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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올림
2024-07-30
조회수 297


“심리 상담사 님도 소개 받을 수 있을까요? 


막내를 간호했던 둘째 언니가 아파요. 집에서 나오지 않고 은둔 생활을 하고 있어요. 공격성도 생겨서 대화도 안 되거든요. 실은 둘째언니는 큰언니가 아플 때도 간호했거든요. ”


어제 산재상담을 마치고 일어나려는 길에 그녀가 꺼낸 말이다. 꼭 알아봐 드리겠다고 했다. (혹시 누가 있을까요. 저도 여러분께 도움을 요청합니다)


작년, 남동생이자 집안의 막내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뒤, 가족의 시간이 정지했다.


시골에 사는 부모님 입장에서는 4명의 자식 중 두 아이를 암으로 잃었다. 둘 다 반도체회사를 다녔다. 부모님이 느낄 고통을 떠올려서인지 그녀의 눈물은 쉬이 멈추지 않았다.


”막내 산재신청 해보자는 이야기를 부모님께 어떻게 꺼내야 할지.....
실은 저희 첫째 언니도 반도체회사 다니다가 위암으로 떠났거든요. 그런데 막내까지...“


아프다. 
아리셀처럼 한순간의 재로 변한 아픔도 너무 힘들고 허망하지만
이렇게 서서히 속수무책으로, 원인도 못 밝힌채 죽어간 수많은 반도체노동자들의 암 피해에 대해 어떻게 하면 경종을 울릴 수 있을까. 


막내는 반도체 클린 장비회사에서 10년 넘게 일했다. 본사에서 설비를 제작하는 일도 했지만 주로 삼성, SK하이닉스, 중국의 반도체 회사들을 다니며 설비를 납품, 설치하고, A/S를 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클린룸에서 일했다. 


클린룸 현장엔 장비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많다. 정규직 설비엔지니어보다 많고, 원하청이라는 갑을 관계 속에서 더 많은 시간, 위험에 노출되어 일한다. 
하지만 이들은 국가의 반도체 집단역학조사 조사(2019,산보연)에서도 빠지고, 삼성,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의 기업보상제도에도 제외되었다. ‘상주업체’로 불리는 유지보수담당 사내하청업체의 경우는 2018년 반올림-삼성전자 중재협약으로 어렵게 기업보상 대상에 포함시켰으나 이때에도 이곳 저곳에서 일하는 장비업체 노동자들은 책임소재가 모호하다는 이유로 포함되지 못했다. 


동생은 죽고 없으니 산재신청을 위해 어렵게 연락이 닿은 동료를 만난다. 다들 시간이 없으니 간신히 약속을 잡고 이야기를 듣는다. 


반도체 장비회사 노동자들은 갑을관계를 강조한다. 을의 위치라, 더욱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음을, 시키는 대로 타이트한 시간 안에 일을 마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그래서 생산자체의 하자를 가져오지 않을 안전수칙은 – 노동자의 몸에 유해하더라도 - 타이트하게 조여 오는 시간의 압박 속에서 지키기 어려움을 토로해왔다. 


온갖 화학반응이 일어나고 난 뒤에 챔버를 열고 세정하고 정비하는 노동자들, 그 곁에서 일하는 오퍼레이터들, 하부층에서 청소하고 정비하는 노동자들. 
케미컬 공급을 하는 노동자들.. 과거에 일한 노동자들만큼 대규모의 피해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끊임없이 이어져 온 직업성 암 피해자들의 희미한 신음소리를, 이른 나이에 생을 다하는 비극을. 세대를 거쳐 나타나는 생식독성, 유전독성 피해를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세상이 아니길 바란다.  


단지 대기업 반도체 공장 하나만의 문제도 아니다. 


반도체 공장 하나를 돌리기 위해서 소재, 부품, 장비업체가 수없이 얽혀있다. 


수많은 케미컬, 가스등의 화학제품을 사들여야 하고, 부품 세정이나 도금 등 유해업무 또한 하청에 재하청이 담당한다.


5인 미만업체가 가장 많은 산업도  전자부품 제조업이다(2021년 기준으로 6,500개소가 넘었다). 재생에너지로는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전력이 소비된다. (삼성전자는 민간기업 중 가장 많은 전기를 소비함)


어쩌면 가장 위험한 것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모든 수단을 강구하는 기업의 논리. 자본의 무한질주를 제어하지 못하는 체제에 있는지 모르겠다. 영업비밀 주장에 이어 국가핵심기술이라면서 안전과 관련된 정보조차 국가가 기업에 편에서 비밀이라며 감추기에 급급한.


지난 정부에 이어 이번 윤석열 정부도 마찬가지로, 아니 더 대대적으로 반도체 산업 육성에 혈안을 올리고 있다. 200조, 300조를 쏟아붓는다고 한다. 그 돈으로 용인, 평택 등에 지금까지보다 더 큰 규모로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만든단다. 누군가는 우리에게 용인에 생긴 반도체 특성화 고등학교 사진도 보내왔다. 정부는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반도체노동자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한 집안에 두 명씩 반도체 현장에서 일하다 젊은 나이에 암으로 죽어가는 비극은 단지 타인의 고통이 아니다. 매일같이 접하는 핸드폰, 노트북, 자동차, 온갖 자동화기기에 촘촘히 박혀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반도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비극이 아닐까. 


둘째 언니가 느끼고 있을 깊은 좌절, 분노, 그 고통에 온전히 닿기 힘들지라도. 함께 고민해주시는 분이 나타나길 바란다.


*사진은 먼지없는방 저자인 김성희 작가의 삽화임. 삼성반도체 CVD설비엔지니어 였다가 루게릭으로 세상을 떠난 고 이윤성 님의 재해경위서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