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물[기고] 삼성 하청 ‘케이엠텍’ 청년노동자의 백혈병 발병과 부당해고에 맞선 투쟁

반올림
2024-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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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삼성 하청 ‘케이엠텍’ 청년노동자의 백혈병 발병과 부당해고에 맞선 투쟁


[기고] 삼성 하청 ‘케이엠텍’ 청년노동자의 백혈병 발병과 부당해고에 맞선 투쟁

  • 이종란(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
  • 등록 2024.09.19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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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겨울, 한 아버지가 반올림에 연락을 해왔다. 스무 살 아들이 백혈병에 걸려 투병중이라고 했다.

 

“우리 승환이가 구미에 있는 케이엠텍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렸습니다. 갤럭시 핸드폰을 만드는 삼성전자 1차 협력회사에서요. 주말에 대학도 다니고 주중에 일하며 돈도 벌어 보겠다는 아들이 대견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삼성이라는 타이틀을 믿고 보냈거든요., 아주 건강했던 아들이에요. 그런데 백혈병에 걸리자 회사는 나 몰라라 합니다.”

 

승환 아버지의 이야기는 17년 전 만난 또 다른 아버지 황상기 님을 떠올리게 했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망노동자 고 황유미의 아버지 황상기 님도 그간 혼자 겪었던 억울한 사연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쏟아냈었다. 안타깝게도 2007년 황유미 님은 스물셋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 뒤 아버지는 ‘삼성을 상대로 싸울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아버님의 호소에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힘을 모아 반올림(구 삼성반도체백혈병대책위)을 만들었고, 그 뒤 실로 많은 직업병 피해자들이 제보를 해왔다. 그 힘으로 삼성과 정부를 상대로 직업병 책임을 묻는 싸움을 했다. 2018년에는 삼성전자 대표이사의 사과, 피해자들에 대한 배제 없는 보상, 재발방지대책 약속도 받아냈다. 불가능해 보였던 반도체 직업병 산재인정의 길도 만들어졌다. 이러한 피해자들의 투쟁으로 삼성전자의 작업환경도 눈에 띄게 개선되었다. 더 이상 황유미가 했던 업무와 같이 화학물질에 그대로 노출된 채 세정작업을 하는 설비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첨단 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전략들, 영업비밀 우선주의, 새로운 제품의 빠른 출시와 기술혁신 등은 새로운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게다가 알려진 유해위험 업무들은 사내외의 하청업체로 상당부분 외주화되었다. 그러하기에 직업병 피해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동안 잘 드러나지 않았던 휴대폰 하청노동자의 백혈병 피해였다.

 

산재신청

 

승환님의 투병 중 손가락 사진 (사진=이종란)

 

처음 접한 삼성 휴대폰 하청노동자의 백혈병 피해문제다. 그런데 노동자들의 진술 외에는 정보가 너무 없었다. 산재신청을 준비하면서 회사에 작업환경측정 자료와 물질안전보건자료 등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가 갖춰야 하는 안전보건자료를 요청했으나 회사는 측정자료 겉표지와 함께 유해물질 노출은 없다는 식의 결론 외에는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았다. 케이엠텍에서 일하다 어떤 유해요인에 노출되어 백혈병이 걸렸는지를 과연 입증할 수 있을까. 현행 산재보험법상 업무와 질병간의 상당인과관계는 피해노동자 측에서 입증하도록 되어 있는데, 안전교육도 받지 못한 노동자가 어떤 유해인자에 노출되었다고 증명할 수 있을까. 게다가 회사는 아무 책임도 지려 하지 않는다.

