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일 자원활동가들이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책을 읽고 나온 이야기를 정리했습니다.
1. 타인에 대한 공감이 부재한 사회
→ “왜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에 대해서 사람들은 각박하게 이야기할까?”
→ 본인이나 본인의 자식에게 일어났을 일이라면 쉽게 하지 못할 이야기들을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서 접했다. 또 기사 댓글을 보면서 의사 집단에 대한 안 좋은 시선을 느꼈는데, 그럴때마다 상처를 받곤 했다.
→ 타인에게 일어났던 일들이 곧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걸 왜 사회적인 문제로 연결하려고 하는 거야?”
2. “너의 잘못이 아니야”
→ 성인이 돈을 받고 직접 선택해서 회사에 들어간 것이기 때문에, 삼성에서의 안전 문제가 이슈화되기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네가 선택해서 들어간 거 아니야?”
→ 알치 못하는 위험으로 가득찬 세상 속에서, 문제를 ‘문제’라고 쉽사리 말하지 못하는 우리들.
→ 삼성 기숙사는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게 되는 ‘판옵티콘’ 구조라고 한다. 그런 문화에 길들여져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어려워지는 면이 있다.
→ 아직 이것이 ‘문제’인지 아닌지 불확실할 때, 그것을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언급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하지만 암묵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애매하게 넘어가는 것이 문제인 것 같다.
→ “공장 생산을 위해서 사람에게 유해한 환경을 조성한 것에 대해서는 분명 기업이 책임져야 하는 것 같다.”
3. 모두가 행복하게 일하고 어울리며 살 권리
→ 건강한 몸을 뽑아서 일하지 못하는 몸이 되면 노동 가치가 없다고 버려지는 사회. 젊은 사람들에게 일괄적으로 지시하고 요구하는 게 빠르고 편하기 때문에, 굳이 고생스러운 일을 만들려 하지 않는다.
→ “장애인의 몸이 되니깐 회사에서 종이컵 버려지듯 버려졌다.”
→ 노동에는 즐거움과 보람, 소속감, 사람과의 관계도 수반된다.
→ 여성과 장애인과 노인과 아이와 비건이 모두 함께할 수 있는 워크샵. 함께 해오면서 익힌 감각이다
→ “대학교 수련회에서 술 마시는 것을 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아직 남아있다. 적어도 교수님이 오는 시간대만큼은”
→ 모두가 술에 취해서 뻗어야 ‘단합’이 된다고 여기는 남성 위주의 뒤풀이 문화에서 벗어나 다른 모습을 상상해 볼 수는 없을까?
4. 안전한 공동체란? : ‘책임’을 폭탄 돌리기 하는 사회
→ 스웨덴에서는 이미 많이 취한 사람에게 바텐더가 술을 팔지 않을 수 있다. 손님에게 문제가 생길 경우 바텐더에게도 일정 책임이 따르기 때문
→ 멀찍이서부터 속도를 늦추고 보행자를 기다리는 모습, 그리고 버스에 휠체어를 탄 사람이 오르내릴 수 있도록 충분히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서 스웨덴과 한국의 안전에 대한 민감도가 다르다고 느꼈다.
→ 학생들이 학교에 머무는 시간이 짧아질수록, 학교 안에서의 위험에 대해서 자신들이 져야 할 책임이 줄어든다. 그래서 교문을 최대한 일찍 닫는 것이 좋고, 돌봄 전담사가 오는 것도 싫어한다.
→ 더 배우고 싶은 사람이 가는 곳이 사교육인데, 지금은 ‘사교육 돌봄’을 하고 있다. 당장 양질의 프로그램이 안착하리라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사람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
→ “수학학원에서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아이들이 돌봄을 받으러 온 건지 학습을 하러 온건지 잘 모르겠다.”
→ 반올림이 처음 제보했을 때 삼성은 그 ‘괴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절대 지지 않으려고 했다. 산업안전 보건연구소에서 10년간 20만 명을 조사한 진행한 뒤에야 문제를 파악하고 보고한다. 그 연구가 진행되는 기간에도 피해자들은 계속해서 나왔다.
→ “서로의 안전에 관심을 두고 소위 법으로까지도 만들어두는게 (좋은) 커뮤니티가 아닐까?”
