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알림 [2016.07.02]반올림 노숙농성 267일차 (6월29일) 이어말하기 -페미니스트 손희정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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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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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올림 노숙농성 267일차 (6월29일) 이어말하기

- 이야기 손님 : 연세대학교 젠더연구소 연구원, 페미니스트 손희정 선생님

- 사회: 반올림 권영은

- 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hZQ9Jb085cA&index=3&list=PL68l6l0ykxTXlpDY1-wm7S4KrudfG9y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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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정 : 안녕하세요. 페미니스트 손희정입니다.

오늘 오셔서 저에게 말걸어 주시면 제가 반올림 뱃지 드린다고 했는데 아직 한 분도 안 오셨어요. 제가 뱃지 30개 샀는데~



권영은 : 저희가 반올림 뱃지를 만들었는데요. 방진복소녀. 클린룸에서 일하는 방진복소녀를 만화가분께서 그려주신건데요. 상당히 예쁘죠? 가방에, 옷에 많은 분들이 하고 다니시면서, 삼성 직업병문제를 많은분들이 알려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 가져봅니다. 그러면, 일단 소개부터 다시 부탁드릴께요. 젠더연구소, 페미니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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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정 : 네, 저는 학교에서 영화학을 전공했구요. 그래서 영화를 비롯한 다양한 대중문화를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비평하고 글쓰고 얘기하고, 그리고 장동민이 말하는 식으로 표현하자면 말하고 생각하고 떠들고 설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초대해주셔서 사실 저 너무 오고싶었었는데, 제가 워낙 말하는 걸 좋아해서요~ 다행히 시간이 잘 맞아서 드디어 올 수 있게 되었고, 정말 반갑습니다.



권영은 : 그러면, 페미니스트란 대체 무엇일지 다들 알고는 있지만, 정확히는 또 잘 모르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오늘 이어말하기를 위해서 서점에서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책을 샀지만, 대체 페미니스트가 뭐에요?



손희정 : 어우, 이렇게 거대한 질문을 하시리라곤 생각 못했는데요. 사실 페미니스트란 건 다양하고 여러 가지 목소리들을 가지고 있어서. 요즘 제가 대중강연을 갔을 때 ‘페미니즘은 도대체 뭐냐’라는 질문을 하시면, 조각보 같은 것이라고 말씀을 드리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다양한 생각들과 말들이 조각보가 만들어지듯이 알록달록 모여서 어떤 인식론을 만드는 것. 그걸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랬을 때 아주 기본적으로는 이 사회가 성을 통해서 차이를 구성하고, 그 차이가 차별로 만들잖아요?


그것에 문제제기를 해서 모두가 평등한 세상, 더불어서 자연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 그런 지향을 갖는 것이 페미니즘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권영은 : 제가 여쭤보는 것도 사실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다들 오해를 하시더라구요. 여성 우월? 내지는 남성의 권리를 짓밟고 여성의 권리를 외치는 거 아니야? 라고 오해를 하시기 때문에, 사실은 남녀의 평등을 이야기한다는 거죠. 그걸 언급했으면 좋겠다 싶어서 말씀드렸구요.



손희정 : 계속 강조하는 건데, 저희 페미니스트들은 남성들과 싸우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한편으로는 남성들과 동지가 되고, 동료가 되어서.. 남성여성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이 조화롭게 사는 세상을 꿈꾸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하기에는, 이 세상이 너무 기울어져 있어서 아직도 여전히 남성들이 훨씬 더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고, 물론 그것 때문에 많은 부담을 가지고 있기도 하겠지만.. 권력을 가지고 기울어진 세상 안에서 여성들이 평등한 삶을 누릴 수 없는 조건들이 너무 많이 만들어져 있어서, 거기에 대해서 문제제기하고 이야기하고 떠들면, 사실은 안 들리던 목소리였기 때문에 너무 시끄럽게 들리는 거죠.


그리고 기울어져 있는 판을 이렇게 끌어올리자고 얘기하는 이 변화라는 게 너무 크게 느껴진다는 거에요. 그래서 이걸 불편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신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페미니즘은 남성과 싸우자는 것은 아닙니다.



권영은 : 그렇군요. 저희도 삼성하고 안 싸우고 싶은데~^^



손희정 : 그건 좀 다르죠~ 삼성하고는 싸워야 하는 게 맞는 것 같구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페미니즘이 모든 남성과 싸워야 하는 건 아니지만, 저는 때때로는 어떤 남성하고는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구요. 자기들이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여성들이 목소리 낼 때 시끄럽다고 손가락질하거나 여성들에게 물리적 폭력을 가하고, 혹은 여성들이 제도적으로 차별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하곤 물론 싸워야 하죠. 그런 싸움을 하다보면, 때때로 생물학적으로 남성이 아닌 사람들하고도 싸워야 할 때가 있어요. 그런 식의 차별적인 사고방식을 내면화한 여성이 있거든요. 그게 물론 남성이 다수이기 때문에...



그래서 저는 그냥 평화를 얘기하는 건, 삼성하고 싸우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게 평화롭게 해결하자 라고 얘기할 때.. 그 평화라고 하는 건 사실은 힘을 가진 사람들이 봤을 때 평화인 것 같아요. 정말로 어떤 모두가 평등하다고 하는 세상에서의 평화라고 하는 것은, 힘을 가지지못했던 사람들이 보이게 드러내고 들리지 않던 목소리를 들리게 함으로써, 시끄럽게 하고 문제를 일으키고 때로는 치열하게 발성되게 함으로써 일으키는 변화라고 생각해요.