 

승환님은 앞 공정에서 고온 납땜이 되어 넘어온 휴대폰 기판에 검은 플라스틱 조각들을 하루 2천개씩 조립했다고 했다. 1개씩 조립할 때마다 에어건(Air Gun)을 반복해 사용했는데 그때마다 달콤한 향(방향족 화학물질 냄새)이 났다. 어디선가는 시큼한 냄새(산 류의 물질 냄새)도 났다. 이 냄새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지? 몸에 어떤 영향이 있는지 기업이 노동자에게 확인시키고 노출되지 않도록 할 의무가 있지만 케이엠텍은 문제없다고만 강조할 뿐이다. 승환님이 일하면서 낀 하얀 장갑이 매일 새까맣게 변했다. 이 분진의 정체는 무엇인가. 작업대 바로 앞에는 고주파 장비가 있는데 이것이 몸에 어떤 영향이 있는가. 제품의 불량이 발생하면 동료가 인두 납땜도 같은 공간에서 했었다. 납땜할 때 유해물질이 발생할 수 있다. 방수용 갤럭시 폰 제작에 접착제가 사용되고 고온에서 발암물질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제대로 위험을 확인할 길이 없다. 국가나 기업도 모르는 위험을 노동자가 증명해야 인정한다는 부당한 산재보험제도이나 달리 방법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아는 만큼의 유해물질 노출과 미지의 위험에 대해 지적하며 승환님은 4월 17일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요양급여신청서를 접수했다. 최종 판정까지 1년 안팎의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나마 제대로 조사가 이루어질지는 의문이다.

 

백혈병에 걸리자 무급휴직 끝에 해고하다

 

 

승환님은 작년 9월 백혈병이 발병한 뒤로 7번의 항암치료를 받았고, 올해 3월말 조혈모세포 이식수술을 했다. 살기위한 치료 과정이라지만 고통은 심각했다. 아파서 잠도 못자고 먹지도 못했다. 이식 후 심하게 목구멍과 항문이 헐고, 염증반응으로 온몸이 까맣게 변했다. 아들의 고통이 커질수록 부모의 마음도 타들어갔다. 무책임한 회사에 대한 분노도 커졌다. 그간 회사는 치료비 한 푼 보탠 것이 없다. 무급휴직 4개월 만에 예고도, 서면통지도 없이 일방적으로 해고한 것이 회사가 한 전부다. 어느 날 집으로 날라 온 건강보험 통지서의 변경사항을 보고 해고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동자는 소모품이 아니다. 당장 일할 수 없는 몸이라고 하더라도 사업주가 일방적으로 해고하는 것은 명백한 부당해고다. 근로기준법에도 산재노동자의 요양기간과 그 이후 30일간을 절대 해고금지기간으로 두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케이엠텍은 산재가 의심되는 중대질병으로 아픈 노동자를 예고도 없이 내쫓은 것이다.

 

원청과 하청은 치료비와 생계비 지원에서도 큰 차이가 있었다. 사실 원청 삼성전자는 반올림 직업병 투쟁 과정에서 자체 유급병가, 상병휴직, 치료비 지원제도를 대폭 향상시켰다. 이러한 기업의 상병지원제도는 공단에 정식의 산재신청을 줄이는 수단이 되기도 하나, 당장 치료와 생계를 위해 노동자에게 도움이 되는 제도이기도 하다. 그렇게 삼성전자는 산재여부와 무관하게 치료비와 검사비용 일체를 회사가 지원하고, 최대 3년 6개월의 유급병가 및 상병휴직을 지원한다. 그러나 삼성1차 하청 케이엠텍은 노동자가 아플 경우에 치료비 지원은커녕, 취업규칙에 보장하는 1개월의 무급휴직제도가 전부였다. 그나마 회사는 승환님의 상황을 봐주어 3개월 더 무급휴직을 연장했다며 생색을 냈다.

 

학습노동자는 ‘아프면 쉴 권리’도 없다? 대학의 부당한 퇴학 조치

 

