교를 기어가면서 이동권을 주장하는 등 어쩌면 좀 과격해 보이는 투쟁들이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중증장애인 당사자들이 거리로 나와 무언가를 외칠 수 있는 수단들이 많지 않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취하는 수단들이 크게 보여 지는 상황들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여전히 장애인들을 불쌍한 사람들, 도와줘야 하는 사람들로만 대하는 분위기가 있다. 초창기에는 장애인들의 집회에 대응하는 경찰들도 그랬다. 권리의 주체로 보지 않고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거다. 그래서 우리가 ‘나쁜’ 장애인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길 가는데 돈을 쥐어 준다거나, 불쌍하게 바라보는 그런 상황들이 실제 많았다. 그래서 그런 얘기까지 나오게 된 거다.
장애인들이 집회하는데 나온 경찰들을 보면 예전에는 정말 어떻게 할지 잘 모르는 것 같았는데, 요즘에는 전동휠체어 배터리 빼는 법, 휠체어 동작 법을 배워서 나오는 것 같다. 모든 전동휠체어는 수동으로 전환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는데 그런 방법도 익혀서 나오는 것 같더라.
종) 서서히 마칠 시간이 되어간다. 어쨌건 우리 싸움을 응원하러 오셨으니, 삼성을 향한 쓴소리 혹은 반올림을 응원하는 얘기를 해주면 좋겠다.
명) 우리 학생들이 60명 정도 있는데, 농성하시는 동안 가능한 많은 학생들과 함께 이곳에 오겠다. 휠체어가 있으면 실제보다 훨씬 많아 보이는 효과가 있다. 조만간 날씨가 더워지기 전에 아주 많은 학생들과 이 공간을 뜨겁게 지키러 오겠다.
종 ) 다음 주 금요일 저녁 7시에 이곳에서 반올림 농성 200일 문화제를 할 계획이다. 우리가 벌써 200일이 되었다. 22일 19시에도 많은 분들이 오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