권영은 : 정정하겠습니다. 삼성하고는 저희가 싸워야 겠네요. 제가 너무 잘못했네요.




손희정 : 오늘 이어말하기 하러 오기 전에, 제가 사실은 삼성홍보관 안에 들어가서 삼성 로고 앞에서 사진도 찍어봤어요.



권영은 : 아 들어가보셨어요 벌써? 이제 못 들어가실텐데..



손희정 : 그 얘길 들어가지고... 얼굴이 드러나면 못 들어간다고 해서, 워낙 유명한 건물이니까 한 번 들어가보고 화장실도 사용해보고 그러고 왔습니다.


권영은 : 그러시군요. 저희가 강남역 8번 출구 앞에서 이렇게 267일째 노숙농성하고 있잖아요. 아시다시피, 강남역이 어느 순간 추모의 거리가 되어버렸어요. 그래서, 맞은편 강남역 10번 출구 이야기를 꼭 한 번 듣고 싶어서 모시긴 했는데요. 강남역 10번 출구 얘기를 해주시면 어떨까 싶어요. 어떻게 이 문제에 대해서 여성혐오라고 하는 문제설정의 방향이 있는 거잖아요?



손희정 : 처음에 5월17일을 저는 5.17페미사이드라고 부르는데요.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 혹은 가부장제 사회 아래서 펼쳐진 여성살해, 이런 것을 페미사이드라고 지칭하는데, 5월17일에 있었던 강남역 10번출구의 여성살해는 페미사이드이고, 이것은 한 명의 어떤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남성이 일으킨 돌출적인 사건이었다기 보다는, 이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가 야기한 어떤 사건인 거죠.



하나의 사례일 뿐만 아니라, 그게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생각을 하고, 우리 사회 여성들이 정확하게 구조가 만들어낸 여성에 대한 살해라는 것을 인식했던 중요한 계기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 살해사건 자체가 여성에 대한 살해사건이었던 거죠. 왜냐면, 이 사회에서 적응하기가 어려웠던 기층 남성이 여성들이 끊임없이 자기를 무시했다라고 생각을 했고, 이 불안과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 희생자를 노렸었던 것인데.. 그 희생자를 노릴 때도 정확하게 여성을 노렸었던 거죠. 사실은 이 남성이 노래방 옆에 있는 화장실에 흉기를 들고 숨어 들어가서 한 시간 정도 기다렸다고 그러잖아요. 6명의 남성은 그냥 흘려보내고 처음으로 들어온 1명의 여성을 타깃으로 살해한 거죠. 이 살해사건 자체도 실제로는 여성을 타깃으로 했다는 점에서 여성혐오적인데, 더 중요한 건 뭐냐면 이 사람이 체포되었을 때 되게 아무렇지도 않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텐데 자기가 이 이유를 말하면 이해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거나, 아니면 소통이 될 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여성들이 나를 무시했어’라는 이유를 선택했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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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쩌면 이 범인은 여러 가지 이유를 말했을텐데, 그 중에서 이 범인을 취조했던 형사들이 듣기에 그럴듯한 이유로 ‘여성들이 나를 무시했다’는 것을 골랐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항상 얘기하는 건, 이 남성이 사실 여성에게만 무시를 당했겠느냐, 아니면 사실은 일상적으로 생활이 좀 안되는 분이었다고 제보가 나오고 있고, 아마 살면서 여러 가지 경험들을 하셨을건데, 그랬을 때 특히 여성들이 나를 무시했었다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라는 건, 사실은 무시할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이 나를 무시했다라고 하는 분노이기도 한 거거든요. 남성들한테 무시당한 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었지만, 감히 여자인 네가? 라는 생각이 있었다라는 거에요. 그 층에서 또 여성혐오라는 인식이 발견되는거죠.



이 사건이 보도가 됐을 때, 많은 여성 대중들이 아 이게 여성혐오적이라는 것을 경험 안에서 알 수 있었던 거에요. 이 때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겪었던 다양한 성 차별이나 여성이기 때문에 겪었던 성적 폭력 같은 것들을 기억 속에서 이게 여성이기 때문에 내가 당했다라는 경험을 집합적으로 캐치할 수 있었던 거고, 그러면서 사실은 어떻게 보면.. 그랬기 때문에, 사실은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라는 말이 나올 수 있었던 거죠.



여자라면 누구나 당할 수 있었던 일인데, 내가 우연히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여기까지만 봐도 사실 여성살해 사건이라고 할 수 있었을 텐데, 이게 더 여성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언론의 보도행태였던 거죠. 늘 흔하게 있었던 것을 너무 잘 아실텐데, 이런 식의 살해사건이 터지면 일단 묻지마라고 라벨링을 하고, 그 다음에는 이 남성이 살해를 저지를 수 밖에 없었던 이야기가 부여되죠.




권영은 : 아 지난 번 강남역 10번 출구 문제에 대해서 여기에 무슨 방송차량들이 쫘악 다 나와있었어요. 저희 강남역 8번출구에서 이렇게 200일 넘게 노숙농성하면서 정말 한 번도 보지 못한 방송차량들이 그 곳에서 추모의 장면을 계속 찍었었는데, 저는 그것을 언론이 관심을 표한다는 게 참 다행이다. 언론이 외면하지 않는구나 라는 생각이었는데, 또다른 문제를 만들었던 거군요?