승환님은 대학에서도 퇴학조치를 당했다. 케이엠텍에서 일하다 주말에는 칠곡 소재 영진전문대를 다녔는데 백혈병 투병으로 수업 일수를 채우지 못했다면서 대학은 3개월 만에 강제자퇴(사실상 퇴학)시켰다. 어떻게 휴학 안내도 없이 대학이 막무가내로 아픈 학생을 퇴학시킬 수 있을까? 이 기막힌 현실은 해당 제도가 기업에 인력 공급을 우선하는 산학협력 제도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케이엠텍과 영진전문대학이 맺은 ‘고숙련 일학습병행제(P-TECH)’는 일종의 대학생 현장실습제도인데 2년간 산학협력 기업을 다니면 학사 자격을 부여하는 제도로 관련 법률도 제정되어 있으나 여기에는 장기휴학을 보장하는 조항조차 마련하지 않고 있다. 대학은 법제도가 없어 휴학은 안 된다고 했다. 다만 이 억울한 사연이 알려지면서 대구, 구미지역 노동시민사회단체 등이 영진전문대의 퇴학조치를 비판하고 여러 매체에서도 보도를 냈다. MBC 기자는 장기휴학이 가능하다는 교육부 지침을 찾아 보도했다. 그러자 대학은 절대불가하다는 입장에서 선회하여 승환님에게 복학 및 휴학 조치를 내렸다.

 

이렇게 승환님의 퇴학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여전히 일학습병행 제도의 문제점은 남아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다음 소희> 영화에서도 드러나듯 현장실습 노동자들은 저항하기 힘든 사회적 지위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이는 위험에 내몰리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미숙련노동자라는 조건도 위험한 지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동안 현장실습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계속 봐왔다. 죽음을 부여잡고 싸운 유가족들, 현장실습문제를 제기한 교사들, 노동시민사회의 지속적인 투쟁으로 지금은 고등학교 현장실습제도에 안전권, 노동권 관련 기업의 의무적 조항과 학교의 감독 제도가 생겨나긴 했지만 ‘현장실습’이라는 구조적 취약성의 문제는 고스란히 남아있다.

 

 

하청노동자 백혈병 발병, 삼성이 책임져라

 

4월 17일 첫 기자회견을 삼성본관 앞에서 가졌다. 반올림, 아프면쉴권리공동행동 등 48개 단체가 공동주최로 참여한 기자회견을 통해 삼성전자에 책임을 촉구했다. 삼성 갤럭시 휴대폰을 만들다 백혈병에 걸린 하청노동자 산재 문제에 원청 삼성전자는 책임을 비켜갈 수 없다. 국제사회가 공급망의 최정점에 있는 모기업에 협력업체는 물론이고 연루된 모든 공급망에 환경과 인권 침해 등을 규제하도록 공급망 인권실사 제도를 요구하고 있는데다가, 삼성전자는 협력업체에 대해 일찍이 노동 인권, 안전, 환경 등을 준수하도록 하는 ‘협력업체 행동규범’을 마련해 뒀다.

 

사실 이러한 행동규범이 만들어지기까지 휴대폰 분야만 뒤돌아봐도 하청 노동자들의 아픔과 저항의 역사가 있다. 아이폰 생산 기업 애플사는 미국자본이지만 생산은 중국과 대만에 있는 폭스콘 회사가 해왔고, 폭스콘 노동자들은 아이폰 생산 압박에 심각한 과로와 열악한 환경에 시달려 2012년경 중국노동자들이 연쇄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삼성, LG 등에 납품하는 핸드폰 부품 제조업체(2차, 3차 하청)에서 사용한 메탄올이라는 독성물질에 노출되어 2016년경 청년노동자 여러 명이 눈을 실명당하고 뇌손상까지 입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안타깝게도 동일한 사고가 2023년초 베트남 삼성 하청공장에서도 발생했다). 삼성전자 행동규범은 이런 탄생배경을 가지고 있고, 삼성은 의무를 다해야 한다. 이번 케이엠텍과 같은 협력업체에 대해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 규범이었다. 그러나 삼성은 나서지 않았다. 겉으로만 행동규범을 내세울 뿐 최소한의 실천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픈 건 부모책임’이라는 하청 사장의 헛소리

 

