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알림 몸은 자세이며 드라마이다: 김관욱 <몸,>을 읽고 [출처] 몸은 자세이며 드라마이다: 김관욱 <몸,>을 읽고|작성자 반올림

반올림
2026-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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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몸이 들려준 목소리는 결국 드라마였다. 이렇듯 목소리 인류학자로서 내가 목격한 것은 아무리 억압받고 짓눌리며 잘려 나간 드라마라 할지라도, 몸은 또다시 새로운 드라마의 순서를 탄생시킬 수 있다는 반향들이었다.

김관욱, <몸,> p.248



2026년 1월 23일 금요일, 반올림 사무실에서 독서모임이 진행됐다.

 

몸을 주제로 네 차례로 기획된 독서모임에서 첫 번째로 같이 읽은 책은 의료인류학자 김관욱의 <몸,>(살아내고 말하고 저항하는 몸들의 인류학)이었다.



몸: 살아내고 말하고 저항하는 몸들의 인류학
김관욱2024현암사



 

독서모임에 참여한 이들은 활동가, 장애학 연구자, 영화감독 등 다양했다. 책의 저자인 김관욱 교수님이 섭외에 선뜻 응해 함께해주셨다.

 

책에는 몸과 관련된 흥미로운 인류학 연구들이 소개되어 있다. 태국에는 영혼이 몸에 안전하게 붙어 있도록 하는 영혼 앰뷸런스가 존재한다. 이는 어떤 맥락과 믿음 체계에서 존재하는 것일까? 뉴질랜드 마오리족 여성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흡연율을 보인다. 이는 담배가 상품화되고 술, 커피 등과 함께 노동강화제로 활용된 역사와 관련이 있다. 스웨덴에서 수백 명의 아이들이 수개월에서 길게는 5년 동안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현상이 관찰되었고 ‘체념증후군’이라는 진단명이 만들어졌다. 이들은 망명 신청을 거부당한 난민 가족의 자녀들로 난민 신청을 승인받았다는 소식을 전해주자 아이들은 서서히 깨어났다.

 

겉보기에 기이하고 이해되지 않는 몸과 관련된 현상들은 사회문화적 요인을 들여다봄으로써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정답을 찾고 논리적 인과를 밝히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은 아니다. 다만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눈에 보이는 몸 너머의 역사와 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편집 과정에서 어렵고 복잡한 이론적 내용을 많이 덜어냈다는 김관욱 교수님의 말처럼 <몸,>은 쉽고 간명하게 쓰여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인류학 에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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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우리의 논의도 각자의 활동 반경과 관심 영역에서 목격한 몸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의 몸, 활동지원사로 일하며 10년 넘게 지켜보고 돌보았던 몸, 친밀성이 외주화되고 상업화된 사회에서 성매매를 하는 몸, 일을 하다 아프고 망가지는 몸 등 우리는 사회가 정해놓은 정상의 틀에 들어맞지 않는 다양한 몸들을 알고 있다.

 

몸들 그 자체, 몸들이 하는 경험, 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는 사회문화적 요인이 깊이 관여한다. 그러나 논의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몸은 단순히 영향을 받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다.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퐁티는 몸이 지향성을 지닌다고 말하며 몸의 자세를 뜻하는 ‘몸틀’(body schema)이라는 개념을 주창한다. 몸은 정지되어 있지 않고 세상을 향해 존재한다.

 

김관욱은 이를 바탕으로 “몸은 자세이다. 몸은 무언가가 새겨지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메시지를 끊임없이 실천하며 반복하고 있는 주체이다. 몸은 항상 무언가를 지향하고 있는 자세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우리 주변의 ‘이상한’ 몸들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반도체 산업의 경우에는 직업병 피해자들이 예외적인 몸들이다. 이들의 몸은 화학물질에 영향을 받아 아프게 된 몸이지만 동시에 자세를 가지고 있다. 3부의 제목 ‘몸이 변혁시킨 사회’처럼 사회를 변혁할 힘을 내재한 몸들이다. 그것을 정신적으로 의식하고 있는지와 관계 없이 그러하다. 

 

의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몸을 통해서 일어날 수 있는 변화들이 있다고 믿는다. 남들과 다른 ‘정상’에서 벗어난 몸들이 사회학자 김홍중이 말하는 ‘파상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한 해석일까? 파상력은 행위 능력과는 구분되지만 겪어 내는 힘, 겪어 냄으로써 가지게 되는 힘이다. 자세를 가지고 무언가를 지향하는 몸, 사건을 창조적으로 겪어내는 몸에서 사회 변화를 향한 어떤 희망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어본다.

 

책에 등장하는 몸들, 그리고 우리 주변의 몸들은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변화의 주체로 거듭날 수 있는 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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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진복을 입고 춤을 추는 몸들. 반올림의 로고 #을 만들고 있다. Ⓒ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