손희정 : 사실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처음 애초에 보도를 할 때는 이 남성이 꿈이 목사가 되고 싶었고, 꿈이 있었지만 좌절을 당했고 여성들이 그를 무시했고.. 라는 식으로 이 남성한테는 끊임없이 이야기로서 부여되고, 사실은 이야기가 부여된다는 건 이 사회의 주체가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거든요. 근데 아주 정확하게 피해여성에겐 아무런 이야기가 주어지지 않는거죠. 그 여성에겐 어떤 꿈이 있었고, 그 여성이 왜 그 날 거기에 있었으며 왜 이런 피해를 당했는지 그것이 없이 그냥 또 변사체 여성.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되고, 사실은 이런 살해사건이 터지면 언론이 이미 사건들을 포르노적으로 소비하면서, 남성에게는 이야기를 여성에게는 그냥 말하자면 언론매체에 피해당한 몸뚱이로 던져놓는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권영은 : 심지어 그런 이야기도 있었죠. 왜 밤에 노래방을 가느냐. 왜 밤에 혼자서 화장실을 가느냐.



손희정 : 그러니까 여성들이 손잡고 가는거죠. 근데 처음에 보도가 나왔을 땐, 이게 말하자면 성적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하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인식이 그런건데... 처음에는 말하자면 성매매를 제공하는 노동자인 것처럼 보도가 나왔었구요, 그러니까 훨씬 더 비난이 쉽게 갔겠죠? 그런 여자니까 그런 일도 당할 법하다.. 그러다가 금방 정정이 되어서, 그 다음엔 왜 밤늦게 여자가 혼자 돌아다니느냐, 그 다음엔 굉장히 성실한 노동자였다는 게 밝혀지고 난 다음에는 남자친구가 아닌 다른 남성이란 술을 마시고 있었단 게 또 논란이 되고. 이런 식으로 계속 여자한테는 이런 피해를 당할 수 밖에 없었다라는 식으로 어떤 이유들이 달라붙는 거죠. 그런데 만약에, 이것에 대해서 여성대중들이 길거리에 나와서 10번 출구에 추모 포스트잇을 붙이고, 또 온라인에서 문제제기를 하고 이건 여성혐오적이다라고 해서 떠들지 않았으면, 분명히 그 여성은 화장실에서 칼을 맞을만한 여자로 낙인찍힌 채로, 화장실 변사체녀 이런식으로 이름을 붙이고 역사의 저 편으로 사라졌었겠죠.



정말 중요한 건 뭐냐면, 대한민국의 여성대중이 더 이상 이런 식의 폭력을 간과하지 않겠다. 여자이기 때문에 죽는 일을 멈추고 싶다. 우리에게 아무 잘못이 없다. 그리고 언론은 반성하라.



그리고 이것은 말하자면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 조현병이 있는 특정한 남성이 저지른 사건이다...라고 얘기하고 국가와 공권력이 넘어가려고 했을 때, 여성운동 진영 뿐만 아니라 여성대중들과 함께 또 장애인운동이 연대를 하면서, 이렇게 이렇게 장애인혐오로 가면 안 된다고 제동을 걸었죠. 이건 가부장적 사회의 문제이고 우리가 이 구조적인 문제를 함께 바꿔가자라고 나서지 않으면, 이런 사건이 이전에도 있었고 오늘도 일어나고, 앞으로 내일도 일어나게 될 것이다, 라는 인식의 전환이 저는 5.17페미사이드라고 많은 사람들이 부르고 있는 이 사건을 통해서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좀 들어요.



그래서, 가끔 강연가면 그런 얘길 많이 하는데, 지금은 이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을 5.17페미사이드 라는 되게 우울한 명명으로 부르고 여성이 살해당했다, 라고 부르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면 이 사건은 분명히 한국사회에서 다른 계기들을 만들어냈던 것 같거든요. 그러면, 5.17페미사이드가 아니라, 예컨대 5.17 여성봉기. 이런 식의 새로운 명명이 시작되지 않을까. 그런 변화의 기로에 우리가 서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을 좀 해봤습니다.



권영은 : 저도 강남역 10번 출구, 그렇게 부르기도 죄송한 말인데 저도 이제 5.17 페미사이드라고 명명해야겠네요. 이걸 계기로 해서, 아 내 안의 남성성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됐고, 언론을 통해서 별 문제의식 없이 본 것들이 또 하나의 차별을 내가 만들 수도 있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 곳에 저희가 항상 거리에 있다보니까, 또 저희도 강남역 화장실을 가야하고 밤에 지켜야 하기 때문에 위험에 노출되는데, 계속 말하지 못했던 거죠. 여성이면 더 불편한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그야말로 감수해야 하는 걸로... 그리고 이것이 왜 위험해야 하는지 우리가 생각하고 해결에 나서야 하는구나. 그냥 이곳에서 반도체 여성노동자들의 문제제기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인 감각들이 깨어나는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오늘 자랑하자면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책을 샀어요.



손희정 : 이거 완전 베스트셀러에요.



권영은 : 굉장히 여러 권의 책이 나왔더라구요. 요즘에는 보니까 이 책도, 강남역 사건을 계기로 책도 많이 소개되고, 선생님은 또 영화를 많이 소개하시기도 하고 그래서 관심이 꽤나 높아진 것 같아요. 이 책, 제가 갖고 있긴 하지만요, 선생님도 아시죠? 되게 재밌어 보이더라구요. 약간 다른 책에 비해서 이론서 같지 않고, 자기 얘기를 하는 것 같아요.