삼성 본관 앞 기자회견 후 보도가 되자, 반응이 없던 케이엠텍 사장이 아버님께 만나자고 연락해 왔다. 구미에서 부산까지 공장장과 함께 과일바구니를 사들고 왔다. 아파서 먹지도 못하는 승환님에게, 아픈 뒤 7개월 동안 단 한 번도 연락 없던 회사 대표이사가 급하게 찾아온 이유는 위로금으로 상황을 무마해보려는 꼼수였다. 사장은 피해자의 아버지를 더 가슴 아프게 했다. 자신이 그동안 직원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고혈압, 당뇨병에 걸린 직원들의 건강관리까지 신경써왔다고 하면서, 결코 백혈병은 회사 때문이 아니라고 강조하더니 결국 “아픈 건 부모책임”이라는 말로 승환님 부모님에게 잊기 힘든 상처까지 줬다. 승환님 아버님은 위로금이 든 봉투를 돌려주고는 이런 식으로 무마하려 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구미공단 노동자들의 연대

 

 

어떻게 무책임한 회사를 상대로 싸울 수 있을까. 게다가 회사는 구미에 있는데 어떻게 하나 걱정만 앞서는데 케이엠텍 투쟁에 관심을 보인 반올림 후원회원이자 전진 회원인 한 분이 ‘구미에 연대해주실 동지들이 있습니다’라고 했다. 그 후 전화가 왔다. 차헌호 아사히글라스 지회장이다. “케이엠텍 공장앞에서 아침 출근선전전을 해 볼께요. 대신 공장 앞에 달아놓을 현수막 문구 10개만 알려줘요.”

 

먼저 요청한 것도 아닌데, 매주 케이엠텍 앞에서 출근선전전을 알아서 한다고? 아무리 전국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연대하는 동지들이라 들었지만, 전화로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 거듭 고마움을 표현했다. 새벽 기차를 타고 내려가 첫 출근선전전 만큼은 함께했다. 케이엠텍 회사는 아사히글라스 회사의 바로 옆 블록에 있었다. 아사히지회 해고노동자들은 케이엠텍 출근선전전을 가장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어느 시간대에 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출근하는지 조사했다. 바를 ‘정(正)’자를 종이에 새기며 출근 시간대를 파악했다. 7:40~8:20 사이가 가장 많이 출근하는 시간이라 파악하고는 그 시간에 맞춰 약속대로 매주 목요일마다 선전전을 했다. ‘케이엠텍은 백혈병 산재 발생 책임을 지라’고 마이크를 잡고 호소하고, 케이엠텍 노동자들에게 반올림이 만든 선전물을 나눠주었다.

 

 

이렇게 공장 앞 선전전이 시작되고 5월 14일 제2차 기자회견을 케이엠텍 회사 앞에서 하겠다고 예고하자 회사 사장은 다시 부산 승환님의 집 근처까지 찾아왔다. 집요하게 아버님께 전화를 계속 했다. 아픈 게 부모책임이라던 대표이사인데 다시 다급해져 만나자고 한 이유는 분명했다. 삼성이 보이지 않게 압력을 행사했는지를 확인할 수 없었으나 언론보도에 삼성도 대응을 하고 있었다. 하청 사장으로서 이 문제가 더 확대되는 것에 큰 부담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피해자 집에 찾아가 무마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버님은 대표이사에게 그 뜻을 분명하게 전했다. 기자회견 후 공식면담은 회사에서 가지겠다고 했다.

 

5월 14일 기자회견에는 구미와 대구경북지역의 많은 노동시민사회단체가 연대했다. 대구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를 비롯해 현장실습 문제를 비판하며 활동해온 여러 단체,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 동지들, 민주노총 구미지부 동지들, 지금도 250여 일째 고공농성을 하면서 고용승계 투쟁 중인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에서도 참여했다. 반도체 노동자들인 KEC지회 동지들도 함께했다. 이렇게 구미공단 노동자들이 한 사업장 노동자들처럼 뭉쳐 싸우고 있었다. 거기에 케이엠텍이 있었던 것이다. 케이엠텍도 이 노동자들의 연대에 많은 긴장을 했다.