2월 2일 자원활동가들이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책을 읽고 나온 이야기를 정리했습니다.
1. 타인에 대한 공감이 부재한 사회
→ “왜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에 대해서 사람들은 각박하게 이야기할까?”
→ 본인이나 본인의 자식에게 일어났을 일이라면 쉽게 하지 못할 이야기들을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서 접했다. 또 기사 댓글을 보면서 의사 집단에 대한 안 좋은 시선을 느꼈는데, 그럴때마다 상처를 받곤 했다.
→ 타인에게 일어났던 일들이 곧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걸 왜 사회적인 문제로 연결하려고 하는 거야?”
2. “너의 잘못이 아니야”
→ 성인이 돈을 받고 직접 선택해서 회사에 들어간 것이기 때문에, 삼성에서의 안전 문제가 이슈화되기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네가 선택해서 들어간 거 아니야?”
→ 알치 못하는 위험으로 가득찬 세상 속에서, 문제를 ‘문제’라고 쉽사리 말하지 못하는 우리들.
→ 삼성 기숙사는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게 되는 ‘판옵티콘’ 구조라고 한다. 그런 문화에 길들여져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어려워지는 면이 있다.
→ 아직 이것이 ‘문제’인지 아닌지 불확실할 때, 그것을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언급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하지만 암묵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애매하게 넘어가는 것이 문제인 것 같다.
→ “공장 생산을 위해서 사람에게 유해한 환경을 조성한 것에 대해서는 분명 기업이 책임져야 하는 것 같다.”
3. 모두가 행복하게 일하고 어울리며 살 권리
→ 건강한 몸을 뽑아서 일하지 못하는 몸이 되면 노동 가치가 없다고 버려지는 사회. 젊은 사람들에게 일괄적으로 지시하고 요구하는 게 빠르고 편하기 때문에, 굳이 고생스러운 일을 만들려 하지 않는다.
→ “장애인의 몸이 되니깐 회사에서 종이컵 버려지듯 버려졌다.”
→ 노동에는 즐거움과 보람, 소속감, 사람과의 관계도 수반된다.
→ 여성과 장애인과 노인과 아이와 비건이 모두 함께할 수 있는 워크샵. 함께 해오면서 익힌 감각이다
→ “대학교 수련회에서 술 마시는 것을 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아직 남아있다. 적어도 교수님이 오는 시간대만큼은”
→ 모두가 술에 취해서 뻗어야 ‘단합’이 된다고 여기는 남성 위주의 뒤풀이 문화에서 벗어나 다른 모습을 상상해 볼 수는 없을까?
4. 안전한 공동체란? : ‘책임’을 폭탄 돌리기 하는 사회
→ 스웨덴에서는 이미 많이 취한 사람에게 바텐더가 술을 팔지 않을 수 있다. 손님에게 문제가 생길 경우 바텐더에게도 일정 책임이 따르기 때문
→ 멀찍이서부터 속도를 늦추고 보행자를 기다리는 모습, 그리고 버스에 휠체어를 탄 사람이 오르내릴 수 있도록 충분히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서 스웨덴과 한국의 안전에 대한 민감도가 다르다고 느꼈다.
→ 학생들이 학교에 머무는 시간이 짧아질수록, 학교 안에서의 위험에 대해서 자신들이 져야 할 책임이 줄어든다. 그래서 교문을 최대한 일찍 닫는 것이 좋고, 돌봄 전담사가 오는 것도 싫어한다.
→ 더 배우고 싶은 사람이 가는 곳이 사교육인데, 지금은 ‘사교육 돌봄’을 하고 있다. 당장 양질의 프로그램이 안착하리라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사람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
→ “수학학원에서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아이들이 돌봄을 받으러 온 건지 학습을 하러 온건지 잘 모르겠다.”
→ 반올림이 처음 제보했을 때 삼성은 그 ‘괴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절대 지지 않으려고 했다. 산업안전 보건연구소에서 10년간 20만 명을 조사한 진행한 뒤에야 문제를 파악하고 보고한다. 그 연구가 진행되는 기간에도 피해자들은 계속해서 나왔다.
→ “서로의 안전에 관심을 두고 소위 법으로까지도 만들어두는게 (좋은) 커뮤니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