저도 참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렇게 골라왔습니다. 선생님 앞에서 자랑하려구요^^



손희정 : 이게 되게 재미있고 중요한 게 뭐냐면...사실은 강남역, 5.17 페미사이드로 훨씬 더 관심이 높아진 건 맞는 거 같아요. 근데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 여성대중들이 이건 가부장적 사회구조로 인한 여성의 살해다. 5월17일날 이야기를 가지고 거리로 나오신 거잖아요. 그동안 페미니즘의 인식론이라고 하는 것, 사고체계라고 하는 게 꾸준히 쌓여왔었던 같거든요. 그 중에서도 저는 재밌는 계기로 생각하는 건, 2015년부터 시작되었던 트위터, 해시태그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이런 트위터 상에서의 운동부터 시작해서, 그리고 메갈리아가 소라넷을 폐쇄한다거나 장동민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 이런 대중운동의 흐름 안에서 여성들이 드디어 이제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걸 인식하고 말할 수 있게 된 거죠.


그래서 그런 흐름들을 생각해보면, 2015년부터 16년까지 사실은 요즘 인기있게 소통되는 구호 중 하나가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거든요. 저는 굉장히 고민이 많아요.


돈이 된다고 얘기를 하는 것이 정말로 페미니즘이 가야할 길에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중요한 건 뭐냐면,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는 말은 한국사회에서 그만큼 페미니즘의 관심사를 다루고 성평등한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더 많은 대중들을 만난다라는 의미인것 같아요. 그래서, 그 구호안에 생각을 해보면 2015년 중후반부터 페미니즘 관련 도서들이 많이 팔리기 시작했거든요.



예컨대 정희진 선생님의 <페미니즘의 도전>이라던가, 베른스의 <행복한 페미니즘> 그리고 제일 많이 팔린 것 중의 하나가 레베카 솔릿의 <남자들은 나를 자꾸 가르치려 든다> Men‘s plain이라는 용어를 굉장히 유행시켰던 책이거든요. 그 흐름 안에 지금 <나쁜 페미니스트>랑 또 한권이 에멀린 펭커스트라고, 20세기 초에 영국 성평등 운동을 했었던.. 지금 개봉 중인 <서프라젝트>라는 영화의 원작,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 그 책도 되게 잘 나가고 있어요. 많이들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권영은 : 그래서 저희도 농성장에서 책읽기모임하면 좋을 것 같아요. 강남역에서 이런 여성문제를 이야기하기에 어찌 보면 참 적합한 공간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왜냐하면, 이 곳이 여성의 패션이라던가 외모에 대해서 유독 신경을 많이 쓰는 공간이라.. 이 곳에서 반올림 활동가 중에 한 분이 벌에 쏘여서 피부과를 갔다가 깜짝 놀랐대요. 그 피부과가 우리가 아는 피부과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 거죠. 강남역 일대 4~5군데 피부과를 다니면서 생경한 장면을 본 거에요. 굉장히 많은 여성들이 미용 목적으로 피부과를 찾았는데, 본인은 정말 치료를 하기 위해 갔다가, 아 이 강남이라는 곳이 이런 데로구나..



손희정 : 지금 이렇게 봐도 몇 개의 성형외과들이 눈에 들어오네요.



권영은 : 맞아요. 저기 보이는 건물들도 다 성형외과 건물들이죠. 제가 알기로는 곳곳에 또 테라피 하는 곳도 되게 많은 것 같아요.


(경찰이 소음 야기로 민원 신고가 접수되어서 이어말하기 현장에 출동, 잠시 이야기가 중단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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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은 : 저희가 오늘 계속 신고가 들어왔다고 하는데, 이상하네요. 삼성 안에서 소음측정기도 가끔 나오구요. 오늘 이야기가 삼성에게 더 불편하게 들렸나? 왜그러지? 저희가 여성문제를 이야기하다보니까, 저도 궁금한 점이 생겨서요.



삼성에서 직업병 암에 걸려서 제보한 피해자가 200명이 넘고, 그 가운데 76분이 돌아가셔서 저희가 이렇게 고무신에 꽃을 심어서 이곳에 기리고 있는 거죠. 삼성이 사과를 해야 한다, 투명하게 보상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왜 일방적으로 이 문제가 끝났다고 이야기하느냐 이렇게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데요. 그 피해자 중에는 대부분이 2,30대 여성 분이에요. 아무래도 삼성 반도체에서 쓰는 화학물질이 유해한 독성물질이다보니. 여성의 몸에 생식독성을 일으켜서, 생리불순은 정말 너무나 흔한 그 분들이 앓고 있고 피부질환이라든가, 유산, 불임 그런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여성노동자로서 문제를 제기하거나 이런게 상당히 취약한 게 있어요. 그 분들이 공장에 들어간 이후로 예전처럼 가족의 생계를 잇기 위해서, 남동생이나 오빠의 등록금을 대기 위해서라든지, 그런 이유들이 있어요. 그리고 현재에도 그런 문제제기가 어려운 이유도, 가족들이 알까봐, 아니면 내 자녀가 그로 인해 불이익을 당할까봐, 또는 삼성에 못 들어가면 어쩌지, 이런 이유도 간혹 있습니다. 그래서 여성노동자의 문제가 저는 이해가 되어야 한다고 보는데요, 어떻게 보시는지 이렇게 퉁쳐서 여쭤봐도 될까요?