 

협상 과정에서 드러난 작업환경의 문제점

 

 

5월 14일 기자회견 이후 회사와 공식적인 협상을 시작했다. 피해자의 아버님, 반올림 활동가인 본인, 차헌호 지회장이 교섭위원으로 함께했다. 첫 면담에 앞서 안전보건자료의 제공과 현장 실사를 강력히 요구했다. 산재입증에 필요한 것들이었다. 회사의 태도를 지켜보는 시선들이 생기자 회사는 조금씩 양보안을 내놨다. 안전보건자료를 얻고 현장실사를 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여러 문제를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승환님이 일한 부서의 공기 질이 좋지 않았다. 현장실사에 참여한 공조배기분야 전문가(30년간 공조배기 엔지니어로 일한 분)의 판단에 따르면, 작업공간에 비해 배기환기 장치가 부족했다. 천장의 환기팬도 멈춰 있었고(회사는 주기적으로 도는 구조라 설명), 옥상에는 유해물질을 걸러줄 정화장치도 없었다. 에폭시 수지(몰딩용 물질)를 고온 경화하는 과정에서 2차 부산물로 벤젠, 포름알데히드 등 백혈병을 유발하는 발암물질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러한 유해물질이 옥상으로 빠져나간 뒤에 다시 환기구를 통해 현장으로 재유입 될 수 있는 구조였다. 공장 옆의 식당이나 기숙사에도 오염된 공기가 퍼질 수 있었다. 오븐의 국소배기장치도 부족했다. 물질안전보건자료만 보더라도 다양한 유해물질이 취급되었다. 솔더 페이스트, 플럭스, 접착제, 세척제, 에폭시 수지, 마킹용 잉크, 윤활제 등을 사용함에 있어 국소배기와 보호구가 필수인데 일부공정은 국소배기와 적절한 보호구가 지급되지 않았다. 작업환경측정 자료에도 ‘각 공정 작업 시 취급하는 유해인자가 공기 중으로 확산되어 근로자에게 노출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었다.

 

그러나 회사는 이러한 작업환경 문제점을 그간 전혀 인지하고 있지 못했다. 그러면서 앞서 쓴 산재 답변서에는 피해자가 소설과 같은 주장을 한다고 책임을 외면하려 했다. 면담과정에서 확인된 이런 문제들에 대해 회사도 일정부분 책임을 인정하고 회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유해요인이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해 수정된 서면을 공단에 제출하기로 했다. 그리고 작업환경 상 드러난 문제들은 회사가 개선을 하기로 약속했다.

 


 현장실사시 승환 작업 후임의 장갑 사진 (사진=이종란)

 

연대의 힘으로 만들어낸 사과, 보상, 재발방지대책에 대한 합의

 

3달 동안 케이엠텍 대표이사와 세 차례의 공식 면담을 진행했다. 대리인들을 통해 수차 실무교섭도 병행했다. 백혈병 치료에 필요한 치료비 지원 부분이 가장 큰 쟁점이었다. 협상과정은 큰 인내심이 필요하기도 했다.

 

6월 말 아사히 비정규직 해고 투쟁 9년 결의대회 때는 케이엠텍 회사까지 수 백 명의 집회참여자와 다 같이 행진해 갔다. 케이엠텍 앞에서 승환 어머님이 마이크를 잡고 호소를 했고 동지들에게 고마운 마음도 전했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경빈님의 어머님,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님이 승환 어머님을 안아주었다. 위로와 연대의 마음이 오갔다. 집회 참여자들이 소원 천을 회사 정문 앞에 매달았다. 회사는 교섭이 끝날 때까지 그때 매단 소원 천을 떼어내지 못했다.

 

 

그렇게 몇 달 간 이어진 투쟁 끝에 8월 9일 마침내 사측과 합의에 이르렀다. 회사는 입장문을 통해 공식 사과를 하고, 부당해고의 철회, 2025년 말까지 상병휴직기간의 보장, 치료비 지원, 산재처리에 대한 협조, 작업환경개선 등을 합의했다.(입장문 첨부 참조)

 

입 장 문

 

이승환님의 완전한 쾌유와 일상으로의 빠른 복귀를 기원합니다.

 

갑작스런 발병으로 병마와 힘들게 싸우고 있을 때 위로보다는 공감하지 못하는 해고 처리 등 일련의 상황으로 이승환 님과 가족 분들이 겪으셨을 아픔에 깊이 공감하며 회사 대표로서 세심하게 살피지 못한 점 책임을 통감합니다.