손희정 : 저도 정확하게 여성노동자의 문제로 이 때까지 인식하고 있었고. 그리고 반올림에서 활동하시거나 삼성의 산재문제를 제기하실 때 목소리를 내거나, 우리에게 대표적인 이미지로 다가온 것이 여성노동자의 얼굴이었기 때문에. 저는 사실은 삼성 산재운동 안에서 여성노동자들이 아주 굳건한 중심이 되거나, 주체로 서 있지 못하다는 이야기들이 정확히 이해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오늘 이 자리에 와서 이야기를 듣고 상황들을 생각해보면서, 정말 여성이 이게 나의 문제다라고 이야기하고 나서기는 상당히 어려운 조건들이 있었겠다... 어쨌거나 생식이상이나 건강의 문제가 생겼을 때, 개개의 여성노동자들이 가지고 있는 삶 안에서 자신의 계획이나 꿈이나 이런 것들을 위협하는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아요. 그랬을 때, 이게 나의 문제라 이야기하고 내가 이 운동의 중심에 서겠다고 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페미니즘 안에서도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언제나 되게 중요한 문제였고, 중심에 있었던 문제였고.. 실제로 한국에서 1920년대, 30년대부터 남성과의 임금 차이를 문제제기하거나 기숙사의 열악한 처우를 이야기하신 목소리들이 계속 있었고, 그 분들이 실제로는 한국 페미니즘 운동의 토양을 풍부하게 하고 넓혀온 우리의 선배이고 역사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역사 안에서 삼성의 산재문제들을 이야기하고 여성들의 목소리로 주체화하기 위한 담론이랑 운동 같은 것들이 더 단단하게 조직되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권영은 :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노동자로서 저희 인터뷰에도 정말 용기있게 나서 주시고, 지금도 몸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꼬박꼬박 오셔서 휠체어를 타고 어렵사리 정말 화장실도 삼성전자홍보관 화장실은 당연히 이용 못하구요, 저 멀리까지 화장실을 다녀와야 하는 혜경씨 같은 분도 계세요. 아무튼, 제가 아쉬움을 표했던 부분은 그런 분들의 목소리가 풍부하게 다뤄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저 여성으로 인식되는 것만이 아니라, 그 분들의 목소리가 왜 훨씬 더 강건하게 전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로서의 여성으로 소비된다고 해야 할까, 10번 출구의 문제처럼. 그러지 않기 위해서 서로가 좀 더 고민이 필요하겠다 라는 생각이 제가 요즘에 드는 생각이라 이렇게 여쭤봤습니다.



손희정 : 사실 저의 문제의식은 이런건데, 이게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잖아요. 이런 고민들이 좀 있었어요. 강남역 화장실에서 여성이 살해당했을 때, 이 살해당한 여성이라고 하는 건 한국의 여성들이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던 거죠. 아 이건 내 문제다.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감대가 딱 맞아떨어질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여성노동자의 문제라고 들어가면, 약간 사람들이 거리두기를 시작하죠. 나는 저 자리에 있지 않다. 그 다음에 나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라는 생각들을 하는데, 뭐 사실은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이나 삼성의 산재문제나, 아니면 얼마 전에 있었던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건이나, 혹은 신안에서 있었던 여교사에 대한 학부형의 성폭력 사건 같은 것들을 다 생각을 해보면, 하나의 어떤 공통점이 떠오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것은 ‘평등해야 안전하다.’라는 문제의식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러니까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지 않아서,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평등하지 않아서, 혹은 화이트칼라 노동자와 블루칼라 노동자가 평등하지 않아서, 혹은 어떤 사람은 아까 말씀하셨듯이 가족적인 형편이나 어려움 때문에 위험에 내몰릴 수 밖에 없어서. 한편으로는 어떤 사람은 더 위험한 노동을 할 수 밖에 없거나, 더 위험한 폭력에 노출될 수 밖에 없는 사회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 라고 생각을 하면 사실은 이 사회의 노동문제들도, 결국은 다 우리 문제인 것 같거든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평등해야 안전하다’라는 문제의식을 함께 가져가시면서,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만큼이나 삼성 산재문제도 나의 문제라는 인식을 가지셨으면 좋겠다. 특히 여성노동이라고 하는 공감대 안에서... 왜냐하면, 우린 자본주의 안에서 살고 있으니까, 자본이 언제나 돈의 가치를 사람의 목숨보다 우위에 두는 이 사회에서 생각을 해 보면, 늘 노동자들은 위험에 내몰려왔었죠. 늘 노동자들이 위험에 내몰렸을 때에, 사실 여성노동자들은 더 위험한 노동에 내몰렸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여성들이 하고 있는 노동이 우리 사회를 지탱해주는 노동이기도 하거든요. 우릴 대신해주는 노동이기도 하구요.



많은 분들이 이렇게 생각들 하시잖아요. 삼성 망하면 대한민국이 망한다고. 

사실 한 기업이 망해서 나라가 망하면 그 나라는 망해야 마땅하죠. 삼성이 우리 사회에서 너무 중요한 기업이야, 라고 말하는 것의 이면을 잘 들여다 보면, 실제로 삼성이 생산하고 있는 여러 가지 상품들과 경제적 가치들을 누가 생산하는가를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 가치를 생산하는 데 가장 위험한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이 비숙련이라고 얘기되는 사실은 여성노동자들이라는 거죠.



그렇게 생각하면 이 대한민국은 삼성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여성노동자들이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만들고 있는 어떤 상품들 위에 놓여있는 것이기도 하고, 그래서 여성노동자들 위에 놓여있는 것이기도 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이런 의미에서 여성노동의 가치를 다시 부여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짐과 동시에, 이 노동이 누군가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면, 이 노동조건을 바꿔야 한다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하는 거죠.



실제로 반올림이 요구하는 것, 그냥 보상하는 걸로 퉁치지 말고, 재발방지를 하라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너무 큰 돈이 들어가고 어려운 문제이고, 못보는 척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삼성이랑 싸워야 한다니까요.



권영은 : 예, 싸울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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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정 : 그래서 사실은 노동도 그 여성노동자들이 대신 해준 것, 감사한 노동이지만, 이 싸움도 저는 반올림과 피해자노동자 분들과 가족 분들이 우리를 대신해서 싸우는 것이라 생각해요. 굉장히 많은 싸움들이 사실은 그곳에 계시는 분들이 편안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건 우리문제가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대신해 싸우고 계신거죠.


그것을 주목하고 이야기하고, 그 운동 안에서의 젠더문제를 끄집어내는 것이 한편으로는 페미니스트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권영은 : 그러면, 저희가 농성장에서 페미니즘 책을 읽는 건 정말 자연스럽고 해야만 하는 일이었군요. 그냥 저의 개인적인 관심인 줄 알았습니다만..



손희정 : 한국사회를 지탱하는 노동의 젠더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계신 거에요.



권영은 : 감각으로 반응을 했는데, 이렇게 이해를 해주시고 설명해주시니까 꼭 그렇게 해야될 것 같고.. 오늘의 녹화는 저희가 꼭 동영상을 같이 보면서 사람들과 나눠야 할 것 같아요. 걱정이 되는 부분은 워낙 말씀이 빠르시다 보니까.. (웃음)


손희정 : 제가 안그래도 팟캐스트 녹음을 하고 너무 빠르다고 코멘트를 주셔서. 이번에 녹음할 때는 되게 노력했는데, 문제가 뭐냐면 나이가 들면서 두뇌활동이랄까.. 말이 느려지면 자꾸 잊어버리는 거에요. 중간에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하지만 노력하는 것으로.



권영은 : 앞으로 복습을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지나간 얘기를 이해를 못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시 한 번 새겨들을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씀드린 거에요.



저희도 몇 년전에 전자산업 여성건강권 모임이 있었어요. 그래서 전직 반도체 여성노동자들, LCD여성노동자 분들이 활동하시는 분들과 만나서 인터뷰도 하고, 자신이 직접 인터뷰어가 돼서 만나는 거에요. 그랬더니 정말 다양한, 그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그 때 기숙사 생활이 그런 거였어?’ 라는 재잘대던 그 모든 것들이 다시 보이고, 한 축에서는 그게 여성의 페미니스트의 관점으로 조금 인지를 했었던 듯 해요. 그러고 나서, 크게 뭔가 결과물을 미처 내지는 못했으나, 그 모임이 저희는 상당히 중요했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기회가 있다면 그 모임을 계속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삼성에서는 여성노동자들, 내지는 남성노동자도 마찬가지죠. 바로 공장 옆 기숙사에다가 몰아넣고 관리를 하고, 그 사람들이 계속 쳇바퀴 돌듯 살다가 그 안에서 연애를 하고 그저 돈많이 벌고 자랑스러웠던 공장으로 그냥 기억의 한 켠으로.. 아프지 않으면 그렇게 넘어갈 수 있는 기억이었던 것인데, 불행 중 다행인 점은 그들이 다시 모여서 왜 나의 동료는 누군 죽고 누군가는 아프고. 이렇게 만나서 과거를 재구성하는 작업에 나설 수 있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저희는 그 작업이 조금 멈춰져 있긴 하지만,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서 조금 더 밀고나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드네요.



손희정 : 저는 강남역 10번출구, 혹은 517페미사이드 이런 흐름들를 보면서 제게 제일 의미있게 다가온 것은 포스트잇이었거든요. 말하자면, 정신의학을 하는 사람들이나 법학을 연구하신 분들이나 경찰이나 이런 분들은 이것이 혐오사건이 아니다, 라고 이야기를 하고 그냥 돌출되는 사건이다라고 이야기를 하셨었거든요. 그게 과학의 언어고 법의 언어이고 이성의 언어였는데, 실제로는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여성들은 자기 경험 안에서 이것이 그렇지않다는 것을 알았던 거잖아요. 그래서 강남역을 나와서 포스트잇에 하나하나 자기의 이야기를 쓴 거죠. ‘언니를 잊지않겠다’,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 ‘그 날 나는 숙제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들을 알록달록한 포스트잇으로 가득 메웠었고, 이 사회가 남성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언어와 관점으로 고정되어 있을 때에는 도저히 포착할 수 없었던 들리지 않았던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이 사건을 규정할 수 있었고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고, 그로부터 우리가 새롭게 출발할 수 있게 만들어준 거죠.



어떻게 보면, 삼성의 산재라고 이야기하면 굉장히 의학적인 용어, 복잡한 문제라서 도저히 일반 사람들이 다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이성과 합리의 언어로 구성되었을 때, 실은 정확하게 이 문제가 파악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 안에서 여성들이 어떤 삶을 살았었고 여성들이 어떤 문화를 구성하고 또 어떤 실체적인 고통을 겪었는 지, 이것이 축적되었을 것이고 그것을 여성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공유하는 힘을 만들어갈 때, 그런 역동성을 이제 여성의 언어가 다시 끌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좀 했었던 것 같아요.



권영은 : 오늘 이야기는 제 궁금증과 하고픈 이야기를 다 풀어내는 시간 같아요.



손희정 : 선생님 하고싶었던 이야기를 제가 다 해버린 것 같아요.