 

1. 회사는 이승환님의 백혈병에 대하여 산업재해 신청에 필요한 자료를 원만하게 제공하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해고에 대하여도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2. 회사는 이승환님의 백혈병 치료에 대해서는 산업재해 신청 결과에 관계없이 치료 지원금을 합의와 동시에 지원토록 하겠습니다. 향후 산업재해 인정 시에도 대위권(상계)을 행사하지 않겠습니다.

 

3. 회사는 이승환님의 해고를 철회하고, 2024년 2월 1일자로 복직조치 하였습니다. 또 복직과 동시에 상병휴직으로 처리하여 2025년 12월 31일까지 고용상태를 유지하겠습니다.

 

4. 앞으로도 회사는 산업재해 혹은 산업재해 신청 건의 발생 시에는 당해 사원에게 산업재해 증명에 필요한 사항들 중 회사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협조할 것이며,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작업환경도 더 개선하겠습니다.

 

5. 이를 위하여 아래 사항들에 대하여 개선을 약속드립니다.

1) 근로자들에게 안전보건정보에 대해 제대로 알권리를 제공하며 안전보건 표식이 더 크게 잘 보이도록 재부착하고, 정기적으로 맞춤형 안전보건교육을 강화하겠습니다.

 

2) 현장의 작업환경개선을 위한 조치로 배기/흡기 장치, 국소배기장치, 정화시설 등의 점검, 개선 등은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하여 관련 시설을 보완하고, 적절한 보호구 지급 등 안전보건 조치를 지금보다 더 강화하겠습니다.

 

3) 중대재해나 산재(의심질병포함), 안전사고 등의 경우 대표이사에게 즉시 보고하여 대표이사가 신속한 조치 및 책임지는 안전보건관리 체계를 강화하겠습니다.

 

당사는 앞으로도 사원들이 더 안전하고 쾌적하게 일할 수 있는 사업장을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하고 세심히 살피겠습니다. 아픔을 겪고 있는 이승환 님의 빠른 쾌유를 빌며 다시 한 번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2024년 8월 9일

 

㈜케이엠텍 대표이사 박창규, 윤경완

 

마무리하며

 

승환님도 최선을 다했다. 고통스런 병마와 싸우는 상황에서도 삼성 앞 기자회견에 처음 참석하는 엄마에게 용기를 주며 연설문을 반복해서 읽어보게 하고, 스스로도 용기 내어 인터뷰도 했다. 처음 문제를 제기한 아버님도 부산에서 구미까지 오가며 끝까지 최선을 다하셨다. 어머님도 아사히 투쟁에 참석하여 같이 행진하고 케이엠텍 앞에서 정당한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함이 없으셨다. 이런 가족들의 투쟁이 큰 변화를 만들었다.

 

구미지역 노동자들의 연대는 정말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현장실습 문제를 제기한 활동가들, 선생님들의 힘도 모였다. 아프면쉴권리 공동행동도 첫 연대의 포문을 열어주며 힘이 되었다. 그런 연대의 힘들이 모여서 삼성과 하청 회사를 움직이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다행히 승환님의 몸도 서서히 회복중이다. 승환님이 고마움을 전해왔다. “저를 위해 많은 분들이 애써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털기춤 이모티콘도 함께 보내줬다. <언젠가 예쁜 꽃을 피울 사람>.. 승환님의 카톡 프로필에 담긴 시의 한 구절처럼 언젠가 아픔 딛고 활짝 피기를.

 

하청노동자들이라고 대우가 낮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다. 원청, 아니 대자본이 다단계 하청구조로 생산을 하면서 임금이나 환경, 노동조건의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쉽게 이윤만 취하려는 고약한 셈법은 생명의 가치를 우선하고 평등을 추구하는 우리가 연대의 힘으로 바꿔나갈 수 있다. 케이엠텍 투쟁에서 보여준 구미노동자들의 연대, 노동시민사회의 연대는 우리의 힘이 결코 작지 않음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주었다. 모두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승환님의 완전한 쾌유를 빈다.

 

이종란