권영은 : 제가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를 워낙 말씀을 잘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손희정 : 지금 얘기를 이어가다가 생각이 또 든 게, 사실은 여성노동사를 쓴 중요한 작품들이 한국에 몇몇 다큐가 있는데.. 삼성의 산재 같은 경우에는 <위로공단>이랑 <탐욕의 제국>이란 작품이 있었고, 사실 <위로공단>을 아주 좋아하진 않았어요. 왜냐하면 너무 정제된 미학적인 언어로 여성의 고통을 너무 말끔하게 잡아낸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 언어가 아니라, 저는 처음에 <탐욕의 제국>을 봤을 때는 아쉽다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계속 반추해보니까 <탐욕의 제국>에서 끊임없이 보여주는 여성노동자의 일기. 그 일기에는 이런 얘기들이 쓰여 있어요. “오늘 18살짜리 신참이 들어왔어. 잘해줘야지.” 이런 식의 감정의 언어들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주목하면서 제대로 싸움의 힘으로 축적하는 과정들이 중요하겠다, 이런 생각까지 미치게 되더라구요. 이런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우리에게도 있는거니까요.



권영은 : 그래서 <탐욕의 제국>이 어렵다, 불편하다는 반응도 있고, 또 보면 볼수록 이제 알겠다, 저도 여러 번 보니까 예전에는 안 보이던 부분도 보이는 것 같고, 하나하나 풀어가는 숙제를 하는 듯한 느낌도 있어서... 저희가 열심히 국내외로 뿌리고 있습니다.



손희정 : 그 때는 충분히 설명해주지 않는다. 이 문제를 접근하는 데 진입장벽을 낮춰주는 작품이 아니라, 저는 아쉽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꼭 다시 보세요. <탐욕의 제국>이에요 여러분~

V.O.D로 나와있어서 다운로드해서 보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보시고 좀 고민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엄청난 간극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장면들이 잘 안붙고, 싸움들도 공백이 많거든요. 그런데 이게 한편으로는 관객들로 하여금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작품이로구나, 그런 틈을 만들어내는 작품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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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은 : 그래서, 얼마전에 선생님도 참여하셨던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인가요? 그 때도 <탐욕의 제국>이... 그래서 그게 약간 문제가 있었었는데.. 어떤 에피소드가 있잖아요.



손희정 :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삼성이 계속 후원을 했었거든요. <탐욕의 제국>이라는 작품이 사전제작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당선이 된 거죠. 여성영화제 입장에서는 삼성의 후원을 받는다고 해서, 정말 중요한 여성노동자에 대한 작품을 후원 안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탐욕의 제국>에 사전지원을 했고, 삼성이 너무 화가 난 거죠. 제가 알기로는, 지금은 삼성이 후원을 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단히 돈을 많이 줬으면 또 모르겠는데..(웃음) 근데 저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하고는 관련 없는 사람입니다.



권영은 : 그래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탐욕의 제국>을 페미니스트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그런 기회도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손희정 : 그땐 저보다는 더 잘 설명해주실 분을 제가 소개드릴께요.



권영은 : 한 번쯤 필요할 것 같네요. 그런 해석이 덧붙여진다면 저희도 많은 공부가 될 것 같아요. 저희가 이제 시간을 꽤 써서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은데요. 강남역10번출구, 삼성의 여성노동자 이야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페미니스트 손희정 선생님 모셔서 이야기 나누고 있는데요, 오늘 일부러 이어말하기 들으러 오셨잖아요. 혹시 더 듣고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객석 질문)

“저도 페미니즘 잘 몰랐다가 친구 이야기로 책을 읽고 있는데, 그냥 이야기 듣고 싶어서 왔어요.”



권영은 : 오늘 무슨 강의들은 거 같죠? 방학 첫날에 선생님 오셔서 이렇게 유사강의를 해주시네요.



“그런데, 책 읽다보니까 우울해졌어요. 옛날에는 여성차별을 당하면 불편한 느낌이고 내가 혼자 집에 가서 삭이면 되고. 페미니즘에 관한 책을 읽으니까 제 일상이 뒤집힐 것 같단 예감이 들어서 우울해졌는데. 같이 친하게 지내던 남자친구들, 아니면 어른들의 말씀부터 다 걸리는 거에요.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이제 돌아가긴 너무 늦은 것 같고..”.



손희정 : 사실은 저 질문 요즘 되게 많이 받아요. 어떤 학생들은 밤에 문자 와서 ‘이제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 이렇게 얘기하기도 하는데...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알을 깨고 나오는 것. 이걸 저는 페미니스트 모먼트라고 부르는데, 엄청난 인식의 계기가 있고 그러면서 정말 세상이 달라져보이기 시작하는 쾌감이 저에게는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게 사실, 알면 알수록 점점 더 살기 힘들어지고 괴로워지는 건 사실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분노로 싸우거든요. 그 괴로움이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얼마전 홍상수, 김민희 건은 너무 화가 나서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쓰기도 했는데...

그 힘들고 불쾌한 게 저를 살게 하는 힘이기도 하고요, 그 힘든 불쾌한 와중에 함께 싸울 수 있고 함께 토로할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나잖아요. 그게 정말 좋았던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초창기 페미니즘이라고 하는 건 여성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고 얘기 많이 하잖아요. 저는 단언할 수 있거든요. 페미니즘은 행복과 무관하다고 생각해요. 그냥 받아들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 실제로는 행복한 페미니즘이 아니거든요. 저는 페미니즘이 행복이 아니라 정의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아주 구체적으로 개인의 삶을 바꾸는 게 저의 세계를 바꾸는 거거든요. 제가 페미니스트가 아니었다면 반올림에 오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제가 몸놓을 장소를 바꾸는 것이 페미니즘인 거죠.



권영은 : 이어말하기 하시기 전에 이 곳을 둘러보신 느낌도 한 번 듣고싶네요. 어떤가요?



손희정 : 저한테는 이 공간이 거대한 공백처럼 느껴지거든요. 굉장히 오랜만에 왔는데 패션과 성형과 소비문화의 최첨단이잖아요. 그러면서 동시에, 경기지역과 서울지역을 오가는 사람들의 집결지이기도 하거든요. 완전히 자본주의적인 공간이기도 한데, 이 공간 안에서 이 공간 자체를 재구성하는 구멍같은 존재인 거죠. 공백이라고 얘기했을 때, 없는 존재이거나 무의미하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라, 완전히 다른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이 공간에서 하는 운동으로부터, 저는 영화하는 사람이니까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냐면, 투명한 물에 잉크 떨어트리면 구멍으로 보이는데, 아주 서서히 퍼져나가는... 그러면서 이 물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물이 되거든요. 둘러보면서 짠해지면서 동시에 ‘아 좋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얼마나 고통스러운 공간인지 알지만, 동시에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권영은 : 저희가 물을 주었어요. 이곳을 지나시는 분들이 이 꽃을 먼저 보시는 거죠. 어떤 분은 이거 얼마에요? 이런 걸 여쭤보시는 거죠. 그러다가 밑에 메시지를 보시고 이 공간이 그런 곳이구나 생각하시기도 하더라구요. 아까처럼 시끄럽다고 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여기서는 굉장히 다양한 이야기를 해왔거든요. 여성문제, 청소년 문제, 알바문제, 교육의 문제 등.. 270일 이어말하기 하면서 각자의 분야에서 경험과 또 반올림과 어떻게 연계가 많이 되는 지 모르겠어요. 아무튼, 지나가는 분들 어느 한 분에게라도 와닿는 이야기가 있었을 것 같아요.



손희정 : 저 이제 그만해야 하는 거죠? 이어말하기 끝내야하는 거죠?



권영은 : 더 이야기하고싶은 말씀 하셔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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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정 : 저 소녀상을 만나게 되어 좋다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어요. 직접 와서 보니까 너무 좋더라구요.



권영은 : 저야말로 조금 더 시간을 쓰자면, 저 반도체 소녀상은 뭔가 조각같은 걸 환경디자인? 이런 전시회를 한 거에요. 그래서 이걸 만든 학생이 저걸 출품한 것인데요, 다른 학생들은 겨울왕국의 캐릭터를 만든다거나, 이런 불편하지 않은 이미지를 만들었는데, 이 친구는 삼성백혈병 문제, 유미씨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거에요.



그래서 반도체 소녀상이 이게 한 작품의 일부거든요. 유미씨와 그 옆에는 위안부 소녀상, 그리고 또 하나는 빈 의자가 놓여있는 거에요. 그래서, 완성품은 세 개의 작품이거든요. 그 친구가 생각하기에는, 과거에는 위안부 소녀들이었고, 현재에는 반도체 소녀, 미래에는 또다른 누군가일꺼다, 그런 의미를 담은 거에요.



그 친구가 저희에게 이 작품을 주기 전에, 전시를 해야 했는데, 교수님도 상당히 나쁜 점수를 주셨고, 그 전시회가 열리던 날 클로징행사하던 날에 그 친구는 무슨 연유에서인지 초대받지도 못했고.. 그 날 저희에게 달려오셔서 이상하다고 말씀하셔서, 나중에 기사화되기도 했어요. 그 때 그 친구가 삼성 안에 이 전시공간으로 사용하려던 곳이 공교롭게도 삼성의 무재해탑이 있는 곳 앞이었어요.



무재해탑 옆에 반도체소녀상이 있으면 너무 이상한 거잖아요. 그래서 사진을 보면, 다른 작품들은 잔디위에 있는데, 이 친구 작품은 에어컨 실외기 쪽에 비치되어 있고 그래요. 그래서 그 친구가 저희에게 잘 쓰였으면 좋겠다고 해서 저희에게 기증을 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많이 망가졌어요.



손희정 : 그렇게 생각하면, 과거에는 위안부 소녀들, 지금은 반도체소녀, 미래에는 또다른 누군가가 제일 약자라고 표현하셨지만, 한편으로는 그 분들의 존재 때문에 운동이 조직될 수 있고, 그 운동과 함께 그 분들이 목소리를 냈기 때문에 역사가 다시 쓰여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약자이고 피해를 당하고 있는 현실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우리가 새롭게 조직되는 건 또 우리의 과제가 아닌가 생각을 해요.



권영은 : 곧 새로 만들어질 예정이에요. 저희가 문화연대 활동가 분께 부탁드렸어요. 그랬더니, 새로 만들기를 고민하고 계신다고.


오늘 이어말하기가 평소보다 많이 이야기를 나눠서 조금 길어졌네요. 마지막으로 삼성에 따끔한 한마디.



손희정 : 생각해올 걸 그랬는데요, 정신차려라.



권영은 : 삼성이 정신차려서 직업병문제가 올바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이 곳에서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침묵하고 있네요. 삼성이 변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건강하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직업병피해자들이 제대로 보상받고 사과도 받고, 재발방지도 온전히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날까지 저희도 이곳에서 이어말하기와 농성을 계속 할 거구요.


이제 인사하고 마무리할까요?



손희정 :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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